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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관일기109/김강정 시몬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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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관 일기 109
오랜만에 글 한 편을 올려봅니다. 말도 많이 하고 나면 공허해지듯 글의 흔적도 많이 남기게 되면 허해지는 법입니다.
그 동안 글발만 무성히 내뱉은 것 같아 마음이 허허로왔습니다. 하여, 잠시간 칩거의 기한을 두고 마음의 창을 닫고 있었는데, 그새 사제관일기를 쓰라며 공갈협박(^^)과 으름장이 쇄도합니다. 머리도 식힐 겸, 마음도 추스르고 싶은데, 메일과 전화를 주시는 분들 때문에 온통 마음이 어지럽습니다. .... 어쩌면 지금 제게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글을 접고, 침묵 속에서 삶의 뒤안길을 반추해야 할 순간이라고나 할까... 그 동안 뱉어놓은 무수한 말들을 마음에 하나씩 담으며, 말만큼 살아온 삶인지를 반성해보고 있습니다. ...... 6개월의 주임생활을 반성하며 얻어낸 결론이 있다면, 먼저 살고, 산 것을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니, 말로만 가르쳐왔을 뿐, 몸으로 보여준 건 하나도 없었습니다. 해라고만 했을 뿐, 하자고는 말하지 않았고, 해선 안 된다 이르고서도, 먼저 행하는 우를 범해왔습니다. 사제는 죽어 입만 천당 간다는 우스갯소리가 자꾸만 저에게 주어지는 고발처럼 들립니다. 지금껏 내뱉은 말들이 더 무섭고 섬뜩한 심판이 되어 돌아온다 생각하니, 더럭 겁이 나고 두려워집니다. .... 어떻게 살아야만 잘 사는 길인지를 아직도 찾아 헤매는 이 무지로움이여.... 살아온 삶보다 살아갈 삶이 더 막막해지니, 사제로서의 삶은 아둔한 자가 살아내기엔 너무나 어려운 삶인 것 같습니다. 사제로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범부의 길이 더 온당타 여겨도 지지만, 이 삶에서도 낼 수 없는 향기라면, 어떠한 삶이 주어져도 저는 향기 없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 사제에게서 사제다운 냄새를 맡을 수 없다는 건 비참한 일입니다. 그 동안 얼마만큼 사제다운 냄새를 풍기며 살았는지를 반성하면서, 지난 몇 주서부터는 사제로서의 향기를 찾으려 무척이나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녕 사제의 향기는 자신을 부술 때 시작되며, 자신을 없앨 때 완성될 거라 여깁니다. 아무 것도 아닌 자의 모습으로 부숴질 때, 비로소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지금까지는 제가 세상의 중심에 서있다고 믿었건만, 저의 중심에 세상이 들어와 있음을 깨닫고 보니, 이제야 중심에만 서려고 했던 제 아집을 바로 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사제는 결코 주연이 될 수 없음을... 사제는 언제나 세상을 향한 조연의 자리에 충실해야 함을 깨달으며, 무대의 중심에서 조용히 내려서겠습니다. 그리고, 조연의 역할을 찾아보겠습니다. 말보다는 몸으로 떼 우는 일을 더 많이 하며, 몸으로 먼저 살겠습니다. ..... 그 첫다짐으로, 앞 주서부터는 사제복을 입은 채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도 하고 있습니다. 신자들이 비운 밥그릇을 정성으로 씻으며, 제 마음의 그릇도 함께 씻습니다. 신자들의 손을 일일이 웃음으로 잡아주며, 그 손안에 제 마음을 다 넣어줍니다. 하나도 아깝지 않고, 아까워하지도 않을 유순한 사랑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그대로 넣어줍니다.
먹어만 왔을 뿐, 먹여주지 않던 동안의 삶을 반성하며, 먹는 존재로 살지 않고, 먹히는 존재로 온전히 저 자신을 내어놓을 겁니다. 밥처럼 안주처럼 먹는 쪽보다는 먹히는 쪽에, 씹는 쪽보다는 씹히는 쪽에서 내어주는 존재로서의 제 역할을 찾아나갈 겁니다. 먼저 부숴지고, 없어지는 밥... 저는 바로 그 밥이 되고 싶습니다. 신자들의 영혼을 배불릴 밥으로 제 살점 낱낱을 다 먹여주고 싶습니다. ...... 언젠가는 신자들도 제 마음을 알아줄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그이들을 향한 사제의 사랑이 한갓 형식의 사랑이 아님을.... 몸과 마음을 온통으로 내어놓은 님의 그 사랑이었음을..... .... 그 사랑을 닮기 위해 오늘도 세상을 향해 저의 작은 몸을 조용히 내어놓겠습니다.....
괌한인성당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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