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5일 (수)
(홍)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따뜻한이야기 신앙생활과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글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얼굴은 마음의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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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동옥 [songdo] 쪽지 캡슐

2001-10-18 ㅣ No.4873

매일 메일(mail) 서비스에서 

[오늘의 †복음]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

그 때에 주께서 달리 일흔두 제자를 뽑아

앞으로 찾아가실 여러 마을과 고장으로

미리 둘씩 짝지어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

떠나라, 이제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마치 어린 양을 이리 떼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구나.

다닐 때 돈주머니도 식량 자루도 신도 지니지 말 것이며

누구와 인사하느라고 가던 길을 멈추지도 마라.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이 댁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인사하여라.

그 집에 평화를 바라는 사람이 살고 있으면

너희가 비는 평화가 그 사람에게 머무를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주인이 주는 음식을 먹고 마시면서

그 집에 머물러 있어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집 저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어떤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환영하거든 주는 음식을 먹고

그 동네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 나라가 그들에게 다가왔다고 전하여라."

(루가 10,1-9)

[얼굴은 마음의 거울]

링컨은 말하기를 "사람은 나이 40이 되면

자기 얼굴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40이전의 얼굴은 부모가 준 얼굴 그대로 이지만

나이 40이 넘으면 부모가 준 얼굴은 없어지고

자신이 살아온 모습대로

그 얼굴이 새롭게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며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사람은 살아 온 삶에 따라 그 얼굴이 재창조 됩니다.

사람이 세상을 탐욕스럽게 살면

그 순진하고 깨끗하던 얼굴은

   간 곳 없고 탐욕이 가득 배인 추한 얼굴로 변해버립니다.

사람이 심술과 시기와 욕심으로

얼룩진 생활을 하게 되면

     그 얼굴에는 심술과 살의가 들어있는 얼굴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을 짐작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레오날도 다빈치가

예수의 "최후만찬"을 그리려고 하는데

예수님의 얼굴 모습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도시로, 시골로, 수도원으로 돌아다니며

예수님과 같은 얼굴을 찾으려고

애써 보았지만 다 헛수고였습니다.

그러다가 다빈치가 시골의 어는 조그마한 성당 앞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잠시 기도하려고

성당 안을 들어섰을 때

제대 앞에서 성체조배를 하고 있는

한 청년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그는 무릅을 치고 말았습니다.

 "저 얼굴이 바로 예수의 얼굴이구나"

그는 열심히 그 얼굴을 그려서

예수님의 얼굴을 완성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유다스의 얼굴을 그려야 하는데

그 음흉한 얼굴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또 찾아 다녔습니다.

술집으로, 형무소로, 깡패소굴로

유다스 처럼 생긴 얼굴이 있을 법한 곳을

3년 동안 헤매고 다녔지만 역시 헛수고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친 발걸음으로 길을 가고 있을 때

술에 취해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한 청년의 얼굴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이 바로 유다스의 얼굴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얼굴을 열심히 그렸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그리고 있는데

그 주정뱅이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잠을 깨 보니까 누군가가 곁에서

열심히 자기 얼굴을 그리고 있어

별로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왜 내 얼굴을 그리느냐"? 하며 화를 냈습니다.

그 때 다빈치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당신의 얼굴이 어쩌면 그렇게 유다스의 얼굴을 닮았는가!"

그 말을 들은 주정뱅이는 대성통곡을 했다고 합니다.

바로 3년 전에 예수님의 모습이라며 그리던

그 청년 삐에뜨로 빤지넬리였기 때문입니다.

얼굴은 마음의 거울입니다.

마음에 무엇이 담겨져 있는가를 알려면

그 얼굴을 보면 됩니다.

그래서 성서는

"마음에 사랑을 담고,

믿음을 담고, 은혜를 담고 살아가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그 내면의 모습이

얼굴로 그대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 * *

오늘의 복음말씀에서처럼

 오늘은 성 루가 복음사가의 축일입니다.

이교 집안에서 태어나 개종하여

바오로사도의 동반자로,

교회의 초기 시대부터

바오로사도가 로마에 처음으로 머무를 때까지

      복음 선포 상황을 기록을 사도행전으로 남겼다고 합니다.

그분의 말씀중 우리는 교우댁 방문을 할때

이말을 자주 하곤 하지요.

 '이 댁에 평화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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