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죽음과 무소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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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시어라~
글은 이런 분위기가 아닌데.... 습관이 되려나 봅니다.
미국 교포작가가 쓴 짧은 소설을 읽은 적이 있는데
제 생각에는 완전히 꾸며진 이야기가 아니고 들은 이야기를 적어 놓은 것 같았습니다. 제목은 아버지의 눈 이었습니다. 내용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난 뒤 닷새쯤 후 김영식씨는 이해 할 수 없는 전화를 한 통 받게 됩니다. 이름하여 장기 적출 희생자 유가족회라는 곳에서 온 전화이지요. 김영식씨 선친의 두 눈이 없어졌다는 이야기 였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일 뿐 아니라 장례당시 두눈이 없다는 사실을 눈치조차 채지 못했었기 때문에 가족에게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 비밀로 하면서 김영식 씨 자신도 무시하려 하지만 무언가 석연치 않고 끌리는데가 있어서 그 전화의 모임에 응하게 됩니다. 평소 김영식 씨가 알고 있는 그 아버지는 아마도 장기 기증을 할 이 세상에서 거의 마지막 사람쯤 되어 보였고, 조상에게서 물려 받은 소중한 몸이라는 말을 말끝마다 달고 사실만큼 실제로 자기 몸 아끼기를 업을 삼을 정도로 했던 분이라 허가 없는 적출이 아니고서야 기증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어떤 저소득층 주택가의 한 집에 모인 사람들은 자신을 소개 하는데 소개 내용은 내 남편의 눈을 도둑맞은 누구 입니다. 우리 아들은 뇌를 도둑 맞았어요. 등등 인종이나 풍습이 다른 여러 사람이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고인의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의 감정이란 어찌 그리 공통적인 점이 있을까 생각하며 김영식씨는 구토와 함께 아버지의 잃어버린 눈에 대해 확신을 하게 됩니다. 수요에 비해 늘 턱없이 부족한 이식 가능한 장기들 때문에 어떤 경우 검시관과 외과 의사 사이에서 거의 합법적으로까지 보이는 묘한 합의가 이루어 져 허가 없는 장기 적출이 생겨나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저는 불법적 장기매매라는 말은 들어 보았지만 이런 사실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없고 지금 다만 소설 속의 이야기를 하는 것 입니다.) 그 모임에서 정보를 얻어 김영식씨는 시신의 기록번호를 가지고 대학병원의 검시관과 맞대면을 하게 됩니다. 검시관은 시신에 대한 집착은 오직 살아있는 사람의 문제라고 하면서 발뺌을 하려 들지만 두눈이 파인 채 묻혀있을 아버지 생각을 하면서 끓어오르는 분노 속에 아버지의 눈을 당장 내 놓으라고 소리를 칩니다. 아버지의 눈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그런말을 자주 쓰던 그 아버지의 눈. 온전하고 추하지 않은 모습 그대로 땅에 묻히고 싶은 이들도 있으며 아무리 고인 이지만 자기 의사에 반하여 신체 장기를 훼손 당하는 것과 자발적으로 기증을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며 인격말살 이라는 것이 김영식 씨의 생각이었지요. 할 수 없이 주춤이며 검시관이 일어서자 김영식씨는 포르말린 병에 든 아버지의 눈을 받게 되리라고 짐작을 하지만 그 순간 얼어붙을 듯이 놀라고 맙니다. 휠체어에 앉은 어린 소녀의 해 맑은 얼굴 속에서 아버지의 눈이 김영식씨를 바라보며 미소 짖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 친구에게 한쪽 신장을 떼어주겠다며 검사를 자청한 친구가 있습니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고 여겨 집니다. 물론 본인은 망설임 없었을 거라고 짐작 됩니다. 망설일 일이라면 억지로 하는 일이라면 아예 하시지도 않았을 것이고 기꺼이 본인의 의지와 철학에 따라 그리 했을 거라고 여겨 집니다. 육체와 영혼, 그것에 대한 철학 그리고 자유롭고도 강한 영혼 그것이 신체기증 이라는 것 조차도 생각하기 마음먹기에 따라 아무일도 아닌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집니다. 시간이 좀 지나긴 했지만 외국서 면허증을 갱신 하면서 갑작스런 사고사의 경우 장기를 기증하겠냐는 난을 한참 들여다 보고는 아니요에 표시를 하고 왔습니다. '아니요' 라고 표시를 하고 오면서 기분이 무척 무겁고 좀 우울 했습니다. 기꺼이 '네' 라고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약간의 부끄러움 그런 것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사실 내 자신이 결정이 안된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화장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므로 제 몸이 고이 모셔져 안치되고 싶다는 그런 생각 때문에 장기기증 거부를 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이유는 내가 죽은 이후에는 그나마라도 완전히 죽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에 장기 기증이 망설여 지는 것이지요. 내 육신이 잠들고 세상에 속했던 영혼이 죽고 난 다음에 제게 속했던 무엇인가가 살아서 그리고 어딘가에 남아서 빛을 보고 있거나 숨을 쉬고 있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낯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지요. 모든 것을 놓고 그대로 완전한 자유로 떠나고 싶은 죽음을 원한다는 굳이 좀 말 안 되는 부족한 변명을 이렇게 구차하게 해 봅니다. 그런데 요즘 조금씩 깨달아 지는 것이 있어서 생각을 좀더 유연하게 해 보려 하고 아마도 다시 그 곳에서 면허 갱신을 받을 때는 장기기증 yes 에다 표시하고 올지도 모를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요즘 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장기기증 서약을 하고신 마눌님을 보고는 그 생각을 조금 더 하게 되었지요. 흔적 없이 자취 없이 떠나려는 모소유 완전 해방이라는 것 조차도 사후에 대한 생각에 까지 사로잡혀 무소유라는 것까지 소유 혹은 간섭하려는 그런 아집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나의 일부가 어디에서 살아나 누구에게 새 생명을 줄 수 있다면 한 생명을 구하는 더할 수 없는 귀한 일이겠고, 사실 내가 죽은 후 진정한 자유를 꿈꾼다면 나의 육체의 일부가 어디로 가든 살아있던 없던 그 때 부터는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겨져야만 그때 에서야 진정한 무소유의 자유로운 죽음이라는 완전함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무슨 노자曰도 아니고 약간 이상한 소리 같기도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 가는 과정에 있는 부족한 나에게 오늘 우리 마눌님의 결정은 좀더 촉진제가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水테파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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