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4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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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해주신 옛 회고담에 얽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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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선 [lbs] 쪽지 캡슐

2008-08-12 ㅣ No.123020

 


 

 

 

어머니가 해주신 옛 회고담에 얽힌 이야기  



<첫번째 이야기>

어머님의 먼 친척 중에, 서울 부잣집 일가네로 식모살이를 간 처녀가 있었답니다.

그 처녀의 아버지가 딸을 그 집에 데려다주고 와서 하는 말이

 

서울사람들은 샘에서 물두 안 긷고 산에서 나무두 안 해오구, 참 편케 살대요.”

우리 아이 가있는 서울 그 부잣집은  담 벽에서 물이 펑펑 나옵디다.

그런데다가 그 집은 나무를 안 때구서두 밥을 해먹드만요.

 

“어떡해서 그럴 수 있대요? ”


집에서 멀리 떨어진 샘에서 물 길어다 잡숫던 어머님 생각으로는

집에 있는 벽에서 물이 펑펑 나온다는 말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갔답니다.

게다가 솔껄(솔잎)이랑 나무랑 해와서 불을 때야 불이 생기는건데 어떻게 나무를 안 때는데도 밥을 해먹을 수 있다는건지 도무지 상상도 안되더랍니다.

‘물 안긷고 나무 안해오는 세상이 있다니 어떡해서 그런 세상이 있을 수가 있나.’

아주 당치않는 얘기 같으면서도 그게 사실이라니 너무 신기하다 싶더랍니다.

 

“나중에 보니께, 담 벽에서 물 나온다는 게 ‘수돗물’ 이구, 나무 안 때도 불이 있다는 게 ‘연탄불’ 이더라구.”

“하하하...호호호...”


우리들은 생각나는 대로 한마디씩 하면서 웃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맞네.”

“한 번도 못 본걸 말로만 듣고 상상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

“직접 본 사람은 그걸 안 본 사람한테 설명할려니 얼마나 답답했겠어.”

“ㅎㅎㅎㅎㅎ”

 

 

 

<두번째 이야기>

그후 저희 아버님이 인천으로 이사할 집을 알아보러 다녀오셔서는 그러시더랍니다.


“인천 가서 보니, 그 쥔집은 자기 집 안방에서 활동사진을 보데.

또 하나 신기한 것은, 그 방안에는 저절로 바람 만드는 기계가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바람이 시원하게 나오는게, 정말 신기하든데.”


저희 어머님은 그게 다 무슨 소린가 싶더랍니다.

그 당시에는 사람들이 활동사진을 갖구 다니면서 틀어주면 돈을 내야 보는 시절이어서,  어떻게 안방에서 활동사진을 보는 게 가능할까 싶었답니다.

게다가 어떻게 생긴 기계가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방안에서 바람이 저절로 불까 궁금했답니다.


“그것두 이사와서 보니께, 방안에서 보는 활동사진이 ‘테레비’구, 바람 만드는 기계가 ‘선풍기’ 였더라구.”

“호호호...하하하...”


우리들은 어머님이 활동사진 얘기 하실 때 이미 tv 얘기겠구나 싶었고, 바람 만드는 기계라니 선풍기겠다 감을 잡았지만, 도시 문물에 노출되지 않았던 시골사람들의 무지가 순수하고 재밌어서 또 웃었습니다.



<세번째 이야기>

어머님의 테레비 이야기는 곁가지를 치기 시작합니다.


“그 시절엔 테레비도 아무 집이나 없었어. 잘 사는 집에서나 있었어.

저녁밥 먹고나면 테레비 있는 집으로 다 모여 갖구, 연속극 보면서 깔깔대고 웃고 울고 했지.(이 부분은 저 어렸을 때도 같은 경험이 있음.^^)

그 집은 저녁때마다 들끌었어. 애들이고 어른이고 해서 맨날 한 방 그득했지.

집주인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참 성가셨을꺼여.

어떤 때는 집주인이 성가셔 하는걸 알면서도 연속극 다음편이 얼마나 궁금하든지  안가곤 못배겼어. 지금 같으면 안 갔을텐데.,,

그 시절엔 동네에 한 두 집이나 있던 테레비가 지금은 집집이 다 있고 방방마다 있는 집도 있으니 세상이 얼마나 변한거냐.

그래서 니아버지는 맨날  지금 사는 세상이 천국이라고 하신다.

그 옛날엔 없는 것뿐이었는데 지금은 무에고 진진하잖냐. (풍족하잖냐)

그땐 보리밥도 없어서 실컷 못 먹고 배곯을 때가 허다했는데, 지금은 흰쌀밥에 고깃국이고 닭이고 생선이고 얼마건 먹을 수 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고 그러신다.

천국이 있다면 이보다 뭐가 더 좋을 거냐고 하시지.”


저희 어머님의 이야기는, 그 당시 신문물이었던 수돗물, 연탄불, TV, 선풍기 등을 알아가는 과정에서의 에피소드로 시작해서 ‘지상천국론’으로 결말을 맺으셨습니다.

얼마나 배를 곯고 살아오셨으면 맛있는거 마음대로 먹으니 '지금 세상이 천국' 이라는 생각을 하실까 되짚어보면

뭣보다 ‘먹거리 해결’이 삶의 큰 목표였을, 모진 일정시대와 6.25 전쟁을 지나고 힘든 보릿고개를 넘으며 살아왔던 분들이라 그럴거라고 십분 이해가 됩니다.

저는 자식된 입장에서 볼 때, 다행스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한 양가감정이 듭니다.


다행스럽다고 생각하는 점은,

그 분들이  먹거리가 충분한 세상을 누리실지라도, 현재 사는게 불행하다고 느끼셨다면 「천국」이라는 말을 떠올리지 않으셨겠지요. 

그 말 속에는 욕심과 불평보다는 작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것 같아 부럽기도 합니다.

팔십이 넘으신 저희 부모님은 지금도 밭농사를 짓고 계시는데, 직접 농사지은 걸 가져다가 매일 노인정 점심당번을 도맡아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점심을 해드리고 계시답니다.

비록 교회일은 아니어도 저희 어머님이 큰 봉사를 하고 계신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한편,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은,

‘지금 여기가 천국’이라고 말씀하시는 두 분은, 사실 「영원한 생명을 믿는 그리스도 신앙」하고는 무관하게 살고 계십니다.

너무 연세가 높을때 쉽사리 세례를 받으셔서 그런가,  그리스도 신앙은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냉담상태로 지내고 계십니다. 

우리가 성당에 나가자고 하면,

“사람이 죽으면 뭐가 있는지 어떻게 알어. 땅속에 묻히면 그만이지.”

하며 마다하십니다.

그저 선하신 성품으로만 선하게 사시는 아버님(세례자 요한)과 어머님(아가다)이

주님의 자비로운 은총을 입어 주님을 섬기며 사시다가, 훗날 「성교회의 위로」안에서 임종을 맞이하실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주님! 

노인분들께 따스한 밥공양 많이 해드리는 저희 부모님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이복선 아녜스

 

 

 

신날새- '찔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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