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 (수)
(홍)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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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교황의 무류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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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훈 [saint72] 쪽지 캡슐

1999-03-04 ㅣ No.147

 

 교황의 무류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문: 가톨릭 교도들은 교황은 무류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것이

복음적 가르침의 일부라고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는가?

 

♠답: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교황의 무류성에 대한 교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초기 그리스도교 신앙으로부터 물려받은 전승을 충실히 고수하

면서... 우리는 로마 교황이 '성좌'에서 즉, 모든 그리스도교도들의 목자요

교사의 직책에서, 그의 최고의 사도적 권위에서 그가 전교회에서 지켜져야 할

신앙과 윤리에 관해, 베드로 안에서 그에게 약속된 하느님의 도움에 의지해 한

신조를 정의할 때, 하느님이신 구세주는 그의 교회가 신앙과 윤리에 관한 교리

를 정의하는 권한을 부여하셨기 때문에 그것이 무류성을 지녀야 하고 따라서

로마교황의 그러한 신앙정의는 교회의 동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그르칠 수 없다는 것이 계시된 신조임을 우리는 가르치고 선언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교황은 다음의 경우에만 무류성을 지니게 된다.

 

1. 교황이 '성좌'에서 말할 때 즉 그가 보편교회의 최고 목자로서 직책상으로

말할 때 그것이 무류성을 지니게 된다. 그는 최고 입법자로서, 최고 재판관으

로서 또는 최고 통치자로서 무류성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단순한 사제로서,

로마의 주교로서, 로마 관구의 대주교로서, 이탈리아의 수석 대주교로서, 서구

(西歐)의 총대주교로서 무류성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2. 교황이 신앙과 윤리에 관한 교의를 정의할 때만 무류성을 지닌다. 교의를 정

의한다는 것은 그것을 최종적으로 결정지음을 의미한다. 교의를 정의하는 일을

생략하는 것은 교리에 큰 해를 가져올 수 있고 또 교황 자신이 태만했음을 드러

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교황의 무류성과 관련지을 수는 없다.

 

3. 교황이 신앙과 윤리에 관해 말할 때, 그것은 계시의 전 내용을 포함하고 또는

성 바울로가 말한 신앙의 유산을 포함한다 (마태28;20,1디모6,20, 2디모1,14)

이에는 논리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실이 뒤따른다. 즉 교황은 계시와 직접 관련이

있는 교의나 사실들을 판단함에 있어서도 무류성을 지니기 때문에 이들을 부정함

은 계시 자체를 위태롭게 할 수도 있는 일이다.

 

4. 교황이 전 교회를 의도했을 때이다. 모든 신자들을 상대로 하려는 이러한 의도

는 명백히 표현되어야 한다.

 

 

교회가 무류성을 지님을 인정한 이상, 교회의 으뜸과 대변자가 무류성을 지님도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만일 베드로와 그의 후계자들이 최고

목자로서 그릇된 교리를 가르칠 수 있다면 그들은 이미 교회의 반석이 될 수 없

을 것이며 그리스도의 언약에 반하여 지옥의 문이 기세를 떨칠 것이며 형제들의

믿음은 약화될 것이고, 그리스도의 양떼들은 신성한 믿음의 양식으로 채워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태6,18,19 루가222,31 요한16;16,17)

 

 

 

 

 

 

다시 한번 말하거니와 가톨릭 신자의 신앙 의식은 단연코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정

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것은 프로테스탄트의 '신앙의 예수' 따로 '역사의 예수' 따

로 생각하는 식의 고등비평의 반그리스도적인 자세와는 확연히 다르다. 결국 그들

의 신앙은 개인의 양심이 최고의 결정권을 갖게 되므로 어떠한 권위도 인정할 수

없으며 그들이 가톨릭 교회의 무류권 즉 교황의 무류권을 인정할 수 없음은 지극히

당연한 귀결인 것이다.  

 

앞서 필자의 글 -프로테스탄트적 성서관의 오류- 에서도 말했지만 이 점은 프로테스

탄트 신학의 가장 박약한 일면을 폭로하는 것일 뿐이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다. 가톨릭 신자가 이 기록

을 오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 그 교훈을 신앙 도덕의 규정으로 삼는 것은 복음이

성령에 의하여 기록된 하느님 말씀으로 교회의 권위에 의하여 보증되고 있기 때문

이지 단지 역사적 탐색에 근거를 둔 것은 아니다. 이 점은 복음서가 그 중요한 일

부로 포함하고 있는 성서를 하느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신인(神人) 예수 그리스

도가 세우신 교회라는 명확한 증거를 가지고 있는 가톨릭 교회의 무류권(無謬權)

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교회에 이러한 권위를 허락하는 것은 신인(神人)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을 믿기 때문이다.

 

 

 성서를 믿는 것교도권에 복종하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

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가톨릭 신자에게 이 3자는 논리적으로 분리할 수 없

는 관계로 결합되어 있다. 실제로는 혼연 일체로 통일된 신앙 의식으로 움직이고

있으므로 교회와 그리스도나 성서를 대립시키거나 대치시키는 프로테스탄트적 견해

는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교황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그들 개신교의 가장 큰 문제점은 성서의 자유 해석을

주장하는 바 결국 교회의 교도권과 사목권에 대해 어떠한 권위도 갖지 못하므로

교회주의 무신앙으로 귀착되기 쉽다는 데 있다. 사실 철저한 개신교의 개인주의

를 강조했던 일본의 우치무라 칸조로 대표되는 무교회주의자의 논리가 이 경우 전혀

근거 없는 것이 아니게 되는 이유가 바로 개신교의 주장인 개인의 양심이 더 이상 상

소할 수 없는 최고 재판소이며 성서에 대한 사적 자유 해석에 있으므로 그들의 개신

교에서 교회를 필요없는 것 내지는 부차적인 것으로 본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전혀

없다. 그러나 각 개개인이 혼자서 성서로 족하다고 해도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 심정

적으로 외로울 수 있기 때문에 교회는 그저 각 개인의 성서 해석에 대해 아무 권위를

가질 수 없는 허수아비인 채로 각 신자들의 주일 성서 강독회 정도로 밖에는 개신교

신자에게 더 큰 의미를 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가톨릭 신자들과 그들 개신교의 교회에 대한 이해가 확연히 구분되므

로 사실 같은 '교회'라는 용어를 사용할 뿐 그 의미를 파악하고 받아들이는 데는 앞서

필자가 올렸던 글 - 가톨릭 신앙과 개신교 신앙의 차이 (1), (2), (3) - 에서 보듯이

양자 간의 교회를 보는 관점은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다.

 

 

 

 

 

 교회에 대한 가톨릭과 개신교의 입장의 차이와 성사를 보는 관점의 차이는

 

시간 관계상 다음에 싣기로 하겠습니다.

 

 

 

 

 

 

 

 

 

 

 

 

갈현동에서

 

 

catholic knight 안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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