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못된 말버릇을 못 고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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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촌놈이 서울에 있는 중학교에 올라와 다니다보니 특히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아이들로부터 ‘보리 문디’라는 소리를 자주 듣게 되었다. 개중에는 ‘보리’는 아예 빼 버리고 “야! 문등아!”라고 나를 부르거나 저들끼리 모여 있다가 내가 오는 것을 보면 “저기 문등이 온다!”는 말까지 들었다.
내가 자란 경상도에서는 ‘문디’나 ‘문등이’라는 말은 욕 중에서도 아주 상(上)욕이라고 할 정도로 심한 말이었다. 그때까지 내가 들은 ‘문등이’는 나병환자를 가리키는 말로 “산에 가면 문디가 나와서 애들을 잡아먹는다.”는 험한 말만 들었으니 말이다.
나는 같은 반 아이들로부터 ‘문디’라는 말을 듣거나 ‘문등이’란 말을 들으면 그 즉시 등치가 크든 작든. 힘이 세든 약하든 무조건 덤벼들어 주먹다툼을 했다. 나중에 친해지고 난 다음에서야 거의 전부가 서울아이들인 우리 반 아이들이 먹은마음 없이 경상도에서 온 아이니까 그냥 별명 부르듯이 생각하고 나를 그렇게 불렀다는 것을 뒤늦게 알 수 있었지만 1학년1학기 때는 걸핏하면 급우들과 싸워서 훈육실로 불려가 선생님 앞에 꿇어앉기 일쑤이고 급기야는 정학까지 먹었다. ‘문등이’ 소리만 들으면 다가가서 상대가 미처 준비할 틈도 안 주고 먼저 선제공격으로 후크에 주먹을 날리거나 발로 정통을 질러버리니 처음에는 내가 이기지만 서울아이들은 같은 초등학교 출신 들이 많아서 항상 1대 몇으로 싸우게 되니 싸움이 더욱 과격해지고 결국은 내가 얻어터지고, 나는 또 그 울분과 지기 싫어하는 오기 때문에 방과시간 후에 각자가 흩어져 집에 들어갈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1대1로 만나, 다시는 못 덤비게끔 죽신하게 패주곤 했으니.....
‘맹모3천’이라더니 내가 사는 집도 그랬다. 싸움이 그치지 않은 용산 역 앞 철도관사에 살았다. 나중엔 그 앞에 시외버스터미널까지 생겼으니..............거기다 한강인도교 밑 샛강이 가까워서 양아치라고 불렀던 넝마주이가 우글거리는 데서 내가 살았으니 나는 일찍부터 싸움판에서 자란 것이나 별반 다름없었다. 시골 촌놈이 서울 애들한테 안 맞고 길 거리를 다니려면 당수도 배워야 했고, 그다 학교에서는 고2때까지 정규과목으로 유도를 1주일에 2번씩 가르치면서 까만 띠(단)를 따야만 90점을 준 데니 안 따선 안 되겠고... 그러다 보니 학생복 단추 2개에서 3개 사이에 급소가 있고, 무르팍, 옆구리, 목, 어깨 등 어디를 가격하면 한방에 상대가 넠다운 된다는 정도의 싸움기술까지 몸에 익혔으니 지금 생각하면 참말로 내꼴이 우습다. 그다 말투는 또 얼마나 쌍스런 말을 즐겨 썼는지 ......
그 버릇은 쉽게 없어지는 게 아니었다. 나이 들어서도 내 입에서 예전에 썼던 새끼니 자식이니 그다 무슨 팔 무슨 팔 욕까지도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왔다. 넥타이에 정장까지 하고 다니면서, 그다 성당까지 다니면서, 점잖은 체면에 그런 말을 쓸 수가 없으니 1주일에 한번 정도 아니면 열흘에 한번 정도는 옛날부터 친한 친구들을 만나서 ‘새끼’니 ‘자식’이니 ‘미친 놈’이니 그런 말을 실컷 해야만 내 입이 풀리고, 억지로 체면 차리노라고 몸에 쌓인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정도로 불량기가 내한테서 오래 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러니까 7-8년 전에 있었던 일인 것 같다. 레지오주회를 끝내고 단원들과 같이 병원에 연도를 가는데 4명이 택시를 타고 가게 되었다. 내가 앞자리에 타고 요금을 내려고 하는데 2,300원이 나왔는데 내게 2천원 밖에 없기에 나와 동갑나이 같은 Pr 친구에게 “야. 천 원짜리 한 장만 주라” 고 하여 그 돈으로 보태서 요금을 내고 기사양반한테 “수고 했어요.”하고 나는 차를 내렸다 그런데 마지막에 택시를 내린 내 동갑나이 친구가 동전 700원을 거스름이라고 받아서 내게 내 밀었다. “야 임마, 미쳤다고 그 돈을 받냐?” 내가 그에게 그랬다. 나는 그저 ‘팁으로 주지. 그런 잔돈을 왜 받느냐?’는 뜻에서 무심코 한 소리였을 뿐이다. 그런데 그 친구가 갑자기 열을 확 올리면서 “말을 뭐 그렇게 해? 미쳤다니? 거스름돈을 받은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더러 미쳤다고 그러는 거야?. 진짜 말 더럽게 하네. 이 친구 이거...” 결국 둘이 그만 말싸움이 돼버렸다.
나는 ‘버스도 4명이 타면 2,400원, 그다 갈아타면 4,800원인데 3,000원 줘서 안 될 것이 뭐 있냐? 팁 좀 주고 살면 어디 덧 나냐? 그걸 꼭 받았어야 하느냐’ 였고 그 친구는 ‘내가 차에서 내리는데 택시기사가 주니까 내가 받은 거지, 내가 기사더러 잔돈 내 노라 그래서 받은 거냐?’ 였다. '팁으로 줄 것이지'라는 말이나 '기사가 주니까 받았다'는 말이나 다 옳은 말이었다.
그도 나도 큰 잘못이 없는 일이었다.
다만 문제는 내 입에서 무심코 나간 “미쳤다”는 그 말이 잘못된 말이었다. 물론 평소에 친한 사이었고 잦은 농담도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었지 내가 그 친구한테 먹은 마음이 있어서 ‘미쳤다고’라는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상대방 기분이 그런 말을 수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면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한들 “미쳤다”는 말은 너무 심한 말이 아닌가. 생각하니 100% 내 잘못 같았다. 뜨끔했다. 얼굴도 화끈거렸다.
그날 그 친구에게 ‘내가 잘못했다’고 사과를 했는지 안 했는지는 오래돼서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 이후부터 말조심을 하는 계기가 됐다. 성질이 좀 급한 편이라 입에서 말이 재빨리 튀어나오곤 해서 지금도 가끔은 실수를 할 때가 있기는 하지만 그런 일이 있고부터 나는 한마디라도 남에게 상처가 되거나 상대가 들어서 기분 나쁠 말을 안 하려고 애쓰면서 가급적 점쟎은 말을 가려서 쓰려고 무던히 노력하며 산다.
내가 장황하게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다. 얼마 전에 이 자유게시판에 굿자만사 5월모임 후기를 내가 써서 올렸을 때 어떤 분이 모임에 알맹이가 없느니 쭉정이 같다니 하는 말을 해서 내가 발끈해서 댓글을 달고. 여러 사람들이 또 그분한테 꼬리글로 항의하고 그런 일이 있었다. 그래도 나는 분이 안 삭아서 그분한테 쪽지로 신자가 되기 전에 인간부터 되라고 험한 말까지 써 보내기도 했지만 조금 지나고 생각하니 옛날 그때 생각이 나서 ‘내 주제에 누굴 나무라겠어. 싸움이나 안 나게 내가 지우면 되는 것을...’ 하며 오른쪽에 있는 X표를 사정없이 눌러서 단숨에 꼬리글을 골라서 지워버렸다. 나중에 그분도 댓글로 사과의 마음을 보냈으니 이제는 다 지난 일이고 다행이지만 이 글을 읽으시는 형제자매님들이 가급적이면 앞으로 남이 쓴 글에 댓글이나 꼬리글을 달더라도 상대의 인격을 헐뜯거나 욕보이는 말을 가급적 삼가주셨으면 좋겠다 싶어서 하는 말이다.
어떻게 사람이 여러 사람한테 다 좋게 보일 수만 있겠는가?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만큼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것이고 내 글이 좋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내 이름만 보고도 싫은 사람이 당연히 있는 것인데, 내가 듣기 싫은 소리 또한 당연히 들을 각오가 돼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말이다.
그래도 다만 서로 간에 인격을 건드리는 말은 정말 자제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구나 이곳은 가톨릭 형제자매들의 안마당인데 혹 타교사람들이나 가톨릭이 어떤 덴가 하고 보러 오실 분들도 계시지 않겠는가? 우리한번 함께 깊이 생각해보았으면 정말 좋겠다. 예수성심성월 여러분 모두에게 평화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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