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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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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철 [zxya] 쪽지 캡슐

2008-05-31 ㅣ No.120904

 

만일 지금 당신이 목자던 교회 신학 박사든 봉사직(교회의 어떠한 직)위에 있든 평신도든 부활하신 예수님을 실감 하는기?(요한 20장 빈 무덤)

1.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일 먼저 안식일 다음 날 이른 아침 무덤에 가서 보니 예수님 시신이 없어진 줄 알고 베드로 요한에게 달려와 시체를 도적 맞았다고 알린다.

이 소식을 접한 베드로와 요한은 빨리 달려 무덤에 이른다. 요한이 베드로 보다 먼저 무덤에 다 달았지만 들어가지 않고 뒤 따라 도착한 베드로가 먼저 무덤에 들게 하였다.

  막달레나는 누구보다 감상적인 정이 강했으나 예수님을 보지 못했다. 베드로 역시 무덤에 들어 갔지만 보지 못했다. 베드로는 아주 중요한 시기에 예수님을 배반하고 울기도 많이 울고 회개도 많이 했으나 예수님을 보지 못했다.

  사도 요한은 보았다. - 믿고 확신했던 것이다 (8절-9절) - --

바로 이것이 크리스챤 타입이다.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9절) - 실망

  - 신앙개조로서의 부활 신앙(복음화로써) 은 교의(믿을 교리)로서 선포 되어야 한다.

  -과연 신앙인은 체현(體顯) 하신 그리스도를 실감 하는가? -

 - 체현하신 그리스도를 지금 이 순간 실감할 수 있느냐?

2고린토 13 - 자기가 믿음 안에 살고 있는지 여러분 스스로 따져 보십시오. 스스로 시험해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실격자입니다.

  1. 실감 못하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실격자(낙제생)입니다.

  2. 지금 우리 피부로 못 느끼니 실격자이다.

     가. 신앙은 어려서부터 다듬어야 한다.

     나. 교회가 부활 신앙으로서 가르치기만 했지 카리스마, 영성은 미흡하기 그지없다.(믿음이 없다)

         ① 베드로(6 - 7절) - 교회 직능적인 지도자

         ② 요 한( 8절) - 교회 은사적(카리스마)인 지도자

           가) 부활도 체험            나) 특별히 은충을 입어

3. 초대 교회를 체현된 크리스챤

4. 역사는 직능적으로 강해진 반면 은사적인 것은 약해짐.

5. 교회는 지적인 것을 더 중요시 하는 경향 - 반성

    - 참으로 체현하신 그리스도를 실감 하는 것이 중요하다.

    - 우리는 그리스도인로서의 실격자가 되지 말자.

6. 현재가 바로 천당(은사적) - 예수님을 모시고 있다는 실감하는 믿음이라면 지금 님은천국에 있는 것이다. - 이 체험을 하도록 지금부터 연습

7. 문제는기능. 카리스마가 조화있게 나갈 때 교회는 건강해 질 것이다.

 

요즘 자게판을 보면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자기 자랑의 썩은 먹물과 악취을 풍겨댄다.

지난날 우리 조상들은 예수 마리아 요셉 이라는 신조어를 많이 사용했다. 또한 주모님(예수 주님과 성모님)이라는 믿음의 표현도 일상 생활화 되다 시피 유래한다.

  아마 80년도 이후에 영세한 교우분들은 생소한 신앙 관념 이기도 할 것이다.

자칫 주모님을 주 성모님으로 착각하고 오해 할수 있기 때문인데 아니나 다를가 오늘날 자게판에서 신앙에 양분되어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성문화 되지 않은 민간 요법의 주술 신앙을 몸으로 체득 하면서 가톨릭안에 파생되어 오는 성모숭배의 은연중의 신앙은 역사의 세월을 타고 신앙의 본질과 점점 거리를 둔체 파생되어 적 그리스도화 되는 믿음으로서 남미등,  천년 이상된 가톨릭 국가에서 미신적이고 우상화된 성모, 성인 공경의 예를 들수가 있다.

여기에 착지하여 파생된 신앙은 오히려 오늘날 여증, 안티보다 더 무서운 악마의 도구로 가톨릭안안에 잡초처럼 자리면서 신앙을 혼돈과 아편으로 이끌어 가는 현실에 성령의 교류가 필요 할 때이다.

신앙이 사랑을 낳아야 될터인데 오히려 아집을 낳고 고집을 생산 함으로 악마의 수종인 교만의 여왕은 교회및 성사 안에까지 침투하여 목자의 이성과 영성을 어지럽힐 뿐 아니라 많은 양들이 끌려가듯 혼비백산 한체 괴이한 영성을 따라 신앙의 갈림길에서 흔들리고 방황하는 처사를 학식있는 님들은 깨닫지 못하리라.

교회의 지도자 평신도 사도직, 알맹이 없는 쭉정이라고 표현 할때 그들은 당사자인양 분기 탱천하여 교회를 들먹이며 비판한 이를 십자가에 못 밖는다.

실상은 신앙의 기능은 있으되 카리스마가 없는데도 크리스챤이라고 목메인 메아리릐 함성을 웨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교회의 충실한 종복들도 제도와 교도권에 순명하며 신학과 학식을 겸비한체 바리사이적인 믿음을 고수하며  사제적인 직분을 지식과 맘으로 변호하며 모든것을 논리적인 이해와 격식으로 훌륭한 일꾼같이 보이나 실은 회개치 못하는 영성으로는 너무니 무뇌하다. 

하필이면 성모의 발현과 이적이 신심의 범주안에 안방을 차지 하려는 그릇된 믿음의 이상한 신조들이 세상과 교회를 혼란에 빠뜨리며 미온적이고 안일무사한 가톨릭의 기능도 짜증스러울 정도로 답답하다.  

그러다 보니 신앙의 본산은 베드로 낮잠을 자는 것인가? 침묵 피정을 하는 것인가?

교구의 안배는 오즉하랴?

  1) 시대의 조류를 따라가지 못한 신앙과 또는 바래버린 마귀의 오즘물을 마셔버린 얼 빠진 신자의 부류와

  2)성경과 교리로 무장하여 교회안에 가르쳐 준 진리를 따라 정도를 가는 신앙의 부류(베드로 - 기능파)가 있고

  3)흐르는 물을 역류하여 솟구치는 사도 요한(카리스마)같은 독수리파로 나뉘어 지는 것 같다.

 라고 성경은 가르치는것 같다.

 

주님의 현존을 체험하는 것에는 많은 여러 지식과 심오한 정신이 절대적인 바탕이 되어 지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의 현존은 참으로 여러 곳에서 발생합니다. 성체 안에서, 말씀 안에서, 기도 안에서, 보잘것 없는 사람 안에서 ....

우리 안에 주님을 뵙고자 하는 갈망이 내재해 있다면 언제나 어디서나 주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장이수 님 글에서)

- 포함해서 여기에는 성령의 은총(기도 + 회개 + 용서 + 화해 +고해성사 + 보속(속죄, 희생, 선행등)이 없이는 인간 의지의 노력과 감성 지성등 열심 성실 행동등 공로로선 이루어 질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직까지도 죽어서 연옥은 가겠지 하는 지식의 가르침에 하급적인 지킴의 옥쇄에 조인 획일적인 신앙의 노예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구원의 미생아들입니다.

구원 받았습니까?  벌벌 떨면서 수계 지키다 고해성사, 병자성사 받고 회개하면 연옥 내지 천당 간다고 했는데요? 

성모님을 믿고 의지 하여야 예수님께 가고 구원 받을수 있습니다. 성모님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똑똑한체 하지 마시고 바보가 되십시오.

 겸손 하십시요 그것이 보이는 구원의 성모님의 예형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어머니로서의 믿음의 모델 케이스로, 요한을 통해 보여 주시고 확증해 주신 믿음 입니다. 

넷에선 신앙의 판가름이 참으로 어렵고 워험하기까지 합니다.

내심을 읽기보단 문장의 미사어귀와 단어의 나열, 논리정연한 명석한 두뇌. 탁월한 외국어의 능력등. 그들을 단죄하기 보단 그들이 우리 가톨릭 형제라는데서 안도의 숨을 쉬고 보람있는 찬사를 마음속으로 보내지만

대부분 신학(지식+상식+철학)과 영성에 있어 많은 차질이 빚어지는 누를 범하는 현실을 보면서 아쉽고 측은함을 동반 합니다.

항상 그들이 범하는 오류는 신앙의 정면 대결이 아닌 성모, 성인, 기적, 이설등을 무기로 신심을 어지럽히며 한바탕 시정잡배의 난장판을 벌리고 흔적도 없이 살아 지지만 조용 할만하면 광풍을 몰고 옵니다. 

그러한 틈새가 보이면 분열을 일삼는 마귀는 여지없이 우리의 형제 자매를 매개체로 분열과 끈 질기게 질서를 파괴하며 영혼을 질식 시킵니다.

이 자게판 안에서도 정. 사의 논리를 떠나 인간적인 인지상정에서 편파가 심함을 느낍니다. 애덕의 신앙 행위 보단 입으로는 신앙을 말하지만 속 마음으로는 세속의 우상이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 하면서 나를 바라볼때 진정 성찰과 회개로 성사의 은총을 받아 사랑의 계명에 나를 꽃 피우게 되리라 믿습니다.

향긋하고 먹음직 스레 익은 과일인 내 자신이 아버지의 식탁에 오를수 있도록 사랑 자체이신 우리 주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부지런히 영하여  구원의 완성을 위하여 흠없는 제물로서의 영관된 자리를 차지할 그날까지 서로 사랑을 속삭이며 위로와 격려와 기도, 형제애로 성모님과 함께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께 봉헌 합니다.  아멘.

 지금 현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 못 만나면 그 무엇으로도 보증 받지 못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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