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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범강 <지켜보다-자아> 캔버스에 오일 175×231cm 19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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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짬뽕 /자유새
이 세상 고민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 만큼 우리 모두는 다양한 고민들을 가지고 잘살면 잘산 데로 못살면 못산 데로 걸머진 무게 만큼이나 이 세상을 향해 바삐 살아가야 하는 숙명적인 존재일런지 모르겠다.
요즘의 我를 보면, 몇년 전부터 입을 봉하고 사는 것에 비해 많은 이야기를 하며 밝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 심히 위안이 된다. 위안 만큼이나 고민의 양이 줄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고민의 내용이 무엇인지 고민의 무게로부터 그나마 조금은 자유로워졌다고 해야 할까?
보기에도 섬특한 윗 작품은, 재미동포 1세로서 현재 조지타운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문범강 작품이다. 그는 한국에서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27세 때인 1980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술대학에서 화가의 길을 공부했다. 그러면서도 199년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에 참가했고, 1988년 국제판화공모전 1등상 그리고 대학 재학 중인 1983년에는 브랜다이즈미술전 판화부문 최고상 수상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활동하는 화가이기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1세 화가이기 때문에 작품이 한국미술사에 포함되어야 하는데, 미국에서 활동하니 국내와는 멀어질 수 밖에 없고, 설혹 그가 미국미술대학에서 교수를 한다 해도, 그의 작품이 미국미술사에 포함되는 일 또한 간단치 않았기에 어쩌면, 자신의 머리를 떼어 두 손으로 들고 '도대체 너는 누구냐"고 스스로 되묻고 있다.
이렇듯 我역쉬 나의 정체성 문제로 늘상 끝없는 고민을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왜냐면 나는 분명히 한국인인데 사는 터가 문 밖인지라 내 안의 것만을 고집해서는 이 땅의 정서에서는 당최 들어 맞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당연한 논리인 것이다. 그렇다고 어릴 때부터 부모를 따라 무작정 낯선 곳에 떨어진 1,5세대도 아닌, 머리가 클때로 큰 토종 중 토종인 채 시시 때때 부닥치는 유럽문화의 크고 작은 이해관계에 내심 당혹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특이한 현상이라면, 살아온 세월이 거듭될 수록 강요된 문화에 동화되어 부드럽게 이해되는 것이 아닌, 되려,고립되어 홀로 쌓아가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이다. 이거야 말로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웃기는 짬뽕이 아닐 수 없다. 이도 저도 아님 정체성이고 나발이고 내 배만 부름 장땡이지 하고 사는게 더 속편할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의 것을 모르니 굳이 나의 것을 고집할 일도 없을 뿐더러 배부르고 등따셔 좋다는데 굳이 피할 수 없는 문화적 왕따 또한 모른 척, 휘익 지나침 그만일 것이니 말이다.
하나, 세월이 흐르고 흐를 수록 굳었던 정서들이 낯설어야 되는데 어찌 된건지 시간이 갈 수록 선명하게 살아 가슴에 콕콕 박힌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타향살이의 서럼이자 나그네의 슬픔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침, 저녁으로 눈뜨면 아무도 없는 이곳에 혼자라는 느낌이 못견디게 나를 고독하게 한다는 것이다.
나라마다 담고 있는 문화의 정서가 조금씩 다아 다르겠지만, 자본의 신자유주의가 낳은 세계화의 대로에서 어쩌면 우리 성향이 복잡한 집단을 구성하며 뽁짝뽁짝 지지며 뽁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또 다른 편협함과, 무지의 모순일른지도 모르겠다.
무신 말을 하는지 요샌, 모릿 속이 하얗다가도 까맣다.......^^
해바라기가 있는 정물 - 산울림
참고로, 윗 작품의 도움을 받기 위해 오마이 뉴스 이충렬기자의 2007. 04.20일자에 실린 글의 일부분을 그대로 발췌하였음을 밝히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