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 (월)
(녹)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예수님께서는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셨다.

자유게시판

길에 널려진 보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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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영 [pennom] 쪽지 캡슐

2008-05-28 ㅣ No.120797

오랜만에 배다리에 가보았다.
배다리는 내가 최초로 만화라는 것을 만난 책방거리다.
전쟁이 끝나고 고물상에 책이 밀려나올 때, 창영동 거리에 헌책방이 들어서게 되었는데, 누님의 손을 잡고 처음으로 서점이라는 곳을 가보았고, 거기에서 <고비사막>이라는 만화책을 보게 되었다. 그책이 그렇게 재미있고 잘 그려진 것으로, 지금도 눈에 선한데, 부천의 만화박물관에 가보아도 그 만화책에 대한 정보는 없어서 안타까웠다.
 
이 거리에 대부분의 서점들이 사라진지 오래지만 아벨 서점이 고서점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젊은 날 여기에서 1920년대의 미사경본도 구입했고, 동경에서 발간된 공관복음서, 라틴어 미사경본등을 그야말로 껌값을 주고 산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요즘 이거리를 찾는 이도 없을 뿐더러, 나 역시 새 책에 맛을 들여 여기 오기는 참으로 오랜만이다. 새책방에 없는 책을 구하기 위해서다.
 
5만 3천원이라는 돈이 많은 액수인지는 모르겠으나,
돼지저금통을 털어 바꾸니 뜻밖의 돈이 생겼다. 나로서는 큰 횡재라도 한 기분이다. 책방을 열기에는 너무도 이른 아침 8시 반에 창영동 서점거리에 들어섰다. 물론 아벨 서점을 문을 열기 전이다.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내 모교인 창영초등학교도 들러보고, 와보니 문을 열었다.
 
주인 아주머니는 옛날 모습 그대로인 것 같은데, 세월은 그동안 20여년도 더 지난 터이다. 정말 발 디딜 틈도 없는 좁은 공간에 책들이 산처럼 쌓였는데, 찾는 이는 없는 것같다. 한참을 뒤지고 또 뒤져서 열권 정도를 골랐다. 이거 6만원 넘으면 어쩌나 하고 조마조마 했는데, 2만 3천원이란다. 문고본이 댓권, 하드카버가 댓권이면 새책이 아니라해도 너무 싼 가격이다. 내심 안도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서글펐다. 오죽 안 팔리면 이리 싸게 팔까? 하는 생각도 들고, 한편으로는 이렇게 싸게 팔아서 뭐 먹고 사시나? 이런 생각도 든다.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지천으로 널린 보물들을 안 사가고 대체 사람들은 뭘 찾아 헤매는 것일까? 하고 뚱딴지에 철부지 같은 생각도 든다.
 
아무도 반기지 않고, 이왕에 쌓인 책들도 이미 짐밖에 안되는데, 이런걸 또 사들이는 내가 한심하기도 하고 나에게까지 팔려온 책들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책 첫장에 갖가지 싸인이 들어있어, 젊은 날 어떤 진지한 젊은이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언젠가 성서를 샀는데, 그 첫장에 "아무개 신부님 영전에.... 아무개 데레사"라는 글이 얌전하게 적혀있어서, 애틋한 사연을 간직한 이 성서를 소중히 간직했었는데, 군대 갔다오니, 이 책장만 찢겨 없어지고 말았다. 벌써 오래전 이야기지만 기억이 새롭다.
 
라틴어로 된 미사경본을 구한 적이 있다. 라틴어인줄을 알겠지만 그 내용은 모르겠어서 그냥 집에 놓아두었었는데, 한 번은 신부님들에게 보여드리려고 하였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집에 그냥 두고 있다. 하기야 요즘 세상에 누가 그런데 관심을 가지겠는가? 도대체가 책을 읽는 사람을 보기 힘들다. 공부 안하고 어떻게 진리를 찾을 수 있다는 말인지, 옛 선비들의 자세가 그립다. 다른 것도 아니고 천주교가 선비들의 공부로 우리 땅에 전래된 것이 아닌가?
 
사목위원이고, 사무실이고, 신부님이고 수도자고 간에 아무도 공부하는 사람을 못 보았다. 성인전 한 두권 읽고 그것만 옳다고 우기는 사람들, 매일 똑같은 기도만 반복해서 많이 하면 복 받을 것으로 생각하는 우리들이다. 물론 내 시야가 좁아서 열심히 공부하시는 사제님들, 수도자들 교우들을 못 보아서 그렇겠지만서두....
 
공부라기 보다는 보물이라고 해두자, 왜 길거리에 지천으로 깔린 이 보물들을 외면하고 지나치는지 의아한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이건 나만의 착각인가? 그게 무슨 보물이야, 넝마나 고물이지...., 하기야 고서점은 고물상으로 등록되어있다고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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