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화)
(녹)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성지순례ㅣ여행후기

"그분"이 불러주셔서.. 로마의 콜로세움, 트레비 분수에서 (네 번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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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항 [vinchen10] 쪽지 캡슐

2004-11-01 ㅣ No.422

"그분"을 사랑 함으로

   " ......... 
추억! 달빛을 봐요 / 추억이 당신을 이끌어요 / 마음을 열고 들어가세요 / 행복의 의미를 찾게 된다면 / 그 때는 새 삶이 시작될 거예요 .......... " 
 

화사한 주일 한 낮, 예술의 전당 오폐라 하우스에서 뮤지칼 "캣츠"를 보았지요, 달콤하면서도 우수에 젖은 "메모리"가 모처럼 극장을 찾은 제 가슴에 오래 남아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아니 오폐라 하우스 뒷 편 연못을 둘러보며 돌아가는 내내 제 귓가를 맴돌아 행복했습니다.

* * * *


  살래시오회 수사님이 관람 시간이 끝난 카타콤베의 고요한 정원 벤치에서 한가로이 성서를 읽고 있는 넓은 농원이 푸근해 보여 우리도 그만 주저앉고 싶네요. 이름 모를 나무 사이로 뛰어다니는 강아지하며, 순례자들의 요청에 함께 사진을 찍어주던 멋진 구렛나루 수사님의 빙그래 한입 배어물은 미소가 한없이 정겹던 카타콤베의 저녘풍경에 넋을 잃고 서 있습니다. 그대에게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멀리 있는 그대에게 저녘 인사를 드립니다 "살 롬"...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로 통하는 길들 중에서 남동쪽으로 통하는 길을 아피아 가도(via appia)라고 하는데 기원 전 312 년 이길을 닦은 아피우스 클라디우스의 이름을 딴 이 길은 로마군단의 개선 행렬이 통과하여 로마에 입성하던 길로 아직도 당시의 도로 포장이 그대로 남아 있고 장장 563 km에 걸친 이 도로 양 편에는 옛 로마의 귀족의 묘소와 키가 큰 소나무들이 옛날의 역사를 말하여 줍니다.
  래스패기의 교향시 "로마의 소나무"중 마지막 곡인 "아피아 가도(街道)의 소나무"는 행진곡의 탬포로 되어 있는데, 이 길을 통하여 입성하는 로마군단의 개선 행렬을 연상하게 하지요. 한번 들어보세요, 로마군인들의 은빛으로 빛나는 투구와 붉은 술, 햇빛에 번득이는 창검, 보무도 당당한 군인들의 군화 소리와 팩시밀리움 꼭대기에 솟아오를 듯 비상하는 독수리, 그리고 좌우에 늘어선 로마 시민들의 환호소리를...

  그러나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카타콤베에서 로마쪽으로 아피아 가도를 따라 조금 가다보면 "도미네 쿠오바디스 성당"이 길옆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네로의 기독교신자 박해(로마의 대 화재를 기독교신자들에게 누명을 씌우고 무자비한 탄압을 가함) 때 베드로 사도가 탄압을 피해 로마를 벗어나 성문을 빠져나와 아피아 가도를 따라 도망하고 있을 때 베드로는 로마로 들어가고 있는 예수님을 뵙게 됩니다.
  베드로가 "Domine,quo vadis?(주여,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묻자, 예수님은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러 간다." 하고 답하고는 사라지셨답니다. 이 만남으로 베드로 사도는 크게 뉘우치고 로마로 되돌아가 체포되어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였습니다.
   그 때 그리스도의 발자국이 아피아 가도의 돌 위에 남아 있고, 그돌은 이웃에 있는 성 세바스티아노 성당에 보관 되어 있지요.
  "그분"의 발자취와 치열한 베드로 사도의 믿음의 현장에서, 부족하고 죄많은 저를 불러 주신 "그분"께 말씀 여쭙습니다.
  "주님! 이처럼 크고도 깊은 당신의 사랑을 제가 어찌 감당하오리까..."

  그 먼 옛날의 베드로 사도, 성녀 체칠리아, 이름모를 순교자와 남몰래 숨어서 미사를 봉헌하던 초대교회 신자들, 동방에서 길 떠난 순례자가 세월의 다름을 느끼지 못한체 한데 섞여서 "그분"의 숨소리, 따뜻한 미소, 체온을 느끼며 먼 길을 돌아온 어린아이의 행복한 미소를 한웅큼 베어물고 있었소이다 그 고요한 카타콤베에서...

  바티칸 이야기가 빠졌다고요? 로마 순례의 가장 중요한 곳이라 한들 저는 감히 뭐라고 이야기의 실타래를 풀 수가 없습니다. 거룩한 것, 아름다움을 제대로 바라보고 느낄 수 있을 만큼 제가 성숙하지도, 거룩하지 못한 세속의 더러움만 확인하고 돌아옵니다,

  감히 한 말씀만 드린다면 "최후의 심판" 미캘란젤로의 벽화가 있는 시스티나 성당에 들어섰을 때, 검은 대리석의 예수님 좌상이었지요? 머리에 쓰고계신 가시관이 순간 내 가슴을 찔러 얼마나 아프던지 눈물을 글썽일 수 밖에, 뾰족한 바늘로 콕콕 찔러 일찌기 이렇게 심한 통증을 느껴본 적이 없었습니다,
  당신이 겪으셨던 이 고통, 내 마음 알아주지않는 사랑하는 사람들한테서 받는 배신감, 극심한 외로움 속에서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어리석은 사람들과 배신했던 제자들까지도 "저들은 자기들이 저지른 죄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요." 용서를 청하시던 "그분"의 한 없는 사랑을 넘치도록 가득히 받았다는 충만함에도 불구하고 내내 아려오는 제 가슴, 이 아픔은 사랑을 받을 자격도 없는 저의 송구함 땜일까요 부끄러움 때문일까요?

  저녘 어둠이 스멀 스멀 기어오는 콜로세움 인근에 자리했다는 네로의 대저택 터를 눈어림으로 짐작하며 생각해 봅니다.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또 하나의 허무를 실감하면서...
  완전함,거룩함과 인간이 가지는 최고의 덕인 헌신을 모욕하고 핍박했던 네로라는 인간을... 네로가 대변하는 끝없는 탐욕, 뿐만아니라 순결한 영혼에 대한 두려움과 질투로 자기를 파멸로 이끌던 끝간 데 모르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생각해봅니다. 

  네로의 허망한 집터에서 인간의 어찌 할 수 없는 한계를 우울하게 곱씹으며 내 키보다 더 긴 그림자를 밟고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금방이라도 터져나올 것같은 검투사의 비명과 잔인한 로마시민들의 피에 굶주린 고함 소리를 떨쳐버리며 오드리 햅번의 해맑은 미소와 천진스러운 웃음소리를 들으려고 "트레비 분수"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로마에 오는 관광객들이 꼭 들린다는 곳, 트레비 샘(Fontana di Trevi)- 뒤에 있는 궁전을 교묘하게 배경으로 집어 넣고 바다의 신 넵튠과 트리톤이 힘차게 약동하는 자세로 만들어진 이 트래비 분수는 교황 주최의 분수 콩쿨에서 우승한 작품이랍니다. 

  트레비, 왠지 멋스러운 이름이다 하시지만 그 뜻은 '삼거리'라는 말이지요. '삼거리 샘' 뭐 이런 이름이겠지요. 좀 촌스럽다구요? 

  이 샘에 동전을 던지면 다시 로마로 찾아올 수 있다는 에피소드도 에피소드이지만, 60년대 오드리헵번이 주연한 '로마의 휴일'에서 이곳 분수 앞에서 공주님인 헵번이 본젤라또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깔깔 웃는 천진스러운 연기를 펼친 탓에 역사적 유물이 즐비한 로마에서도 관광객들이 꼭 들르는 유명한 관광 명소가 되었다 합니다.  

  벌써 10여년이 되었나, 가족들과 처음으로 방문했던 때, 트레비 분수 앞에서 뒤로 돌아서 동전을 던졌지요. '꼭 다시 로마에 돌아올 수 있게해 주십사' 고...  그대는 트레비 분수의 아름다운 전설을 믿고 있나요? 그 덕분에 우리 내외가 이렇게 로마에 돌아와 트래비분수의 시원한 물줄기 앞에 서 있으니 그 전설은 맞다고 해야겠지요. 분수 옆 골목길에서 재빨리 본젤라또 아이스크림을 사서 맛있게 핥고 있는 제 아내야말로 정말 오드리헵번 뺨치게 닮았네요. 그럼 전....., 잘생긴 그레고리 팩이라 하면 욕먹겠지요?
  재미난 전설과 색색의 조명으로 동화처럼 피어오르는 분수에 서서 1유로 동전을 던지면서 아이처럼 그 전설이 제게 또 한번 이루게 해주십사고 기도했답니다, 제가 너무 욕심이 지나치다고요?

  전혀 겨울답지 않은 로마의 로만틱한 밤이 색색으로 빛나는 조명, 품어오르는 분수의 조화, 트레비 분수 어디에선가 오드리 햅번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 아름다운 동화 속의 분수에서 잠시 마음도 가볍게 꿈을 꾸었나 봅니다.

  그리운 그대에게 띄우는, 길 떠난 순례자가 드리는 깊은 밤인사를 트레비 분수에서 정갈하고 청량한 물소리를 들으며 이 맑음, 이 가벼움,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그대에게 전합니다. "샬 롬

********

 

  "...새벽! 해가 뜨기를 기다려야 해요 / 새로운 삶을 생각해야 하죠 / 포기하지 않겠어요 / 새벽이 오면 오늘밤도 추억으로 남겠죠 / 그리고 새 날이 시작되요............."

  감미로운 메모리를 흥얼거리며 로마의 추억을 끄집어내 보았습니다.

  인생은 이렇게 꿈을 포기하지 않는 지혜로운 사람(고양이?)들에 의해 펼쳐지는 축복이라고....  오드리 헵번의 까르르 맑은 웃음과 트레비의 정갈한 물소리, 켓츠의 메모리가 함께 떠올라 제가 얼마나 행복해 했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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