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5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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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현대사 - 씨앗의 독립 - 우장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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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길 [u90120] 쪽지 캡슐

2005-03-28 ㅣ No.81

 

'씨없는 수박'을 발명한 것으로 잘못 알려진 우장춘 박사,
그는 50년대 자본과 기술의 부족으로 황폐화한 한국농업의 부흥을 위해 혼신을 다 바친 세계적인 육종학자다.
그는 종자수입국이었던 한국을 종자수출국으로 탈바꿈시키고, 척박했던 한국의 육종산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우장춘은 45년 조국광복과 함께 영구 귀국하려 했으나 그러지 못하고, 50년 조국의 초청으로 귀국해 59년 타계할 때까지 만 9년 5개월 동안 혼신의 연구로 우량종자 생산체계를 확립, 일본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채소종자의 국내 자급길을 열었다.
또한 무병 감자종자의 생산으로 한국전쟁 이후 식량난을 해결하는데도 큰 기여를 했다.
우장춘은 1898년 일본동경에서 출생하였다.그의 아버지는 한말 을미사변 때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연루되어 일본으로 망명한 우범선이고, 어머니는 일본인이었다.
그는 일본에서의 차별대우와 시해사건에 연루된 아버지에 대한 속죄의 마음으로 어머니와 처자식을 모두 일본에 남겨두고 열악한 한국에 와 죽는 날까지 조국의 육종발전을 위한 연구에 모든 것을 바쳤다.
우창춘이 있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씨앗의 독립'을 이룰 수 있었고,해방후 절망뿐이었던 우리 농촌은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는 치열한 '종자전쟁' 시대에 생존해 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던 것이다.
세계적인 육종학자로 인정받던 우장춘,
그는 왜 편안한 길을 포기하고 가난한 조국을 선택했나?
3.1절을 앞두고 그 의미를 함께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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