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6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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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예수 그리스도 여기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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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찬 [ujesus] 쪽지 캡슐

2008-05-26 ㅣ No.120718

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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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예수 그리스도 여기 계신다!
(로날드 로울러 신부)

가톨릭 신자들은 성당에 들어갈 때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을 향해 무릎을 꿇거나 깊이 절을 한다. 그리고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가 항상 바치던 다음과 같은 경배의 기도문을 바치기도 한다.
"이곳과 온 세계 모든 교회 안에 계시는 지극히 거룩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여, 당신을 흠숭하나이다."

예수님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 가운데 현존하신다. 우리가 함께 기도할 때 당신의 돌보심과 염려하심으로써 우리와 함께 계시고 (마태 18,20) 당신의 대리자들을 통하여 세례를 주고 우리 죄를 용서하실 때 당신의 관대한 권능과 은총 안에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예수님의 현존]

그러나 성체성사 안에서는 더욱 특별하게 현존하신다. 우리가 영성체 하실 때나 감실 안에 계신 예수님께 말씀 드릴 때 그분은 지식이나 자비와 능력으로써 만이 아니라 친히 전적으로 거기 현존하신다. 축성된 빵과 포도주가 있는 곳은 어디나 주님의 실재성은 충만하여 그분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

예수님의 신적 본성은 언제 어디서나 모든 것에 존재한다. 하느님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실 수 있기에 이 세상에서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안에 하느님의 지혜와 사랑이 함께 있다.
신자들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어디에서나 계시는 주님이시지만 성체 안에 전적으로 현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로 달려간다. 그리고 그들은 알고 있다. 여기 현존하시는 분이 바로 내 형제가 되어 주신 주님이시고 당신 존재의 충만성 속에 계시는 예수님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 지상에서는 나를 위해 살으셨고, 나를 위해서 죽으셨으며, 다시 부활하신 예수님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다. 내가 쉽게 가까이 할 수 있도록 그리고 내 자신의 모든 것, 모든 희망과 염려를 맡길 수 있도록 현존하시는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예수님은 당신 영혼과 신성 안에 현존하시며 성체와 성혈 안에 전적으로 현존하신다. 당신의 전적인 존재가 이 거룩한 성사 안에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는 이 성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 고백하게 된다. "당신은 나의 주님이시며 구세주이십니다. 당신은 내가 당신과 함께 있을 수 있도록 여기 나와 함께 계시나이다. 당신은 전적으로 나와 함께 계시며 나를 돌보신다는 것을 내가 분명히 알도록, 또한 내가 나의 모든 일생과 모든 것을 당신께 드리고는 당신 안에 완전히 머물 수 있도록 지금 여기 계시나이다."

이것은 초대교회 때부터 지속되어 온 가톨릭 교회의 믿음이다. 최후만찬시 그리스도 친히 제자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들어 말씀하셨을 때, 그리고 미사 중에 그리스도의 사제들이 빵과 포도주를 들어 말하는 그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으뜸 사제로서 우리 구세주로서 우리 가운데 전적으로 현존하시는 것이다. 그분은 우리를 결코 잊어버릴 수 없는 친구처럼 우리에게 생명과 힘을 주는 생명의 빵으로서 거기에 현존하신다.



["이는 내 몸이니라"]
"이는 내 몸이다." 라고 그리스도께서는 빵을 들어 말씀하셨다. 순수한 빵이 주님의 "이는"이라고 하신 말씀과 무한한 돌보심의 능력으로 빵은 지금 주님의 살아있는 몸인 것이다. 그 빵은 이제 그분의 모든 것, 즉 그분의 신성과 주권과 그분이 되시는 모든 것, 생명을 주는 영혼으로서 살아있는 몸이며 그분은 우리와 함께 여기 전적으로 현존하신다.

예루살렘의 성 치릴로는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거룩한 도시에서 당신의 사람들에게 이것을 교회의 항구한 신앙으로 가르쳤다. 그리고 이런 내용의 본질을 신앙으로 가르침 받은 우리는 빵의 형상이고 그 맛은 빵이지만 실제로는 주님의 몸이라는 신앙과, 포도주의 형상이 즉 그 맛과 빛깔, 향기는 포도주이지만 실제로는 그리스도의 피라는 신앙에 확신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이 빵은 우리 영혼의 상태를 들어 올리는 영적인 음식으로 "이 빵을 받아 먹음으로써 우리의 마음을 튼튼히 하여야 한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를 비롯한 모든 성인들은 교회가 항상 이것을 가르치고 믿었음을 잘 알고 알았다. 우리가 미사를 드릴 때 우리 주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와 당신의 귀하신 몸으로써 그리고 우리에 대한 지극한 사랑 때문에 당신의 신성과 인성의 실재성으로써 우리에게 전적으로 현존하시게 되었다. 참으로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

교회는 미사 때 일어나는 이 놀라운 변화를 위하여 사제가 그리스도께 하신 이 말씀을 사용한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빵과 포도주를 당신의 몸과 피로 변화시킨다. 이를 교회는 "거룩한 변화" 라 한다.
"이는 내 몸이다." 이로써 이 빵은 바로 예수님이 들고 축성하시던 빵이 되며 이 빵은 바로 예수 자신이 되도록 만든 실재성이다. 빵의 형상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 축성 기도문이 말해질 때 그것은 이제 사람이며 하느님이신 우리 구세주가 되시고 우리의 주님이신 그분의 전 실재, 즉 살아있는 주님의 몸이 되는 것이다.
자연적인 실체 혹은 빵의 실재성은 더 이상 거기 없고 그 대신 거기에는 현존하는 주님의 실체가 있는 것이다. 보통의 빵이었던 그것은 주님이 선언한 대로 바로 살아있는 주님의 몸인 것이며 주님 자체인 것이다. 신앙만이 그것을 알고 기꺼워할 수 있다.

신심 깊은 가톨릭 신자들은 [성 토마스의 성체찬미]의 숭고한 말씀을 좋아한다. 그것은 가톨릭 교리에 우리의 주의력을 불러일으키는 말씀들이다.
"엎디어 절하나이다. 숨어 계신 천주성이여, 두 가지 허울 안에 분명 숨어 계시오니, 우러러 뵈올수록 전혀 알 길 없삽기에, 내 마음은 오직 믿을 뿐이오이다. 보고 맛보고 만져 봐도 알길 없고 다만 들음만으로 믿음 든든하오니, 믿나이다. 천주 성자 말씀하신 모든 것을. 진리의 말씀보다 더한 진실 없나이다."

이 말씀들은 우리 가톨릭 신앙과 생활의 핵심을 말하고 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 이것이 바로 우리 가톨릭 그리스도인의 힘이요 기쁨인 것이다.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성체를 경배하고 흠숭한다. 왜냐하면 그 안에서 예수님 친히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크나큰 신앙으로만, 은총 중에 성체를 영한다. 우리가 영하는 빵은 바로 우리의 주님이시요 구세주의 본체이며 실체이기 때문이다.

가톨릭교리 안에서 예수의 진정한 현존에 관하여 신앙이 말해 주는 모든 것을 읽는다는 것은 참으로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모든 가톨릭 신자들은 이런 말씀들을 주의깊게 읽을 시간을 마련해야 하는데 거기서 읽는 것은 다름아닌 우리 마음의 신앙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것을 새롭게 읽을 때 우리의 온 삶은 구세주의 은혜로운 현존에 따라 새로운 기쁨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

('Soul'지에서 / 마리아 77호 중에서 부분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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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성인의 통공 안에 있는 가족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요셉께 사랑을! )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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