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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를 아시나요? 인간보다 더 인간같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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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갈라파고스 발견 이후 가장 중요한 과학적 발견. 인류의 기원을 다시 기록할 것을 요구하다
이 책은 아프리카 콩고의 밀림 한가운데서 살고 있는 ‘보노보’라는 4번째 영장류에 대한 세계 최초의 종합적이며 대중적인 보고서이다. 다윈의 갈라파고스 발견 이후 가장 중요한 과학적 발견으로도 비견되는 이 ‘잊혀진 유인원’은 최근 ‘살아 있는 “잃어버린 고리”’, ‘인간 이외에 직립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최초의 영장류의 발견’, ‘모권제 사회의 살아 있는 실험실’이라는 경이적인 평가와 함께 국제 영장류학계와 인류학계, 여성학계, 사회학계의 열화와 같은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무엇보다 보기만 해도 즐겁고 읽기만 해도 가슴이 뿌듯한 책이다. 물론 이들에 대해서는 ‘매춘하는 동물’이니, ‘성 테크닉의 도사’니 하는 식으로 아주 단편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왜곡된평가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20세기에 마지막으로 발견된 이 동물의 연구자들의 연구 업적을 생생한 사진들과 함께 기록한 이 책이 이제 비로소 나오면서 서구학계는 ‘보노보 열광’에 휩싸여 있다. 이 보노보는 아마존 밀림에 못지 않게 광활한 적도의 한가운데 살기 때문에 심지어 지금도 접근하는 데 몇 주가 걸리는 오지 중의 오지에서 약 1만 마리밖에 살지 않는 데다, 포획된 개체 수도 채 몇 백 마리밖에 되지 않아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다가 이들이 사는 콩고 지역이 30여 년 동안 약 300만~500만 명이 목숨을 잃은 ‘콩고 내전’이 벌어진 지역이어서 연구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얼핏 보기에는 모양도 침팬지와 비슷해 ‘꼬마 침팬지’로 잘못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다윈이 갈라파고스라는 지구의 한 섬에서 거북이 등을 보고 진화론을 구상했듯이 이제 많은 학자들은 아프리카의 육지에 있는 또다른 섬에서 사는 이들 보노보를 통해 진화론과는 전혀 다른 인간 이해의 방식을 혁명적으로 제시한다. ‘사랑, 평등, 평화의 연금술사’로 불리는 보노보는 ‘약육강식’, ‘적자생존’, ‘도구를 만드는 동물’, ‘수컷 지배’, ‘집단 간 전쟁’ 등 인간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을 ‘동물의 본능’처럼 설명해온 거의 모든 가설을 재검토하거나 부인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동물이 인간 중심, 남성 중심, 힘 중심의 사회를 되돌아보게 하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노보라는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져 있는 침팬지와 함께 우리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친척인데도 말이다. 아니 그것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표지 사진을 비롯해 이 책 곳곳에 실려 있는 이 보노보의 얼굴을 잠깐만 들여다보아도 이들이 단지 ‘동물’이 아니라 얼마나 인간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금방 알 수 있다. 예컨대 원숭이의 눈이 노란데 반해 검고 깊은 이들의 눈을 바라보면 이들이 ‘원숭이’보다는 생각하고, 말하는 인간 쪽에 얼마나 더 가까운지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보노보는 신체 구조도 원숭이와 달리 직립에 가깝기 때문에 동물의 세계 중에서 인간과 함께 상대방의 얼굴을 보며 정상위로 섹스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기도 하다. 유명한 밀림 전문 사진 작가인 프란스 랜팅도 “어두움 속에서 사람 같은 것이 걸어나와 기겁을 했다”고 했을 정도로 이들의 자세는 직립에 가깝다. 그리고 이들의 서식지 인근 주민들도 다른 동물은 다 잡아먹어도 보노보만큼은 ‘우리의 조상’이라고 손을 대지 않는 터부를 지켜오고 있다고 한다. 제인 구달은 왐바에서 침팬지들이 도구를 사용하는 것을 발견했는데, 이것은 이후 동물도 인간과 같은 지능을 소유하고 있음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자주 인용되어 왔다. 그리고 상자 몇 개를 가져다 놓고 지붕에 바나바가 달려 있는 방에 원숭이를 들여보내는 실험은 원숭이의 지능을 실험하는 상투적인 방법이 되어 왔다. 하지만 보노보는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더 놀랍게도 보노보는 상징 언어로 인간과 거의 막힘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칸지’라는 보노보가 이 분야의 국제적 스타로 잘 알려져 있다. 이처럼 상징 언어를 이해하는 ‘총명함’으로 유명한 보노보는 동시에 풍부함 감수성으로도 유명하다. 198-200쪽에 걸쳐 ‘다른 존재에 대한 섬세한 배려’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는 글은 이들 보노보가 우리 인간 못지않게 아니 우리 인간보다 더 ‘함께 행복하게 살기’에 정통해 있다는 것을 절감하게 해준다. 이처럼 상징 언어로 인간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이들의 능력은 인간만이 상징적 동물이라는 기존의 학설을 의문시하도록 만든다. 인간이 동물로부터 인간으로 진화한 것을 도구 제작에서 찾는 기존의 인류학설은 동시에 도구의 제작과 함께 집단 사냥, 남성 지배, 계급 사회와 같은 진화론 모델로 이어진다 하지만 ‘상징 언어의 사용’과 ‘친밀성’이 기본적인 소통 수단인 보노보의 세계는 이러한 진화 경로를 근본적으로 의문시하도록 만든다. 사랑의 연금술사 : 전쟁이 아니라 사랑을 지금까지 보노보는 성과 관련해 단편적으로 왜곡되어 알려져 있지만 이 책을 가만히 읽어보면 보노보에 대한 그러한 잘못된 생각은 오히려 성에 대한 인간의 오만과 편견,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과 함께 정상위로 성행위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지만 보노보는 동시에 온갖 체위로, 온갖 상대와 무시로 성적인 접촉을 하는 동물로 유명하다. 그래서 보노보에게는 ‘호색한’, ‘매춘’ 등의 오명이 따라 다닌다. 하지만 이 세계 최초의 보고서는 전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오히려 성에 대한 기존의 모든 인간학적 사유를 원점으로 되돌려버린다. 예를 들어 인간 사회에서 성은 지배를 위한 도구이지만 보노보들 사이에서는 성은 화해와 협력을 위한 도구이다. 그리고 인간 사회에서는 권력에 따라 성이 불평등하게 분배되지만 보노보 사회에서는 성이 권력 관계의 긴장을 이완시키고 제거하는 기능을 한다. 게다가 성이 강제나 욕망의 배설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방이 흥미를 잃거나 즐거워하지 않으면 중간에 행위를 그만 둔다는 이들의 보고서를 읽다보면 보노보야말로 차라리 인간보다 훨씬 더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성이 사회의 아교와 같은 역할을 하는 보노보의 성생활을 보면 오직 인간만이 재생산을 목적으로 하지 않은 성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다는 가설 또한 무색해진다. 성이 욕망의 해소와 지배의 도구로 되어 있는 원숭이나 인간 세계와 달리 이들 보노보들에게서는 성이 평화와 우정의 매개체가 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 인간의 성에 대한 기존의 모든 상식(?)과 편견은 근본적인 재검토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평화와 평등의 연금술사 게다가 서열은 존재하지만 평등과 평화가 사회의 기본 원리로 유지되는 이 보노보 사회는 평등과 평화에 대한 기존의 모든 인간학적 사유를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게 만든다. 예를 들어 원숭이들의 경우 대장 원숭이가 바뀌면 이전의 대장 원숭이의 모든 새끼들을 죽여버리지만(이것은 코소보라든가 콩고 내전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에게서도 거의 마찬가지이다) 보노보 사회에서는 이러한 ‘유아 살해’를 찾아볼 수 없다. 또 늙거나 병든 동료, 또는 다른 장애를 가진 동료를 내팽개치거나 적자 생존의 냉엄한 자연 법칙에 내맡기는 것이 아니라 보듬고 배려하는 이들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는 누구나가 코가 찡해 올 것이다. 처음 이사온 늙은 보노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우왕좌왕하자 젊은 보노보들이 친절하게 그의 손을 끌고 가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즐거웁다. 또 다른 사례를 하나 더 보자. 한 학자가 보노보를 대상으로 녀석이 글자판에서 좋아하는 음식을 가리키면 그 음식을 갖다주는 실험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함께 있던 다른 보노보 두 마리에게는 다이어트를 시키고 있는 중이었고 실험 대상인 판바니샤에게 음식을 줄 때마다 이 두 녀석은 온갖 난리를 떨었다. 그런데 어느 날 판바니샤가 주스를 갖다달라고 하더니 동료 보노보를 손으로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 학자가 “이 주스를 쟤들에게 주고 싶니?”라고 묻자 녀석은 그들이 있는 곳을 향해 팔을 휘저으며 소리를 질렀다. 마치 자기가 먹는 맛있는 먹이를 동료들에게도 주고 싶어하는 것처럼. 이 밖에도 보노보가 다른 존재를 배려하고 이해한다는 인상을 주는 사례들이 많이 있다. 수컷의 힘이 아니라 모성적인 친밀성과 배려의 사회로 여기까지 읽다보면 이 보노보 사회가 힘과 완력, 폭력, 도구를 중심으로 하는 대부분의 다른 영장류 사회에서처럼 수컷 우위 사회가 아니라 친밀성, 상호 배려, 함께 살기의 대가인 암컷 중심 사회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페미니즘의 새로운 모델을 찾는 여성학계에서 이들에 주목하는 이유 또한 이 때문일 것이다. 보노보 사회는 성, 사랑, 에로티시즘, 결혼, 출산 등과 관련해서도 기존의 모든 인류학적 가설과는 또다른 모델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유인원 사회에서는 수컷이 무리를 지배한다. 또한 수컷들의 무리 내 서열이 확고하여 성은 서열이 높은 개체들에 의해 독점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서열이 바뀔 경우 새로 우두머리에 오른 개체가 이전 수컷의 새끼들을 죽여버리는 유아 살해가 드물지 않게 발생하기도 한다. 어린 새끼를 돌보는 암컷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다시 새끼를 밸 수 있으므로 새끼를 죽임으로써 기간을 단축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보노보 사회에서는 아직까지 유아 살해가 한 건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보노보 사회는 암컷 중심의 일종의 모권제적 모습을 보인다. 암컷들 사이에 좀더 긴밀한 유대관계가 이루어지는 반면 수컷들 사이에는 그러한 유대를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며 어른 수컷들은 대개 집단의 주변부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물론 보노보 사회에서도 무리 내 서열이 존재하며 서열이 높은 수컷들이 보다 많은 성행위 기회를 갖는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수컷의 서열은 어미의 서열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보노보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잦은 성행위와 암컷의 긴 발정기를 고려하면 수컷이 어느 새끼가 자기 새끼인지를 구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아직까지 보노보 사회에서 유아 살해가 한 건도 발견되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터파크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