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Re:등록이 정지될 때가 자주 있어 나누어 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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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포르투칼인들, 유럽인들 그리고 미국인들과 아시아인들로 구성된
수만 명의 인파가 5KM, 10KM DKSL 20KM 또는 더 먼거리를 도보로 순례
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어 파티마로 향했다. 40만의 순례자
들이 파티마에서 억수같이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도 기도하며 속죄를 한 바로
그 시각에 뉴욕에서는 UN총회가 개최되었다.
그자리에서 소련의 후루시초프는 기념할만한 연설을 했는데 구두를 벗어들고
연단을 치면서 제3차 세계대전을 위한 슈퍼로케트로 위협했다.
다음 날 포르투칼 신문에는 풍자적으로 ''후르시쵸프가 신발을 벗어들고 속죄했으니
좋은 징조다'' 라고 시사했다. 그리고 파티마를 순례하는 40만 명의 순례자들이 10cm
나 30cm에 이르는 진흙탕 속에 빠져서 기도하고 있을 때, 추루시쵸프는 갑자기 소환
명령을 받고 모스크바로 돌아갔다.
도데체 무슨일이 벌어진 것일까? 우리는 러시아 참모부의 육군대장이자 영국의 스파이
였다가 나중에 재판을 받고 피격된 올레르 펜크코프스키의 서류를 통해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소련에서는 후르시쵸프의 연설에 비중과 무게를 주기위해여 그 다음날 첫 번째
슈퍼로케트를 쏘아 올리기로 했다는 것이다. 네델린 장군과 200여명의 과학자와, 기술자
그리고 전문가들이 함께 지하에 있는 콘크리트의 방공호에 들어갔다. 로켓트가 점화되
었고 5분, 10분, 15분, 20분이 소요되었다. 그러나 로켓트는 솟아오르지 않았다. 네델린 장군
은 벙커에서 과학자들과 기술자들 그리고 참모들과 함께 밖으로 나오도록 명하고는
슈퍼로켓트로 옮겨갈 준비를 했다. 순간 로켓트는 바닥에서 폭발했고 네델린 장군은
거기에 참석했던 모든 사람과 함께 죽음을 당했다. 결국 슈퍼 로켓트는 발사되지 않았다.
그러나 140만명의 순례자들의 기도와 보속은 점화되었고 제3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적어도 연기되었다. 그러나 그 위험은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으므로 파티마
의 메세지는 생생히 살아있다.
1994년 하 안토니오 신부님(몬시뇰) 글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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