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103) 그 소는 지금 어디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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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방송에서 산골에 사는 할아버지가 15년동안 한식구처럼 살던 소를 팔려고 우시장에 나와 있는 모습을 보았다. 우시장 마당 말뚝에 매여 고개를 주억거리며 서있는 소가 왜 그리 처량해보이던지...... 15년간 함께 하던 소를 팔아야만 하는 노인의 속사정을 추측해 보았다. 한우 한마리가 수백만원은 할터인데 갑자기 큰 돈이 필요해서인가. 아니면 도시에 나간 자식에게 돈 부칠 피치못할 사정이 생겨서인가. 어쩌면 이제 할아버지는 너무 연로하셔서 서서히 주변정리를 하려고 소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려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애완견은 기르다 싫어지면 남주고, 병들어 죽으면 양지바른 언덕에 묻어주고, 닭은 단산(?)하여 알을 낳지 못하면 식육으로 전환시키고, 집지키는 개는 짖기만 하면 되니까 오래오래 데리고 살아도 문제될게 없을 것이다. 그러나 소는 워낙 덩치도 크고 몸값도 거금이니 병들어 죽을때까지 함께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15년을 함께 사는 동안 주인이 주는 여물을 먹으며 쟁기 끌고 논밭 갈면서 홈빡 정이 들었을텐데 아무리 말 못하는 소지만 자기를 팔려고 우시장에 온 주인에게 서운함을 느끼지는 않았을까. 사람이 정을 주면 짐승도 정을 주고 따른다는데......
우리 고향에선 소, 닭, 개는 기본적으로 키웠다. 그러나 15년동안 한 짐승을 키운 적은 없었다. 송아지를 낳으면 어미소는 팔았고, 닭은 병아리를 까고 나이 들면 손님이 오거나 무슨 때에 음식으로 만들어져 밥상에 올랐다. 개도 똑같은 녀석이 그렇게 오래도록 함께 하지는 않았던 기억이다. 사람의 필요에 의해서 그들의 운명은 결정지어졌다. 단명했다는 기억이다. 때문에 15년간 소와 함께 한 할아버지가 사실은 좀 특별나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렇게 오래 한 사이에선 비록 소가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헤어짐이 얼마나 아픔일까 싶어졌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은 상호적이고 대등한 입장에서 비록 배반을 당하더라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것이지만, 사람과 짐승사이에서의 경우는 일방적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주인이 정을 떼고 버리면 고스란히 버림받을 수밖에 없다. 슬픈지고! ㅡ정이란 무엇일까, 주는 걸까, 받는 걸까. 받을 땐 행복하고 줄 때는 안타까워.ㅡ 가사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그런 노래가 생각났다. 정을 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소는 쇠전 마당의 말뚝에 매인 채 가끔 한번씩 울음을 울며 고개를 주억거리는데 참 불쌍해 보였다. 늙은 소라 그런지 영 팔리지 않다가 드디어 임자가 나섰다. 사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왜 소를 사느냐고 물으니 키우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키우고 싶어서라? 키우려면 송아지나 좀 어린 소를 사다 키워야 기르는 맛도 있고, 금전적으로도 이득을 남길 수 있을텐데 왜 다 늙은 소를 사다가 키우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일을 부리기엔 늙었고 논밭 갈 일도 요즘은 별로 없을듯 한데 제발 도축장으로 끌려가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부디 젊은 새주인 밑에서 잘 살고 있었으면 하고 바래본다.
(연작시) 安 城 장 날
3. 쇠전 마당
길마 벗는 날이 천당 가는 날.
그래서 장마당 소들이 저래 코뚜레를 부비며 울까.
열두 달 머슴살아 간신히 붙든 어스레기조차 고리채에 밀려 끌려 나오고.
진천, 음성, 충주, 죽산 등지에서 가난을 떠받치던 몰골들이 쇠전 마당에 와 매이면 왜 그리 장마다 비가 오는지......
쇠전 다리 아래 울긋불긋 꽃불 켜지고 난장이 서면
하나 둘 소들은 천당행 표를 받고 저무는 영승재 고개를 넘는다. ( 시 : 임홍재)
註釋 : 어스레기 : 거의 중송아지만한 큰 송아지를 일컫는 말. (어스럭 송아지, 어석소, 어석송아지) 라고도 함.
위의 글은 2006년 1월6일 이 게시판에 올렸던 글입니다. 옛날 우리 고향집에서 키웠던 소는 대개 3년 이상은 함께 지냈던 걸로 기억합니다. 송아지를 낳으면 한동안 함께 키우다가 어느정도 자라면 송아지를 팔거나 아니면 어미소를 팔거나 둘 중에 하나였지요. 황소를 키운 적도 있는데 우리집 산의 길가 커다란 밤나무에 소를 매어놓으면 하루중일 거기서 풀을 뜯거나 길게 눕거나 앉아서 눈을 꿈뻑거리고 있었습니다. 인심이 얼마나 후했으면 누가 지키지 않아도 훔쳐가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 시절 소는 쟁기를 달고 논이나 밭을 가는데 없어선 안되는 중요한 일꾼이었습니다. 풀이 없는 계절의 소먹이는 여물이었죠. 가을 걷이가 끝나고 나면 마른 짚단이 쌓이는데 그 짚을 작두에 잘게 썰어 가마솥에 끓이면 소먹이가 됩니다. 가끔은 콩도 넣어 함께 끓였는데 그걸 쇠죽이라 불렀습니다. 요즘 문제가 되는 광우병은 30개월 이상 된 소에서 발생한다고 하는데 옛날 소는 몇년씩 길러도 소가 미쳤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풀과 볏짚과 콩을 먹여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요즘 볏짚은 농약때문에 소에게 먹일 수가 없겠죠? 50년 대, 60년 대엔 논에 농약치는 걸 본 일이 없으니까 볏짚도 먹일 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30개월 넘은 소는 그렇게 무서운 광우병의 위험이 있다는데, 2년 전 방송에서 보았던 15살짜리 그 소는 건강해보였으니 참 이상한 일입니다. 아니면 소도 시대 따라 다른 건지 20개월이 넘기 전에, 아니면 최소한 30개월 안에 모두 도축되어야만 인간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이야기인데 참 서글픈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옛날 우리 고향에서 키우던 적어도 3년 이상은 함께 하던 그 소들이 도축장으로 갔는지 아니면 일꾼으로 다른 농가에 팔려갔는지 알 길은 없으나, 아무튼 3년 4년이 지나도 미치지 않았던 소들이 왜 지금은 30개월이 넘으면 위험한 건지 정말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고 보면 소의 생존기간은 절대로 30개월을 넘어서는 안되는 것이네요. 안마당 한켠에 있던 외양간에서 밤이면 편안한 잠을 자며 대문 빗장을 걸고 주인집 사람들과 함께 했던 소 팔자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모르겠군요. 결국은 동물성 사료 때문인가요? 그러나 저러나 15살짜리 소를 사 간 그 사람은 지금 광우병과 미국 쇠고기 수입 문제로 이렇게 심각한 현실에서 그 소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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