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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소들아 미안하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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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참 기분 나쁠 사람으로 치면 먹거리 걱정하다 반미주의자 되어버린 사람들이고
기분 나쁜 동물로는 소를 당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웃기지도 않은 황당하고 기막힌 일을 보면 코미디 같다고들 하니 듣는 코미디언 기분 나쁠 것 같고, 죽는 날까지 살과 뼈와 가죽과 하다못해 꼬리와 무릎과 혀까지도 내장까지도 다 내놓고 충성하는 소, 우골탑을 쌓아 고향의 아들들을 가르치고 이 나라를 키운 소가 미친 소라고 징그러워 하는 소리 들으면 참 기분 아주 나쁘겠지요? 소처럼 우리에게 정감을 주는 동물은 없는 것 같습니다. 먹을 것을 주고 발에 가죽구두 꿰차고 핸드백 들고 가죽 소파에 앉아서 죽은 후에 우리 실생활로 들어 온 소가 정답다는 것이 아니고, 살아 음메 하는 소는 한국인의 정서 속에서 특별히도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고향길 느티나무 그늘아래 메어 있는 소, 착한 눈을 껌벅이며 낮은 구릉아래 온 마을이 다 울리게 음메 하는 소리는 고적하고 노곤한 오후의 햇살을 더 평화롭게 해 주지요. 선한농부의 구슬땀을 따라 밭고랑을 가는 누렁이 황소는 땅을 믿는 사람과 한 마음 이겠지요. 추운 겨울날 어린 소년의 입김과 쇠죽에서 피어오르는 김과 함께 하얗게 섞이는 어린 송아지의 콧김은 아랫목에 모여 앉은 그 식구들의 꿈이겠지요. 그 소년이 자라서 집을 떠날 때 손등으로 눈물 씻는 어머니 곁에서 듬직한 황소는 변함없이 마치 형님처럼 소년을 공부시키겠다고 고향을 지키고 있었지요. 아름다운 노래로 불려진 정지용의 시 향수 첫머리에도 어김없이 황소가 등장하지요.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이 시의 첫머리를 읽다 보면 어김없이 제 콧등이 시려지고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우리의 고향을 느낍니다. 김종삼 시인을 아시나요? 상당히 현대적이고 서양적인 미를 노래했던 세련된 도시적 그 시인 조차도 묵화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백번 천번 읊어 보아도 참으로 감동을 감출 수가 없는 시 입니다.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할머니의 굵고 거친 손마디가 주름 늘어진 늙은 소를 쓰다듬는 모습은 묵화 속에서 훈훈한 정감을 그려 냅니다. 비록 서로 적막하다고 하지만요... 김주영 작가는 산고를 겪는 어미소 곁에서 칠흑같은 밤에 장마비를 맞으며 돌보던 아버지를
통해 부정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정서와 가장 따뜻하게 교감하는 소가 멀리로 부터 병들고 미쳐서 죽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황소가 우유와 치즈와 스테이크를 주는 서양의 소와 다르다 한들 나무그늘 아래 풀 뜯으며 여유로운 목청을 울려야 할 소들이 갖힌 축사에서 사료를 먹으며 사는 것은 매 한가지 겠지요. 영어로 광우병은 BSE(Bovine Spongiform Encephalopathy)라는 정식 명칭이 있는데, 참 길고 복잡스럽지요? 스폰지폼이라는 말만 느낌이 옵니다. 뇌에 구멍이 송송 뚫린 모습으로요. 그러다 보니 이곳 사람들도 광우병을 쉽게 Mad cow disease 라고 부릅니다. 말 그대로 미친 소 병이라는 거지요. 소가 책임질 짓이라도 했답니까?
소를 나무랄 일입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소에게 미친 소라고 합니다.
풀 뜯는 소에게 사자나 호랑이로 착각한 사람들이 미친 사람들입니다.
소가 불쌍하니 이름을 바꿔 부르기를 원합니다.
그럼 뭐라고 바꿀까요? 뭐라고 해야 좋겠습니까? 불량식품 섭취 소? 불량환경 부적응 소? 동물학대 예민반응 소? 가학 인간에 반항하는 소? 영국에서 이미 1984년에 한 농부가 이상하게(weird+crazy) 행동하는 소를 본 것이 최초의 발병 이었다는데 이상한 행동이라는 것이 소가 몸의 균형을 잃어 걷지도 못하고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고 등이 굽어지고 침을 질질 흘리고 과도한 흥분을 보이는 등의 해괴한 짓이랍니다. 이런 증상이 나타나고 나면 두달 안에 죽는다는군요.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목장에서 싱그런 이슬맞은 풀을 먹은 소가 그럴리야 없겠지요? 풀만 먹고 살아야 할 소에게 값싼 단백질류, 먹다남은 육류나 심지어 소고기로 된 사료를 먹이니, 초식만 가능하게 생긴 소의 뇌조직이나 소화기관이 어떻게 견디어 낼까요? 잘못된 섭생으로 인한 화학작용이 소를 미친소로 몰아가고 말았습니다. 발달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물질의 척도로만 삶의 질을 따지려는 잡식동물 인간이 사람이 사람을 귀히 여기지 않는 것에 익숙해 진 나머지 소를 소대접 하지 않는 짓이야 당연지사로 저지르더니, 결국 소를 미치게 만들고 그 미친 소를 먹고 다시 인간이 미치고 죽게 생겼지요.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도 결국은 죽음을 맞이하겠지만 미친 소 먹고 죽는 것은 참으로 기가 막힌 일 일듯 합니다. 더구나 먹고 나서 6~7년 지난 후에 증상이 나타나는데 의학적인 치료법이 없는데다가 그 병에 걸리면 시력을 잃고 균형을 잃어 쓰러지고 기억상실에다가 근육협응이 이루어 지지 않고 정신 능력이 완전 상실되고 정신적 통제가 불가능 한 상태로 꼭 미친소와 똑같은 수준으로 의식을 잃고 죽음을 맞이한다니 말입니다. 물론 전세계에서 20 여년에 거쳐 130 명 정도가 광우병으로 인한 치명적 뇌손상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다른 모든 사망 원인에 비하면 예컨데 자동차 사고나 비행기 사고 보다 확률이 적다,...............
그로, 말 할 거리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철부지 인간도 있습니다. 광우병은 그런 부류의 철부지로 부터 생겨났다고 보면 과장일까요?
이쯤해서 모든 것이 미쳐가는 이 시대를 두려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적어도 자연 속에 살아가는 모든 것이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자연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와 자연에 대한 감사함을 기억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를 갈망하듯이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최소한의 자연을 몸에 지니고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 감당할 수 없는 자연의 힘이 무섭게 휘몰아 치는 공포를 만나게 되기 전에, 우리의 생명의 근원인 자연이 우리에게 삶과 사랑의 원천으로 남아지기를 희망하며, 모든 생명이 스스로 그러하게 살다가 또 그러하게 죽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도리어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이 미친 세상을 만들면서 소보고 미쳤다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적반하장인 듯 합니다. 우리는 상식선에서 분명히 삼가고 지켜야 할 어떤 것들을 분명히 지킴으로서 사람이 사람될 수 있듯이, 자연 속에 숨쉬는 모든 것들이 그들의 자연 그대로 살아 갈 수 있도록 적어도 인간이 그 선을 넘어가지는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사람은 날마다 자연을 잊은 듯 살아가지만, 자연이 우리를 포기하고 버리려 하는 날은 어찌될까 하는 서서히 밀려드는 두려움이 새삼스럽게 마음을 헤집는 날들 입니다. 그래서 미친소에게 저는 그냥 아픈 소라고 불러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미안하구나, 아픈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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