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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묵상해보는 성모님의 원죄없으신 잉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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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자 [littlebirds] 쪽지 캡슐

2008-05-12 ㅣ No.120317

 

복음서와 초기 교부들은 오직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데 전력을 다하였지만 차츰 마리아의 탁월한 신앙과성덕을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유스티노 교부(110~165년)는 하와의 불순명과 마리아의 순명을 최초로 대비시키면서 마리아의 성덕을 인식하는 출발점을 제공하였고 마리아의 신앙이 이루어 낸 구원의 업적을 인식하였다.

이레네오 교부(130/140~202년) 는 아담과 하와가 비틀어놓은 구원의 상황을 원천으로 회복시키는 데 마리아가 매우 중요한 역활을 수행하고 있음을 인식하면서 마리아-하와의 대조를 더욱 심화시켰다.

 

한편 나지안즈의 그레고리오(330년~389/390년)는 동정녀인 마리아가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고 하느님으로부터 성화의 은총을 받음으로써 깨끗해졌다는 주장을 함으로써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 교의를 선포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였다.

중세 초기에 이르러, 마리아는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데 합당할 만큼 무죄하고 깨끗하며 성덕에서도 완벽했다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었다, 하지만 원죄로부터의 면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보편적 능력을 삭감하는 것으로 간주하였기에 많은 논란이 일어났다. 그런 가운데 프란치스코회 복자 둔스 스코투스는(1265~1308년) 원죄로부터의 면제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보편적 중개 능력을 더욱 돋보이게 하며,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구원 은총을 미리 입어 원죄로 부터 보호되었다는 설명을 내놓았다.

프로테스탄트의 등장과 지성주의, 계몽주의 사조에 대한 반작용으로 성모 신심이 강해 지면서 "원죄 없으신 마리아"께 대한 신심도 널리 성행하였고 이것을 교의로 선포하자는 요청이 계속 제기되었다. 그런 가운데 성모님께서는 1830년 프랑스 파리의 카타리나 라브레 수녀에게 발현하셨을 때 " 오,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님. 당신께 의탁하는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라는 문구가 새겨진 메달을 만들라고 요청하셨는데 이는 원죄 없는 잉태 교의를 확정하는 데나 신심을 크게 일으키는데 큰 역활을 했다.

마침네 1854년 12월 8일 교황 비오 9세는 회칙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Ineffabilis deus)>을 통해 이렇게 천명하면서 마리아는 원죄 없이 잉태되었다는 교의를 확정지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는 잉태된 첫 순간부터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전능하신 하느님의 유일무이한 은총의 특전으로 말미암아 원죄에 물들지 않고 보존 되었다".

그로 부터 4년이 지난 1858년 성모님은 프랑스 루르드의 베르나르데트 수비루에게 발현하셔서 당신을 "원죄 없는 잉태"라고 지칭하심으로써 교의를 다시금 확정지으셨다.

마리아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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