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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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답변461]전례의 적극참여 노력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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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학 [yhim] 쪽지 캡슐

1999-10-07 ㅣ No.471

† 그리스도 우리의 기쁨

 

형제님의 전례에 대한 관심과 지적에 대해 의의가 깊다 하겠습니다.

사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는 평신도들의 적극적인 전례 참여를 권장하였습니다만 그렇지 못한 분들이 더 많은 실정이죠. 평신도로써 답변을 드리기에는 무례하다고 여겨지나 본당에서 전례봉사를 하는 관계로 여러 신자들로부터 비슷한 얘기를 들어온 터라 보관한 자료들을 근거로 말씀드리오니 참고가 되셨으면 합니다. 다소 길기는 하지만 우리 모두가 한 번 쯤 되짚어 볼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참고자료 : 효성가톨릭대  나기정 신부(경향잡지 1998)

                  베네딕도 수도회  김인영 신부(나눔자리)

                  대구대교구  김종헌 신부(굿뉴스 기고문)

 

질문1. 미사형식에 관하여

       지적하신 내용은 영성체후 기도를 위해 일어 섰다가 다시 앉아 공지사항을 듣고 또 일어나서 강복-퇴장성가를 해야하는 번거로움을 말씀하신 것인데, 다른 신부님께서는 영성체후 공지사항을 하고, 일어나서 기도와 강복-파견성가로 끝맺는 것을 두고 비교하신 것 같습니다.

원칙으로 말씀드린다면 두 가지 다 문제가 있다 하겠습니다.

먼저 영성체를 위한 행렬이 있고 그 뒤에 묵상(침묵) 그리고 일어서서 영성체후 기도 및 강복, 마지막 퇴장행렬로서 미사전례가 끝을 맺습니다. 전례가 모두 끝난 다음 자리에 앉아서 신자 대표로부터 공지사항을 듣는 것이 바르다 하겠지요. 그런데 형제님이 3번째 지적하신 내용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만 대다수의 신자들이 퇴장성가와 함께 문을 나가 버리니 교회 공동체가 중요한 결정사항에 대해 교우들에게 알림의 기회를 상실하는 사태로 발전되었지요 이것은 전적으로 우리 평신도들의 잘못이라고 판단됩니다.

예전처럼 미사가 끝나도 모든 신자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하나같이 봉사활동을 하거나, 기도에 전념하거나 단체활동이나 선교에 참여한다면 미사전례 중간에 별도의 공지사항을 말씀할 이유가 없겠지요, 산업사회속에 제각기 다른 삶의 방식을 갖고 있는 평균 칠천명의 신자수를 감안한다면 이 또한 궁여지책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주일미사만으로 주일을 거룩히 지낸냥 휑하니 달아나는 많은 신자들의 뒷모습을 보며 씁쓸함을 금할 길 없네요

 

덧붙여서 전례중에 일어서는 동작에 대해 그 의미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일어섬은 비그리스도인들과 마찬가지로 존경과 공경의 표시였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여기에 또 다른 의미를 덧붙였으니, 그것은 자신들이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갖는 자유를, 종살이에서 벗어난 자유인임을, 동시에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함을 드러내는 표지였습니다. 때문에 제1차 니체아 공의회(325년)는 부활의 기쁨을 드러내는 주일과 파스카 시기(부활시기)에 무릎을 꿇지 말고 서서 예배를 보도록 의무화시켰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은 이보다 훨씬 전인 2세기말의 교부(敎父) 떼르뚤리아노가 주장하던 바였습니다.

또한 일어섬은 희망과 믿음으로 종말을 기다리는 사람의 자세이자, 사제직을 수행하는 이의 자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제직이란, 신품성사를 통해 사제가 된 이들의 직분만을 뜻하지 않고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물려받은 모든 신자를 말합니다. 성찬례 안에서만 그 뜻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회당에서 성서를 읽으실 때 일어서셨다는 복음의 기술(루가 4,16)을 미루어 알 수 있듯이 서 있는 동작은 하느님 말씀에 대한 경청과 존경심을 가리킵니다. 알렐루야와 더불어 시작되는 복음 낭독 때 우리 모두가 일어서는 것은 바로 사제를 통해 말씀하시는 주님께 경의를 표하기 위한 것입니다.

서 있는 자세는 또한 마르 11,25(여러분이 서서 기도하려고 할 때에 …)와 루가 18,11-13(바리사이와 세리에 관한 비유)에서 볼 수 있듯이 하느님께 기도하는 이의 자세이기도 합니다. 사제가 성당에 입당할 때부터 본기도를 할 때까지, 신앙고백부터 보편 지향 기도를 할 때까지, 이외 미사중에 일어서는 것은 사제와 더불어 함께 기도하기 위한 것입니다. 성 베네딕도에 의하면 수도자들은 시편을 노래할 때 서서 하였다고 합니다.

몸이 불편하신 분들께 서는 것을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수호천사가 대신해 주리라 생각되니까

 

다른 전례 동작들과 마찬가지로 행렬 또한 기능적 목적과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작 예식 때 제대를 향한 사제와 봉사자들의 행렬, 봉헌 행렬, 영성체 행렬, 이렇게 세 번의 행렬이 성찬례(미사)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각 행렬이 미사를 시작하기 위해 제대로 나아가는 것, 봉헌을 하는 것, 영성체를 하는 것과 같은 기능적 목적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 세 행렬은 다음과 같은 상징적 의미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함과 동시에 성찬례가 이루어지는 공간인 제대를 향해 나아감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가 완전한 주권을 행사하는 세상 종말을 향해 순례하는 교회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중세 초기에 만들어진 바실리카 양식(직사각형의 내부 구조를 가지고 있음)의 성당들을 보면 벽에 그림이나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는데, 여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제대 또는 제대 위 벽이나 천장에 그려져 있는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습니다. 이것 또한 일종의 종말론적인 행렬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며, 우리의 행렬과 일맥 상통한다 하겠습니다.

따라서 예물 봉헌이 끝났으니까 마지막 봉헌자가 제자리로 돌아가건 말건 후다닥 다음 전례를 시작하자는 외적인 단순함에 그치지 말고 짧은 시간 동안 만이라도 그리스도의 상징인 제대를 향해 침묵하며 마음을 함께 봉헌하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질문2. 미사곡 선정에 관하여

       새롭게 바뀐 미사곡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자니 그렇고 따라 부르자니 어렵고 참 난감하네요 .

조금 빗나간 얘기같습니다만 형제님 본당 성가게시판에도 입당,봉헌,성체,퇴장(행렬성가) 번호만 나열되어 있지요? 응송, 복음환호송, 거룩하시도다, 아멘, 마침영광송 영성체송등은 왜 없을까요?

현재 우리 한국 교회는 아직 본격적인 전례 음악이 나와 있지 않다고 이해 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입당송과 영성체송을 성가책에 있는 노래로 바꾸어 부르고 있는 실정이다보니 신자들에게 그날 복음을 미리 맛보이고(입당 노래) 다시 한번 상기하게 하는(영성체 노래) 것이 되지 못하고 안타깝게도 몇몇 본당에서는 그날 복음과 전혀 관계없는 노래를 선택하여 전례의 묘미를 살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전례 음악은 미사에 신자들이 더욱더 잘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데 그 역할이 있습니다. .

성가를 준비하는 이들도 그 주일 복음의 주제와 일치하는 곡을 성가책 안에서 찾아내려고 애를 쓰지만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성가책 529곡 가운데 많은 곡이 뚜렷한 주제가 드러나 있지 않은 것들이라서 매주 복음의 주제에 맞는 곡을 고른다는 것이 무척 어려운 실정입니다.

원래 가톨릭의 전통은 그레고리오 성가가 성직자와 성가대에 의해 불리어졌으며, 지금 우리 성가책에서 보는 찬미가 형태의 노래는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개신교는 태어날 때부터 신자들이 예배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회중찬미가 (Congregational Hymn)를 모국어로 노래하도록 장려하였고, 이런 독일의 개신교 전통이 가톨릭으로 흘러 들어오게 되어 미사 간간이 그것도 미사의 기도문과는 전혀 상관없는 다른

가사를 노래하게 된 것이지요. 그러다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각 나라의 모국어로 된 전례성가를 장려하게 되었지만, 전례문에 맞춘 성가를 미쳐 준비해 두지 못하였던 우리 나라를 비롯한 거의 대부분의 나라들은 이런 찬미가 형태의 곡을 빌려 쓰기 시작하였고 오늘날까지 우리는 아직도 이 행렬성가(입당,봉헌,영성체,퇴장)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또 하나 생각해 볼 문제로서 이제는 복음의 묵상과 전달도 그 시대에 맞게 새로이 표현되어야 하며 따라서 전례곡도 계속 새로운 것이 나와야 겠다는 견해를 피력해 봅니다. 이를 위해서는 고정된 성가책을 발행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새 곡이 계속 발표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봅니다.

프랑스에서는 새 곡이 발표되면 그것을 낱장 형태로 판매합니다. 각 본당이나 공동체는 그런 곡들 가운데 자기들에게 맞는 것을 사 모읍니다. 그럼으로써 작곡가들은 계속 새 곡을 낼 수 있고, 각 공동체는 자기들에게 맞는 것을 골라 전례에 이용할 수 있는 여지를 갖게 됩니다. 그래서 무조건 기존의 성가책에 들어 있는 곡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참으로 복음에 맞는 아름다운 곡이 있다면 과감하게 받아들이는 노력이 본당 차원에서, 넓게는 한국 교회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 정서에 별로 맞지 않는 외국곡들, 전례학적으로

미사중에 사용할 수 없는 곡들을 고집할 이유는 없지 않겠습니까?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특히 청소년미사나 청년미사에 참여하신 분들이 겪는 성가의 불편함을 지적하는 것으로서, 일부이기는 하나 세대차이라고 보아 넘기기에 너무 심할 정도로 성가책에도 없는 인준받지 아니한 자극적인 곡들을 선곡함으로써, 보편적인 일반 신자들이 따라 부르기에 너무 어려운 사태를 초래하고 있음을 봅니다.(신자들은 노래부르기 위해 미사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이런 선곡방법은 미사에 참여하는 모든 신자들이 함께 누려야 하는 미사의 은총을 해하는 것으로써 마땅히 지양되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모든 신자가 함께 부를 수 있어야 하고 또 부르기 쉬운 곡이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성가집이외의 곡을 선곡할 때는 철저한 검증이 뒤따른 후에 모두가 익숙한 다음 전례 때에 사용하도록 교회는 권장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현재 가톨릭성가책도 좀더 보완되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겠고, 우리 신자들도 성가를 큰 소리로 부를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질문3. 미사시간 지키기

       현대를 "초스피드 시대"라고들 합니다. 거리를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은 무엇엔가 쫓기는 사람들처럼 전혀 여유가 없어 보입니다. 독서 경향도, 많은 양의 문학작품보다는 짧은 우화나 동화 또는 만화를 더 좋아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경향이 전례 안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꽉 짜여진 미사 시간표, 그러다 보니 정해진 시간 안에 미사를 마치기 위해서 주례자나 신자 할 것 없이 정해진 예식에 맞추어 일사천리로 나아갑니다.

형제님께서는 주일 미사보다 더 중요한 업무가 있다는 예외적인 분들의 현실을 감안하자고 하셨는데 날이 갈 수록 기성 신자들의 뇌리에서도 주일 휴식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희박해져 가고 있고, 미사 참례만 하면 그것으로 주일의 모든 의무를 다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고 방식이 일반화 되어 가고 있는 것을 보며 저 역시 안타깝네요..  

 

그런데 저희 본당에서는 오히려 반대로 주일 강론만 40분이상 하는 경우가 종종있습니다. 특강이라고 하여 평일에 달리 신자들을 모으기가 힘든 이유도 있지만 주일을 거룩히 보내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지요, 미리 알려주기 때문에 불평도 없구요, 오히려 모두들 강론에서 감명을 많이 받았다고 흐뭇해 한답니다(강론 때문에 은혜를 입은양 착각)

 

우리는 미사 전례를 통해 하느님과 만나고 사랑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미사 전례를 통해 얻은 기쁨과 행복을 이제 일상에서 새롭게 시작하기를 다짐해야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미사의 ’파견’입니다. 파견은 지금의 만남에서 떠나 이웃에게로 다가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만의 또는 우리 공동체 사이의 교류와 나눔이 이제 나의 일상과 이웃과의 새로운 만남, 우리가 받았던 은혜와 기쁨을 나누는 일을 시작한다고 생각하십시요.

미사의 파견은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머무르시기를 기원하는 축복과 이어지는 대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때에는 미사를 통해 이루었던 체험과 기쁨의 마음을 표현하고 그 기쁨을 일상에서 똑같은 마음으로 간직하고 ’평화’를 구현하기를 기원하는 것입니다.그래서 교회는, ’미사 전례에 참여한 교우들이 주님을 찬미, 찬송하며 선행을 하도록 파견된다.’(미사 전례 총지침, 57항 2)라고 했던 것입니다.

 

미사가 신약의 빠스카 잔치요, 주님을 기리는 가장 완전한 제사라면 주일미사에 참례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특권이며 영광된 의무일진데 시간과 여건이 허락하면 주님께 대한 보다 많은 상념과 기도에 힘쓰고 자신의 영신사정에 골몰하거나 복음전파에 힘쓰는 일도 ’주님의 날’에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아닌가 되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유언인 사랑의 새 계명을 깊이 묵상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일 또한 주님의 날에 특별히 힘써야 할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따라서 질문하신 미사의 마침시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겠지요.

                              

                          문정동성당 임용학 스다니슬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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