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화)
(녹)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성지순례ㅣ여행후기

"그분"이 불러주셔서--쾰른 성당과 파리의 노트르담 (열 두번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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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항 [vinchen10] 쪽지 캡슐

2004-12-19 ㅣ No.431



   "그분"을 사랑함에

  군자란은 넘치는 기운을 온통 꽃으로 쏟아내려는 듯 베란다에는 지금 화려한 불꽃잔치가 벌어집니다. 또 볼만한 것은 군자란 아래로 보이는 정원에는 흐드러지게 핀 목련이 희디 흰 자태를 뽐내며 가지마다 무겁지도 않은지 한 아름의 꽃 송이 송이를 껴안고 있어서 보는 사람이 외려 조마 조마해 합니다.
  어쩌면 루이 14세 시대 베루사이유 궁전 무도회에서 화려한 맵시를 뽐내며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던 공작 부인이라도 저렇게 노골적으로 눈 어지럽히지 않았을 겝니다.
  담장 따라 노란 꽃잎을 삐죽삐죽 내밀며 다음 차례는 자기라고 신고하는 개나리는 어쩌고요, 아뭏튼 시새움 많은 봄날, 우리 정원은 이렇게 무르익어 가고 있습니다.
  제가 오늘 무슨 넥타이 맨지 아세요? 개나리를 환영하는 의미에서 노란 넥타이를 골랐습니다. 별꼴이라고요? 꽃들의 시새움 넘치는 향연에 저까지 끼어 들어 어지럽힌다고요...
뭐 어때요, 저는 말이죠, 봄이란 "어지럽다"라고 풉니다. 새로운 생명이 움터오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아직 안정이랄까, 저마다의 질서가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생명의 욕구는 엄청난 에너지로 분출되는데 반해 교통정리해 주는 어떤 힘이 아쉬운 때이기도 하지요.

       * * * *

  잘 차려진 바뇌의 점심을 우아하게 끝내고서 버스로 길을 나섭니다. 잘 닦여진 아우토반을 달리며 벨지움과 곧이어 다가오는 독일 촌락을 비교해보면서 이제는 독일 땅에 들어섭니다.
  참, 가이드한테 들었는데 벨기에는 고속도로에 가로등이 켜져 있다네요, 그래서 교통사고가 훨씬 줄었답니다. 그러고보니 우리나라에는 고속도로에 가로등이 있던가요?

두 시간쯤 달렸나, 쾰른입니다. 독일의 북서부 지역의 큰 도시인 쾰른은 라인강 좌안에 위치하며 인구는 약 91만명의 독일 4대 도시이고 철도교통의 최대 중심지이며, 도시의 생성이 로마의 식민지로 시작한탓으로 로마의 유적이 많이 남아있지만 뭐니뭐니해도 중세기 독일 최대의 성당인 쾰른성당이 가장 유명하지요.
  그러나 무엇보다 이 도시는 활기가 넘쳐 흘러서 좋았습니다. 지하철의 굉음과 투박하기짝이 없는 독일어, 거리를 메우고 달리는 아우디,베엠베, 벤츠가 새삼 여기가 독일 임을 깨닫게 합니다.

  제일 먼저 쾰른 성당으로 가봐야겠지요, 세계 4대 성당이랍니다. 바티칸, 밀라노..에이, 잘 모르겠습니다만 엄청 크기는 대단했습니다.
우선 무엇보다 특이한 것은 성당 외관이 시커멓게 불에 그을린 듯 별로 깨끗해 보이지 않았고 더우기 성당 전면에 있는 높이 157미터의 쌍탑 꼭대기의 유리창은 더러 깨어진 그대로여서 피난민촌에 우뚝 선 성당같아서 별로 정이 안갔습니다.
  그리고 성당 앞 광장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 아무리 노력해 보아도 한 컷에 그 전경이 다 들어 오지 않을 정도로 너무 크고 높다고 해야겠지요.

  이 성당은 1,248년 구 성당 대신 건축가 게르하르트에 의해서 착공된 이래 1,880년에서야 마무리 되었답니다. 대단하지요! 오랜 세월을 두고 하나 하나 정성을 다하여 완성하는 놀라운 끈기와 집념이 오늘의 부강한 독일을 일으켰나 봅니다.

쾰른은 회중석(會衆席) 좌 우측에 각 두개의 측랑(側廊)을 배치한 오랑식(五廊式) 회당부로 짜여져 있지요. 반구형 제대 전면에는 길죽한 수직의 스테인글라스의 다섯개 창--  제일 아랫층과 삼층은 길죽한 반면 사이에 끼인 두 번째 창은 나즈막합니다.--을 통해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습니다. 유심히 살펴 보지 못했습니다만 스테인글라스가 프랑스에 비해 단조로워 보였고 그래서 더 많은 하얀 빛으로 성스러운 제대 위를 적시나 봅니다. 
프랑스의 성당을 모방한 프랑스식 고딕 양식에 속하는 이 성당은 열주(列柱)의 간격을 좁혀서 수직선의 효과를 강조한 나머지 수평의 효과를 극력 억제한 내부가 단조로워 보이네요. 반면 너무 높기만 해서 사람이 외려 소외감을 느낀달까, 친근함이 결핍되어 보이는 건 아무래도 제 편견이겠지요.

  옛날 중세 유럽사람들은 하느님께 향한 경건함과 그리움으로 하늘을 향해 높게 높게 뾰죽하니 교회를 올렸답니다. 이것이 바로 고딕양식이라고 하지요. 그래도 오늘은 왠지 심술이 나서 이제껏 보아왔던 성당이 지니는 기도하고 묵상하는 분위기가 모자란듯 쾰른은 좀 달라 보였습니다. 독일의 젖줄인 라인강이 관통해 흐르는 도시인 쾰른은 로마와 중세의 유적들이 함께 어우러진 곳이다. 라인강을 통한 뱃길 운송 덕분에 쾰른은 오래전부터 독일의 주요 도시로 성장했다. 식민지라는 뜻인 ‘콜로니아(colonia)’에서 유래된 명칭인 쾰른은 BC 38년 로마의 지배를 받으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쾰른 시내에서는 아직까지도 로마시대 유적지가 여러 곳에 남아 있어서 당시 화려했던 영화를 가늠할 수 있다.

쾰른 관광의 시작은 대성당에서 시작된다. 이 성당은 쾰른 교통의 중심인 ‘쾰른 중앙역’ 바로 인근에 있다. 중앙역은 독일 전역과 주변국인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등을 연결하는 유럽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대성당 주변에는 각종 쇼핑 거리가 펼쳐지며, 북쪽으로 몇 블록만 가면 저렴하고 쾌적한 숙소들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쾰른 대성당은 지상 최고의 건축물이라는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사원’ 처럼 웅장한 석조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여준다. 앙코르와트는 1113년부터 30여년에 걸쳐 지어졌지만, 쾰른 대성당은 600여년이라는 엄청난 건축 기간을 필요로 했다.

쾰른 대성당은 대주교 ‘라인란트 폰 다셀’이 지난 1164년에 예수 탄생을 축하한 동방박사 3인의 유골을 밀라노에서 가져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건축됐다. 각종 기부금과 복권 발행 등을 통해서 건립된 대성당은 서쪽 첨탑이 157m에 달해 독일에서 두번째로 높으며, 고딕 양식 건물의 절정을 보여준다. 하늘을 찌를듯이 우뚝 솟은 첨탑들 아래에는 갖가지 화려한 조각품들이 성당 외벽에 꾸며져 여러 미술 작품들을 함꺼번에 보는 듯하다.

대성당 내부에는 동방박사 유골함과 함께 기적을 일으키는 성모상,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 십자가 등 각종 유물이 보관돼 있다. 또 독일 화가 슈테판 로흐너가 그린 ‘동방박사의 경배’도 성당에서 빼놓지 말고 보아야 할 볼거리다.


관광객이 참 많아서인지 어수선하기 짝이 없고 성당벽을 따라 열주 사이에는 조그만 제대와 성모님상도 많았지만 솔직히 기도하고 싶지 않았다면 어찌 생각하시겠습니까? 이태리와 영국, 프랑스에 꿀리고 싶지 않은 자존심 땜에 덩그렇게 교회만 쌓아올린 게 아닌가고 터무니 없이 트집을 잡아봅니다.
저희 본당 교우가 98년도인가 성지 순례왔을 때 일행이던 유명한 성악가 김청자 교수가 이곳 쾰른 성당 넓은 성전에서 북받혀 끓어오르는 열정을 어찌할 수 없어 구노의 아베마리아를 열창했답니다. 그때 아베마리아를 들으면서 온 몸에 전율이 흐를 정도로 감격에 넘쳤다지요.  마침 그 자리에 있던 관광객들로 부터 우뢰와 같은 박수를 받았답니다. 꽤나 낭만적인 에피소드를 들었을 때 얼마나 오고싶던지... 그런데, 오늘은 왜 이리 허전해하는지, 제 변덕을 용서하시라.

  두서없이 순례기를 쓰느라 파리의 그 유명한 노트르담 성당(Cathedrale de Notre-Dame de Paris)을 빼먹고 넘어왔네요. 잘 아시겠지만 노트르담이란 말은 "우리의 어머니"라는 뜻으로 1,638년 루이13세가 프랑스를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한 이래, 프랑스에는 노트르담으로 명명된 성당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생겨 났습다. 이미 제가 브뤼셀에 있는 노트르담은 소개 드렸지요.
  파리 한 가운데 세느강변이 두 갈래로 나누어 흐르다가 다시 합치면서 만들어진 시테섬(우리나라의 여의도를 연상하시라)에 자리한 주교좌 성당 노트르담은 1,159년 36세의 나이로 파리  대교구장이된 모리스 드 쉴리에 의해 계획되어 185년이 지난 1,345년에 완성된 유서깊은 교회랍니다.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다비드의 그림, 나폴래옹 대관식의 무대가 바로 이곳이지요.  프랑스 역사를 통해 종교적, 정치적 대사건의 무대로 자주 등장하는 노트르담에 제가 다가 갑니다. 그 웅장한 외관에서 가득히 번져나오는 안온함, 부드러움, 이름에 걸맞게 영원한 모성적인 부드러움이 저를 받아들입니다.

   "잘 왔다, 세상사가 힘들었나보다, 이리 오렴..."

프랑스 예술의 극치라고까지 극찬받는 노트르담은 그 구조에 있어 완벽함을 자랑한다지요, 하느님의 영광과 인간의 기쁨을 위해 모든 형태의 예술이 집약된 인간의 위대한 봉헌이라고 말씀드린다면 어떨까요?

  성당의 정면은 각기 다른 크기의 세개의 반 아치형 문이 있습니다. 중앙의 문은 최후 심판의 문으로 예수의 수난에 이용된 도구들을 잡고 있는 천사들과 무릎을 꿇고 인류를 위해 중재하고 있는 성모님과 성 요한에 둘러 쌓인체, 슬픈 모습으로 그리스도께서 좌정하고 계십니다. 그 아래로는 미카엘 천사가 영혼들을 저울질하여 어떤 사람들은 왼쪽의 아브라함을 향해 가게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오른쪽 지옥으로 향하게 하는 장면이 조각되어 있지요.

왼쪽은 성모의 문이며 오른쪽은 성녀 안나의 문이랍니다. 그래서인지 성모의 문 문설주에 조각되어 있는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상은 얼굴표정이 아주 아름다운 평온함을 보여주고 있답니다.

성모님 모습을 그린 조각과 그림을 보면 한결같이 젊고 아릿답게 묘사하고 있어요. 요샛말로 얼짱이라 하나요? 

제 소견으로는 기약없이 평생을 기다려 온 인고의 세월, 외 아드님이자 주님이신  "그분" 옆에서 말없이 바라보며 더러는 알 수 없는 신비를 마음에 담고 새기던 성모님.  참혹한 "그분"의 수난에 가슴은 칼에 찔리는 듯 에이는 아픔을 참고 견디며 살아온 순명의 표상인 성모님의 인생을 지향하는 인간의 갸륵한 마음이 그리 했겠지요.

아름답다는 것은 축복이지요. 어느 영성가는 마리아가 흑색의 머리카락과 눈빛을 지니고, 피부는 백적색이었으며, 완전한 아름다움의 소유자라고 확신하면서 나름대로 근거를 제시합니다. "육신은 영혼을 향하여 정립되어 있고, 육신의 아름다움은 영혼의 아름다움에 좌우된다. 따라서 가장 완전하고 아름다운 영혼이 있는 곳에는 가장 아름다운 육신이 있어야 한다." 제가 따온 이 견해에 동의 하시나요? 

 

  중세 교회 건축에 있어 조각과 스태인 글라스는 대개 성인들과 성서의 내용(천지창조, 노아의 홍수, 지옥도 등)을 표현하고 있지요. 이것을 개신교에서는 우상숭배라고 일갈하며 캘빈, 쯔빙글러 같이 개신교를 만들어 나간 사람들은 성상과 조각예술품을 교회에서 파괴하고 불태워 버리는 어리석은 짓을 자행했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요.

  생각해 보세요? 그 당시 유럽의 일반신자들은 대개 문맹자였답니다. 그리고 인쇄기가 발명되기 전이라 성서가 얼마나 귀한 것이었을까요. 성서를 볼 수 없으니까 교회 안에 성서 내용을 그린 조각과 그림은 일반교우들에게 성서와 교리를 가르치는 교육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었답니다. 터키 이스탄불의 소피아성당을 보세요. 한때 동로마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풀에서 제일 큰 성당으로 지어졌지만 이슬람국가로 변신한 이래 이슬람 사원으로 다시 태어났지요. 당연히 가톨릭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조각품과 성화를 파괴하지 않았답니다. 가톨릭 조각물과 성화 위에 다시 이슬람의 종교적 장식을 덧붙인 셈으로 지금도 뜯어 보면 온전히 보존된 가톨릭 성화와 각종 조각을 볼 수 있다네요.

  비록 종교가 다르다 해도 남이 믿는 종교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지금도 북한산에 자리한 사찰은 한밤 중에 인근 기도소에서 철야기도를 하다가 올라와서 불상에 페인트칠을 하거나 돌부처님 목을 부러뜨리는 몰지각한 개신교 광신자들이 있는 모양이예요. 뭐 뻔하지요. 우상숭배를 한다고 멀쩡하게 다른 종교를 핍박하는 별종 때문에 한 하느님을 믿는 우리까지 부끄럽지 뭐예요.  

 

  이렇게 저를 이끄시는대로 안으로 들어갑니다.
길이 130미터, 폭 48미터, 높이 35미터의 노트르담은 6,5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넉넉한 품을 가지고 우리를 맞이하더군요.

제대도 기하학적이라고 해야하나, 현대적인 감각으로 만들어졌고 촛대, 해설대 그 모든 것이 지극히 프랑스의 예술적 감각으로 빚어진 터라 그 단순함과 곡선이 주는 아름다움은 저의 몰 예술적인 안목으로 설명해드릴 수 없어 그저 입을 다물 수밖에요. 그런대 잠시 뜸을 들이며 보노라니 그건 바티칸 공의회 후에 만들어진 현대적인 제대이고 벽쪽으로 성모님의 피에타! 그래요, 예수님의 싸느란 시신을 무릎에 올려놓고 비탄에 빠진 성모님과 두사람의 여인들, 좌 우편에는 검은 대리석으로 조각된 천사가 지켜주는 하얀 대리석 제단이 사뭇 침통하게 다가옵니다. 이 제대가 공의회 이전의 제대랍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제대는 프랑스의 멋스러움이 풍부한 모던제대라고 할까요.  그런데 그런데....저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황홀하게 서 있었지요.
 오- 세상에 !!! 제대에서 위를 올려보니 엄청나게 커다란 원형의 스테인 글라스 창(窓)이 신비하게 떠 있습니다. Rosetum 장미창(薔薇窓)이라 하지요? 그냥 하늘에 둥실 떠올라 있는 듯 그 아름다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신비함이, 오묘한 황홀함이 저를 홀리는데.....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의 제대는 돔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으로 환하게 빛난다면, 노틀담은 형형색색의 장미창을 통해 신비하게 비추어지는 빛은 색유리의 옷을 걸쳐 입고 우리네 알몸의 영혼을 폭포수 처럼 적십니다. 

  고딕 교회의 둥근 창을 장미창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장미가 지혜의 꽃이며 거룩하신 성모님의 상징이기 때문이지요. 고딕 교회의 장미 창은 밝고 크기도 하지만, 어느 한 군데 모난 곳 없이 둥근 모양입니다.  이 둥근 창의 내부에 바퀴살이 붙으면서 천상의 문 또는 태양의 문이라는 이름이 붙었지요. 태양이란 바로 그리스도를 의미하는데 장미창 속에는 반드시 별모양의 바퀴살이 들어 있는바 자세히 들여다 보면 크고 작은 바퀴들이 안팎을 서로 감싸고 있어요. 

노틀담의 서쪽 장미창의 한 복판, 즉 바퀴의 중심축에는 성모 마리아가 있으며, 그 주위로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하는 인물들이 있고, 두 번째 태두리 원에는 거의 모든 종류의 악 즉 우상 숭배, 분노, 실망, 망은, 불화, 폭동, 비열 등이 나타나 있지요. 이 장미창의 지름은 13.36M가 된다네요, 별로라고요? 막상 눈 앞에 닥친다면 아마도 엄청난 크기에 압도당할걸요. 노트르담에는 세개의 장미창이 있는데 이 서쪽 창이 제일 크지요. 바깥에서 성전을 정면으로 보면 보이는 것이 바로 이 서쪽 창인데 성전 내부의 제대에서 바로 올려보면 파이프 오르간 위에 있는 창이지요.

우리 본당에도 제대에서 올려 보면 둥근 창이 무미건조하게 뻥 뚤려 있지요. 물론 십자가형상으로 만들어지긴 했지만 노트르담 만은 못해도 스테인 글라스로 아기 예수님을 안고 계시는 성모님을 장식한 장미창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제대 좌우편으로 조금 작은 규모(지름 12.9M)의 장미창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지요. 북쪽 장미창은 13세기 이래 온존하게 보존되고 있으나 남쪽 장미는 새롭게 복원 되었는데 그 내용은 묵시록에 나오는 모든 상징 즉 일곱 개의 봉인된 책, 양, 일곱 개의 등잔과 함께 예수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수레바퀴가 으레 그런것 처럼 바퀴가 돌아가는 동안 바퀴축은 움직이지 않지요.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서 삼라만상을 굴리는 부동의 동인, 곧 제 1원인 셈이라 할까요. 장미창의 구성에서 중심과 주변의 위계적 질서는 이처럼 신과 세상, 창조와 피조, 하나와 여럿 사이의 일체화된 관계를 드러낸답니다. 이 관계는 바퀴와 바퀴축처럼 튼튼하고 조화롭다고 하는데 큰 의미가 있데요.

  제가 읽은 책 중에서 도움이 될까 하고 옮겨봅니다. 우주룰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um 우니베르숨)를 풀어서 읽으면 <하나를 향한다>가 된다네요. 쿠사의 추기경 니콜라우스 쿠나수스는 원의 중심점을 그리스도로 보고 그로부터 모든 지식이 비롯된다고 말합니다. 인간이 작은 우주라면 장미창은 큰 우주의 중심에 서 있는 하나의 진리로 이어지는 깨침의 문이라는 뜻입니다.

무한한 사랑의 궁극적 표상. 장미창의 열 두갈래 바퀴살은 원의 완전한 형태에 잘 어울립니다. 열 두겹 우주, 시간의 열 두구획,예수를 따랐던 열 두제자,밤하늘의 12궁도,이스라엘의 12지파,새 예루살램을 떠받치는 열 두주춧돌이 모두 장미창의 비밀스런 정체를 말해줍니다.

장미창이 등장하기 전에도 둥근 창이 있었데요. 모양새가 눈동자를 닮았다고 오쿨루스라고 불렀지요. 인간의 육신에서 눈동자는 영혼의 빛을 담는 밝은 창문이라고 해서 그랬겠지요. 눈동자는 또 사랑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눈빛은 사랑을 전달하고 나누는 정직한 수레이기 때문이지요.

  이탈리아 시인 단테는 천국의 마지막 하늘에서 사랑하는 연인 베아트리체가 펼쳐보인 장미꽃처럼 둥근 빛의 형태를 응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시인의 눈길은 <원의 면적을 구하려는 기하학자처럼 집요했으나 측정할 수 없었다고> 고 고백합니다(천국편 33장 133~135). 사랑의 크기와 무게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겠어요, 그 무망한 일을...

참, 우리 본당도 파이프오르간을 설치한다는 데 이곳 파이프오르간은 정말 기막힌 것이에요. 8,000개의 관과 112개의 건반을 가진 프랑스의 대표적 오르간이랍니다. 제 안목으로 바라본 노트르담의 오르간은 수직으로 늘어뜨린 파이프뿐만 아니라 앞으로 튀어나온 나팔 처럼 생긴 파이프는 정말 신기하더군요. 대개 우리나라에 설치되어 있는 파이프오르간은 밋밋하게 수직으로 세운 독일식인데 노트르담 것은 스페인식이랍니다. 그러니 신기할 수밖에...

주일 오후4시 반이면 정기적으로 파이프오르간을 연주한답니다만 아쉽게도 뒤로 하고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아마도 이 일은 오래오래 아쉬움으로 남을 거예요. 

    
  그리고 무엇보다 성전 벽을 따라 놓여 있는 구유를 볼 수 있어 행운이었습니다. 저희 순례일정이 성탄시기인 관계로 이태리와 프랑스의 구유를 살펴 보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어요.
바티칸의 구유는 큰 광장 중앙에 아주 집을 지었더군요, 오히려 실물 크기보다 더 커서 실감은 나지만 뭐랄까 구유에서 느끼는 감흥은 별로였습니다. 아씨시와 다른 이태리의 여러 성당의 구유는 대게 사실적인 분위기였다면 노트르담의 구유는 분명 다른 감흥으로 다가옵니다.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지극히 현대적이라고 할까요, 또 기하학적인 비 구상이라 해야 하나요, 하여간 프랑스의 미적 분위기를 흠씬 풍기고 있었습니다. 성모님과 요셉성인은 하얀색으로 처리하고 동방박사였나요, 파란색과 이국의 점성술사 분위기가 물씬 나는 브라운색 벨벳 옷감으로 그리고 또 한사람은 가물 가물한 데 아뭏든 길게 늘어뜨린 망토가 흡사 "2003년 파리 신춘 패션 쇼" 분위기가 날 정도로 감각적이며 신비한 인상을 주더군요, 목동들과 양들과 나귀까지...
참 구유 주위를 둘러싼 나무를 세로로 세운 물결 형태로 처리한 기하학적인 배치가 절로 감탄을 터트리게 했습니다.
정말이지 성탄시기때 잠시 설치했다가 치워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웠고  보관하여 계속 전시해야할 하나의 예술작품이었습니다.
예쁜 카드 몇점과 색갈별로 초도 사고, 우리아이들을 위해 봉헌초도 불 붙였지요.

  밖으로 나와서 다시 한번 성당 전면을 올려봅니다.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둥근 흐름이라고 해야겠지요. 직 사각형으로 좌 우 대칭하여 올라간 고딕 양식이 전면에 떡 버티고 선 사이에 뾰족한 첨탑이 중앙에서 하늘로 솟아 올랐습니다. 그리고 세 개의 문 위로 장미창의 바깥 모습이 크게 자리하여 안정감을 주고 있습니다.

성당을 끼고 후원으로 돌아갑니다. 어쨌거나 미색 대리석이 주는 부드러움과 따뜻함이 성당의 앞 모습을 지배하고 있다면 그 부드러운 성당을 받혀주는 기하학적인 선과 화려한 배열로 그 뒷편을 처리한 모습에 절로 감탄하고 맙니다.
프랑스 문학을 전공했던 아내는 연신 감탄하며 많은 관광객들로 훼손될법도한데 여전히 우아하고 정숙한 분위기에 젖어 있는 노트르담의 후원을 자꾸만 거닐고 있었습니다.
콰지모도는 어디 있을까요? 높다랗게 올라간 종탑을 가늠하며 에매랄드였나요? 그렇게 콰지모도의 가슴을 애태우던 사랑이 주는 갈등과 번민을 품에 안고서 어머니는 ...우리의 어머니는 신앙적인 모습만이 아닌 우리들의 범상한 일상의 고통도 " 다 안다, 알어!!!" 하며 따뜻한 손길로 우리를 보듬어 주십니다.
빅토르 위고 였지요, 안소니 퀸은 알겠는데 애메랄드인지 가슴을 아리게 했던 "노틀담의 곱추"에 나오는 여배우가, 아~지나 롤로브리지나? 제 기억이 엉키는군요...
이렇게 추억 속의 현장에 있어본다는 게 여행의 별미가 아니겠습니까!!!

  쾰른 성당 이야기하다가 잠시 빼먹은 노트르담으로 갔다가 오느라 혼란스러웠지요? 프랑스에서 둘러 본 모든 것이 너무 인상 깊은 탓으로 노트르담을 빼먹은 걸 이제야 알았다니까요.
아무튼 독일과 프랑스의 뚜렷한 문화적 차이를 기껏 쾰른 성당 둘러 보면서 이야기한다는 건 너무 지나친거지요. 가이드 탓도 크지요, 가이드가 프랑스 취향인 거같았어요. 뭐 둘러보는 관광객들의 표정도 기도를 하거나 묵상에 잠긴 모습은 없고 유명하다는 성당 하나 둘러 본다는 기록을 남기는 정도라면 제가 지나쳤을까요?

  성당앞 광장은 약 이,삼백 평 정도될까요,
이렇게 생각해봤습니다. 대형 성당을 제법 둘러본 경험이 있는데 바티칸, 베네찌아의 산 마르코성당, 피렌체의 두오모와 산타 크로체성당 모두가 웅장하고 규모가 쾰른성당에 비교해봐도 절대로 작지 않았지만 오늘처럼 아뜩하거나 감당할 수 없다는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큰 성당 건물에서 은근히 풍겨나오는 외경심과 더불어 크고도 높으신 "그분"의 권능에 깊이깊이 고개를 숙였는데 정말이지 쾰른은 아니었습니다.
주제넘게 참견해 본다면 광장이 훨씬 더 넓었더라면 어떠했을까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바티칸, 산 마르코처럼 그 넓고도 넓은 "그분"의 품에 안기고 싶다는 제 어리광을 그대는 예쁘게 봐주실테죠....

  건강해 보이는 독일 청년과 처녀들이 일과를 끝내고 데이트를 즐기려 약속장소로 정한 광장을 가득 메우기 시작 했습니다. 한눈에 봐도 뼈대가 크고 선이 굵은 게르만의 후예들의 모습이 이태껏 보아온 라틴계의 이태리와 프랑스 사람들과는 무언가 달라보였답니다. 그렇지요 덩치가 비교가 안될 정도로 크지요, 이런 이야기 들어 보셨나요? 로마 군인들의 투구와 투구위의 붉은 술(?)이 엄청 멋있고 위엄이 넘쳐 흐른다고 생각 했는데 그게 이런 이유 때문이랍니다.

  그당시 미개인이 사는 지금의 독일 땅에 로마군인들이 전쟁을 하러 왔는데 엄청나게 덩치가 크고 억세게 생긴 게르만 사람들에게 겁을 먹고 전쟁을 피하려 할뿐 역전의 용사인 로마 군인들의 사기가 말이 아니었답니다. 그래서 덩치가 작은 핸디캡을 만회하기 위하여 투구위로 닭벼슬처럼 높게 뽑아올려 붉은 또는 푸른색의 술을 달아서 위엄을 보이게 하자 로마군인들이 신체적 핸디캡에서 벗어나 용감하게 싸웠답니다. 글래디에이터가 아마 가장 비슷한 배경이 되겠지요.
무심코 보아넘긴 군인들의 복장 하나 하나에도 이렇게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답니다.

  겨울, 쾰른의 저녁은 젊은 연인들로 달아오르기 시작하는 광장에 길게 드리운 성당 그림자를 밟으며 이제 짧은 만남을 아쉬워 하며 버스에 다시 오릅니다.

이젠 프랑크푸르트입니다. 아우토반에 올라 속력을 낼 때면 어느새 황혼도 사위어가며 어둠이 스물 스물 밀려오는 쾰른도 지나고 낮은 구릉이 연이어 지나가는 전형적인 독일의 시골 풍경이 언듯 언듯 스쳐 지나고 있습니다.
글쎄요, 아무리 대서양 기후라 해서 우리나라보다 한참 북쪽에 있어도 춥지 않은 겨울이지만 겨울은 역시 다르군요. 밝은 한 낮임에도 둘러보면 주위는 왠지 어두운 톤, 착 가라앉은 브라운 톤이 감싸고 있네요, 여름이었다면 화사하달까 톡톡 튀어오를 것같은 녹색과 셀루리안 블루( 이태리 축구팀 유니폼 색갈)처럼 가볍고도 화려한 빛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봤어요.

  몇 시간이나 걸렸을까, 모두들 지친 순례길의 피곤을 잠으로 달래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난 듯 번쩍이는 도시의 불빛에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창 밖으로 다가오는 도시를 신기하게 내다봅니다.
아마 독일의 제 2의 도시라지요, 상업도시로서 언제나 이 도시에는 각종 무역관련 전람회가 열리고 있답니다.
그래선지 전통있어 뵈는 건물은 별로 눈에 띄지 않고 현대식 고층건물이 즐비해서 어쩌면 고향에 돌아온 듯 마음이 편해옵니다. 서울과 비슷해서 겠지요.

  프랑크푸르트 역전의 커다란 주차장에 버스를 내리고 두어 블럭, 약간 외진 도로변에 있는 한국식당으로 들어 갑니다. 부채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인형이 소품으로 장식된 아담한 식당에서 김치찌게를 듭니다. 우리를 종일 태우고 다닌 벨지움 운전기사 아저씨가 베리~굿하며 포크로 둘둘 말아서 잡채를 맛나게 먹고 있네요.

한 편에는 우리 모습의 교포들 열 두어 분이 소주잔을 겻들인 식사를 하고 있구요. 뜨끈한 국물을 넘기며 마음은 한없이 가라앉습니다, 긴장이 풀어져서일까요. 가이드가 이르기를 유럽 전체에서 이곳 프랑크푸르트에 한국 교포가 제일 많다지요, 맨 처음 독일로 파견 나온 광부들이 발을 디딘 곳이 이곳이랍니다. 그래서인가 건너자리의 이곳 교민회 간부들의 모습이 태산처럼 우람해 보였지만 퍼그나 지쳐보이고 외로워보여서 쉽사리 말을 건내지 못하겠습니다.

  늦은 저녁을 먹고 나선 거리는 어느새 안개같은 가랑비에 도시는 젖어가고 있고 외로운 순례자의 마음도 알 수 없는 고독으로 젖어갑니다.
오늘 밤은 깊이 잠들 수 있을까? 숱한 이야기와 감동으로 돌아가는 순례의 마지막 밤은 안타까운 우리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깊어가고 있습니다.
어둡고 쓸쓸한 골목길 모퉁이 구멍가게에서 담배 하나를 사서 돌아나오는데, 가만 걸음을 멈추고 귀 기울여 봅니다. 어디선가 낮으막한 노래가 조심스레 들리는 게 아니겠어요. 왠지 익숙하다 했는데...

  "....오늘 밤도 지났네 그 보리수 곁으로 / 깜깜한 어둠 속에 눈 감아 보았네/ 가지는 산들 흔들려 내게 말해주는 것 같네/ '이리 내 곁으로 오라. 여기서 안식을 찾으라'고/...그곳을 떠나 오랫동안 이곳 저곳 헤매도/ 아직도 속삭이는 소리는/ 여기 와서 안식을 찾으라../ 여기 와서 안식을 찾으라..."

어쩌면 길옆 가게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거 같았어요. 

제라르 수제이, 그래요, 독일 리드 중에 특히 겨울나그네처럼 낮고 우울한 방랑자의 실연을 노래하는데 디트리히 디스카우는 너무 지나치다고 꼭 수제이 노래를 고집하던 게 문득 생각났습니다. 아무리 그랬다 해도 이렇게 프랑크푸르트의 가랑비 내리는 밤 길에서 보리수를 듣다니...

 

 그리운 이여!!
 날이 지날수록 쌓여가는 피곤함과는 달리 더욱 또렷해오는 "그분"을 향한 내 그리움, 목마름은 어찌 해얄까요....

   굿텐 나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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