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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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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대축일 2008년 5월 11일
요한 20,19-23. 사도 2,1-11.
성령강림 대축일은 예수님이 떠나가시고 당신의 영을 우리에게 남기신 사실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남은 사람들의 임의에 맡겨집니다. 세상을 떠난 사람은 말이 없습니다. 그가 살아 있을 때 사람들 안에 남겨 놓은 것이 말을 발생시키고, 그것이 역사에 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 삶에 대한 기억과 더불어 당신 안에 일하시던 성령을 사람들에게 남기셨습니다. 제자들은 그 사실을 이야기로 만들어 역사에 남겼습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복음과 제1독서에서 들은 이야기들입니다.
오늘 복음은 제자들이 모여 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발현하셨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는 말씀과 더불어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셨습니다.’ 손과 옆구리는 십자가에서 종말을 고한 당신의 삶을 요약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숨을 내쉬시며,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초기 교회는 예수님이 잉태되신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마태 1,20)이었다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가르치신 것도 세례를 받고 성령이 당신 위에 내려오시면서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견하면서 그들에게 같은 성령을 불어넣으셨다고 말합니다. 제자들의 복음 선포도 성령을 받아 시작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성령은 예수님이 사신 숨결이었습니다. 창세기(2,7)는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진흙으로 된 인간 모상에다 당신의 숨결을 불어넣으시자 살아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숨결로 살아 있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그들 안에 당신의 숨결을 불어넣으셨다고 말합니다. 성령은 죄를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숨결입니다. 그래서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주면 용서 받을 것’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죄를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는 말은 유대인들의 화법입니다. 성령은 용서하신다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말하고 부정적으로 한 번 더 말하여 강조하는 화법입니다. 유대교는 이 세상의 모든 불행은 인간 죄에 대한 벌이라고 가르쳤습니다. 하느님은 벌하신다는 믿음입니다. 우리의 악한 마음이 상상하는 하느님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하느님을 거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셨습니다. 아버지는 자녀에게 선한 일을 합니다. 악한 인간이라도 “생선을 달라는 아들에게 뱀을 대신”(루가 11,11) 주지는 않는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선하고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믿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사람은 하느님이 “자비로우신 것 같이”(루가 6,36) 스스로도 자비를 실천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살리고 고치며 인간이 당신의 자비를 배워서 자유롭게 실천하며 살 것을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그 하느님의 자비를 실천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두루 다니며 좋은 일을 행하셨다.”(사도 10,38)는 기억을 제자들에게 남기셨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들이 하느님의 것이었다는 믿음이 그분을 하느님의 아들이라 부르게 하였습니다. 어느 안식일에 베싸다 못가에서 중풍병자를 고치신 다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도 아버지께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고 있습니다.”(요한 5,17).
우리는 오늘 제1독서에서 사도행전이 전하는 성령강림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도행전은 제자들의 선교활동을 소개하기 전에 두 폭의 그림을 그 서론으로 보여줍니다. 하나는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예수님의 그림이고 또 하나는 오늘 우리가 들은 성령강림의 그림입니다. 사도들이 복음 선포를 시작하기 전에 예수님은 이미 그들을 떠나가셨고 성령이 그들에게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 그림에 성령이 강림하신 장소는 예수님이 돌아가셔서 부활하고 승천하신 예루살렘입니다. 때는 해방절 후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많이 모여드는 오순절을 택하였습니다. 오순절은 유대인들이 소중히 기념하는 해방절 다음 50일째의 날입니다. 보리와 밀의 햇곡식을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제인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13세 이상의 이스라엘 남자는 모두 이 날 의무적으로 예루살렘 성전에 순례해야 합니다.
성령강림 장면에 나타나는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와 ‘불’은 구약성서의 탈출기(20,18)가 하느님이 발현하셨다고 말하기 위해 사용한 표상들입니다. ‘불꽃 모양의 혀들,’이란 말은 교회의 복음 선포가 사람들의 임의에 맡겨진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에 기원을 둔 일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하느님의 말씀이 불길 같이 전파되어 나간다는 뜻입니다. 성령이 내려오시자 사도들은 다른 언어로 말하고 군중은 사도들이 자기네 지방말로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복음은 모든 민족을 위해 선포된다는 뜻입니다. 인류는 언어가 서로 다른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인간 예수 한 분 안에 발생한 복음이지만, 이제부터는 민족들의 언어 차이를 넘어서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해진다는 뜻입니다.
성령강림은 예수님 안에 살아 계셨던 하느님의 숨결이 우리에게도 주어졌다는 사실을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성령은 민족과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 복음이 전해지게 하십니다. 인간은 구실만 있으면 서로 간에 장벽을 만듭니다. 민족과 문화의 차이가 있고, 출신지역과 직업의 다양함이 있습니다. 이런 차이와 다양함은 인류의 풍요로움을 말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차별을 위한 장벽으로 만듭니다. 하느님의 숨결이신 성령도 우리는 그것을 상호간의 장벽과 차별의 구실로 삼습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는 다양한 봉사가 있어서 풍요로운 것이지만, 우리의 좁은 마음은 그 다양함을 성령과 결부시켜 하느님이 만드신 차별이라 믿어버립니다. 성령을 받은 자와 받지 못한 자를 구별하여 성령을 인간 차별의 주범으로 삼는 신심 운동도 있습니다. 인간은 이렇게 장벽과 차별 만들기를 좋아합니다.
성령은 하느님의 숨결이십니다. 하느님 아버지 안에서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시는 숨결이십니다. 그분은 예수님 안에 살아계셨고 또한 예수님을 배우는 우리 안에도 살아 계십니다.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 되어 살게 하시는 성령이십니다. 오늘 복음은 그 자녀 됨이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 보여주신 용서를 하느님의 일로 받아들이며,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는 데에서 시작한다고 말합니다. 욕심, 허영, 질투, 미움, 이런 것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발생하는 죄를 하느님의 용서로 극복하면서 하느님 자비의 숨결이 우리 안에 살아 계시게 하는 데에 예수님과 하나 되어 하느님을 아버지로 한 자녀의 삶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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