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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9차) 천호동성당 건축에 대한 소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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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열 [kangsyl] 쪽지 캡슐

2008-05-09 ㅣ No.120205

** (제9차) 천호동성당 건축에 대한 소견 **

오늘은 지난 5월 4일자 가톨릭신문을 보게 되었는데, 그 제목이 한국교회 가난한가? 로 시작하여 교회가 증산층화 되고 있다 등, 4가지 제목의 기사가 실려 있는 것을 보면서, 어쩌면 천호동성당을 표본으로 삼아 기사를 쓰셨나 하는 착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 천호동성당을 보면서 이 성찰의 기사에 감동하게 된다. 특히 자원낭비에 대한 의구심은 떨쳐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공동체의 발전을 위한 직언의 충정은 하나의 주장일 뿐, 앞장서 직언하는 자들은 먼저 의심부터 받는 것은 기본이고, 몹쓸 짓하는 자로 취급당해야 하는 현실에, 이는 한국교회가 앞으로 고민해야할 숙제라고 본다.

오늘은 길거리에서 할머니 자매가 하소연 하신다. 형제님, 내가 생활보호대상자임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신립금으로 수백만 원을 내라고 하니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시며 호소하시는 말씀에 그 순간을 피하기 위한 졸렬한 행동을 했던 시간이 있었다. 사정이야 딱하지만 어떻게 표현해서 위로의 말씀과 꼭 건축을 해야 된다고 하는 당위성을 표현하기란 여간 힘이 든 것이 아니었다.

유독,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으신 천호동성당의 현실에 대한 눈높이의 잣대에 대한 분별력에 한계가 온다. 그래도 신부님의 높으신 지혜가 있으시기에 벌여 논 건축공사인데 하면서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겠지 하는 스스로의 위로에 위안을 하고 있다.

처음에 추진위 봉사를 맡으셨던 분들의 말씀이 이렇게 추진하는 것은 처음 본다는 것이다. 서증들도 없는 기본이 안 되어 있다는 한결같은 말씀들이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공사가 공사인 만큼 책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스스로가 자문자답을 해야 할 처지 인 것이다. 업자들이 공사하기 제일 쉬운 환경이라는 것이다.

누구에게 대접하는지는 몰라도 동해안으로 술대접을 못하면 추진위 봉사 직은 아예 꿈도 꾸지 말라는 말들이 뒤숭숭하게 들리니, 듣지 말아야 하는데, 그 사건을 알리는 교우들은 높으신 봉사 직을 하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망각하고 스스럼없이 하고 다니는 데 놀랍다는 것이다. 술은 필요한 것이지만, 그 술이 먼지? 좀 자제들 하면 탈라나? 슬프다.

무조건 따라와라? 함께 가자? 함께 하자? 누가 누가 잘하나? 모두모두 잘한다? 중에, 현명한 행동과 지혜는 무엇일까? 나름대로 깊게 묵상하고 있는 중이다.

모시러 다니는 복음화보다 스스로 오시는 복음화의 지혜가 담긴 하느님백성의 성당으로 정착되는 건축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희망의 열정이 과연 잘못된 사고인지 묻고 싶은 것이다.

평신도로서 전 신자들과 함께 방문선교, 가두선교, 등 미력한 열정 이였지만 복음화의 역동성에 불을 붙이고자 앞장서 혼신의 노력을 해본 경험이 있다. 지역마다 복음화의 열정은 실정에 맞는 개발을 해야 된다는 결론 이었기에, 아파트로 재건축되는 주의환경을 예측해 볼 때, 가족중심의 개인주의 성향(?)으로 환경변화가 도래됨이 예측되므로, 기왕 건축할거면 이 실정에 맞는 건축을 하자는 것이다.

천호동성당은 이런 지역에서 미래의 열정과 지혜가 담긴 복음화의 희망이 보이는 위치로서 나무랄 때가 없는 위치이며, 또한 심사분석을 한다면 충분한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지는 확신이 서는 성당이다. 그래서 먼저 소프트웨어부터 완성하고 차근차근 건축을 해도 늦지 않다는 주장인 것이다.

선조신앙인들께서 그 당시 열악한 공소였던 터를, 50여년 훌륭한 하느님백성인 성당을 예측하여 건축하였겠는가 하는 물음을 해보면 간단히 답이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흠잡을 때 없는 터로서, 선조신앙인들께서 그 당시 3천 평의 터를 구입해 피와 땀이 서린 건축한 지혜를 가미하여 추진하는 것인지 하는 물음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많은 분들이 찾기도 하시고, 연락도 주시고, 힘내라고 용기도 주시고, 기도들도 해주시니 감사드린다. 그러나 소인께 진정한 조언을 주시려거든 성령께서 함께 해주시는 조언을 부탁드리며, 사정없는 비판과 대안과 채찍의 조언이 필요하니 이점 헤아려 주셨으면 한다.

건축하려면 별의 별 소문과 유언비어와 시끄러움과 희생과 피와 땀이 서려져야 건축이 완성된다는 말씀들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건축이 완성되면 경과보고를 통해 그간의 어려움을 체험으로 발표도 하시는 모습들을 보게 됨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분별할 것은, 무조건 불평불만자로 취급할 것인가? 대안을 제시하기 위한 토론회개최를 요구한 자로서 직언을 했던 자로 취급할 것인가? 감투에 혈안이 되어 비판을 가장하는 것인가? 사심에 눈이 어두워 비판을 가장해 하는 것인가? 색깔을 분별해야 될 것이다.

공동체 교우께서 이런 표현을 하신다. 부정이 문제가 아니라 무능이 문제라고 말이다.

아무리 좋은 떡이 있어도 보기도 좋고, 맛이 있다면, 그 이상 좋은 떡이 어디에 있겠는가? 아무리 좋은 떡이라도 보기도 그렇고, 맛이 없다면 가치가 퇴색되지 않을까하는 묵상을 해본다.

복음화에 좋은 떡으로, 보기도 좋고, 맛이 있고, 살아나는, 그런 건축 추진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2008, 05,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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