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2일 (수)
(녹)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나는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인물 현대사 - 꺾일지언정 굽히지 않는다 - 동아투위 안종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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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길 [u90120] 쪽지 캡슐

2005-03-26 ㅣ No.53

한국언론사에서 1960년대와 70년대.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은 한마디로 암울한 시기였다.

언론은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이러한 상황에 저항하는
기자들에게는 공공연한 탄압과 테러가 자행됐다.

특히 유신정권 출범후 그러한 탄압은 극에 달했다.

이러한 시기에 언론자유를 위해 온몸을 던져 저항했던 기자들의
몸부림이 있었다.

사실을 사실대로 보도할 수 없었던 기자들은 1974년 10월 24일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한다.

그러나 광고탄압에 봉착한 동아일보사는 130여명의 기자들을 모두
해직한다.

130여명의 기자들은 해직과 동시에 한꺼번에 거리로 내몰렸다.

당시 안종필은 편집국 차장신분으로 해직기자들 중 몇 안되는
간부사원이었고, 마흔을 바라보는 어린 남매의 아버지였다.

그런 입장에서 그가 〔자유언론실천운동〕에 함께 한다는 것은 쉽지않은
선택이었다.

이들은 〔동아투위〕를 중심으로 길거리 유인물을 통해 자신들의
투쟁상황을 국민들에게 직접 알렸다.

그러나 이들은 줄줄이 당국에 연행됐고,투위의 핵심멤버 50여명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 조사를 받았으며,

일부는 구속조처되었다.〔동아투위〕는 6개월만에 침몰 위기를
맞았다.

바로 그러한 시기에 안종필은 〔동아투위위원장〕을 맡았다.

안종필을 중심으로한 기자들은 거리에서 신문 밖의 신문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른바 보도되지 않은 진실을 기록한〔민권일지]가 그것이다.

78년부터 약 1년간 제작한 〔민권일지〕를 통해 〔동아투위〕의
안종필은 유신철폐를 본격적으로 주장했다.

체제에 순응하기를 거부한 대가로 거리의 낭인이 됐던 안종필을 비롯한
수많은 기자들은,

진정한 언론의 자유란 체제도, 권력도, 언론사나 언론인도 아닌,
[민중]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런 깨달음으로 긴급조치 9호라는 법을 어기면서까지 보도되지 않은
진실을 민중에게 전달했다.

30년전 〔동아투위〕 기자들은, 온 몸을 던져 참된 기자정신과 언론의
자유를 실천한 것이다.

꺾일지언정 굽힐 수는 없었던 그들,지금 그들이 찾고자 했던 언론의
자유는 과연 살아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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