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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道) 닦고 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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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성경을 쓰고 있으면 A여인이 이렇게 말을 한다.
"또 도 닦고 있어?"
물론 악의로 하는 말은 아니다.
B여인은 지난 번 말씀드린 바와 같이 <남쪽나라>에 빠져 살고 있고,
C여인은 새 남편 얻어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얼굴에 기름이 번지르르 흐르고 행복이 줄줄 흘러내리는 것 같다.
내 곁에 가장 가까이 있는 세 여인의 모습들이다.
세속적인 눈으로 본다면, 아무런 종교도 갖고 있지 않은 C여인이 가장 행복한 것 처럼 보인다.
가장 불행해 보이는 여인은 내 가장 가까이 있는 A여인이다.
성경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나가서 돈이나 좀 벌어오던지.... 지금 성경이나 쓰고 있을 때인가?
이런 생각을 하면 앙앙불락 가슴이 터질 지경일 것이다.
먹고 살기 어려운 이 세속에서 우리는 신앙의 가장 내밀한 부분을 가지고 서로 갑론을박이다. 내가 보기에는 어떤 특정한 성인을 인용하는 분들의 가장 큰 문제는 성인전에 빠진 것이 아니라, 성인전을 <더 많이> 보지 않은 것이다. 더 많이 읽고 더 넓게 읽어서 편식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교황 요한 23세의 경우도 그렇다. 그분의 저작 중 한 두권이라도 읽고나서 그분의 말씀 중 한 두 구절을 인용해야 할 것이다. 공의회문서도 마찬가지다. 이 방대한 저작을 우리가 다 읽을 수는 없지만, 그렇더라도 공의회의 정신은 빼놓고 한두 구절만 인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시키려니까 문제가 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어떤 성인에 감동을 받아서 그분의 말씀을 따르고자 한다면 그것은 그 자신의 문제이다. 자신의 개인적인 신앙은 자신의 내면에 간직하면 되는 것이다. 기도할 때 골방에서 아무도 모르게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이다.
우리는 내남적없이 너무도 공부를 안하고 자꾸 말을한다."말이 많다."(이것이 개신교를 포함한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믿지않는 사람들로 부터 항상 조롱당하는 문제인것 같다.)
도서관에 한 번 가보면 알겠지만, 개신교 책들이<기독교> 서가의 80%이상을 채우고 있다. 가톨릭의 책들은 10% 될까 말까이다. 도선관 사서들의 책임이 아니다. 실제로 가톨릭의 책들은 구하기도 어렵고 쉽게 접할 수도 없다. 그러니 어떤 사서가 그런 책들을 구매할 것인가?
이런 실정에서 교우들이 이상한 곳으로 자꾸 빠지는 것은 슬픈일이다. 성당이라는 곳을 하나의 학교라고 생각해 보자, (물론 성당은 학교가 아니다. 신자들의 공동체이다.) 이 학교 안에서 학생들이 공부하지 않는다고 한탄하기 이전에 교장이나 선생들이 먼저 공부하지 않는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담배 피지 마라고 야단치기 이전에 교장, 선생님들이 먼저 담배를 피지 않는게 중요하지 않을까?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고 성당은 기도하는 곳이다. 교회는 지난 2000년간 사실상 공부하는 곳이었다. 모든 문화의 중심지였고, 수도원과 성당은 당대의 모든 학문의 보존과 출판을 담당하던 곳이었다. 이런 전통이 근대의 세속화와 함께 사라진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어떻든 우리는 이 게시판에서 어떤 문제에 대해서 끊임없는 동어반복을 되풀이하기 이전에 먼저 공부하고 그 다음에 자신의 말을 주장해도 늦지않을 것이다.
성경을 끊임없이 공부하고
성인전을 편협되지 않게 널리 섭렵하고
교리공부를 깊히 한 사람은 결코 자신만이 옳다고 고집을 피우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신약성경의 어떤 한 구절을 무작위로 펼쳐놓고 읽는다 해도
아마도 이 한 구절이 얼마나 무서운 말씀인가?
그냥 읽고 지나칠 수 있는 말씀인가?
나는 성경을 읽으면 읽을 수록, 참으로 평이하게 쓰여진 신약의 경우에 특히, 우리가 그렇게 쉽게 소설 읽듯이 읽고 다 알았다는 듯이 읽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더 하게 된다. 우리의 존재 전체에 대해서 요구하시는 그분의 말씀은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 내가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왔다. 하신 말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