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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정열적인 집시여인 카르멘의 도시 세비야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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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호 [park05] 쪽지 캡슐

2008-07-19 ㅣ No.122222

 

세비야(SEVILLA) 성지순례기


  안달루시아(`태양이 빛나는 땅`이란 뜻) 지방 세비야 주(州)의 주도(州都)로, 스페인에서 4번째 큰 도시이다. 시내로 진입할 때 강을 건너면서 보니 고층건물이 없고 옛 모습을 간직한 그대로 보였다. 세비야의 옛 이름은 히스팔리스(Hispalis)로, 처음 이곳에 정착한 것은 타르테시안인 들이었다고 한다. BC 2세기경 카르타고를 점령한 로마인들이 세비야에 들어오면서 이곳은 이후 7세기까지 로마제국의 서부 지중해 거점도시로 활약하였다.


  711년부터 1248년까지 계속된 이슬람 무어(Moor)족의 지배는 세비야를 비롯한 전 안달루시아 지방에 크나큰 흔적을 남겼다.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와 비제의 `카르멘`의 무대이기도한 세비야! 정열적인 집시 여인 카르멘이 일했다던 담배공장, 세비야의 모든 것과 서울(1989)에 이어 1993년에 세계성체대회가 열렸던 세계최대 고딕양식인 세비야 대성당을 돌아본다.  


   17세기는 세비야 예술에 있어 전성기였다고 한다. Velazquez, Murillo, Valdes Leal,등의 화가를 비롯해 조각가인 Martinez Montanes가 이 시기 세비야에서 태어났고 훌륭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으며 또한 돈 후앙의 출생지로도 유명한 이곳은 스페인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투우와 플라멩고의 본고장이기도하다. 도시를 북에서 남으로 가로지르는 과달키비르 강의 상류연안에 자리 잡은 이 도시는 70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고 세비야 항은 과거에 스페인과 아메리카대륙 간 무역거래에 있어 매우 중요한 기지역할을 하였다.


  과달키비르 강의 산텔모 다리를 건너 우측으로 돌아가니 12각형으로 된 외벽이 금색으로 도장되어진 황금의 탑이 나온다. 1221~1222년 사이에 지어진 이 탑은 세비야에 있는 Almohade시대의 회교도 지배시절 마지막 작품 중 하나이다. 알카자 요새에서 강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방어벽의 일부분으로 만들어졌으며 이 탑의 이름은 한때 돔을 덮었던 황금타일로 햇빛이 반사된대서 연유되었다한다. 지금은 유명한 스페인 항해자와 선박의 모형과 그림 등이 전시되어 있는 해군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강 건너 은색 탑과 함께 항구를 방위하고 지나가는 배를 검문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탑이다. 황금의 탑에서 좌측으로 꺾어 돌아 조금 가다 우측에 차를 세우고 공원에 들어섰다. 공원이름은 “Maria Luisa Park" 19세기 때 만들어진 공원이다. 아름답게 꾸며진 숲의 공원에 비둘기가 많다. 모이를 사서 앞에 뿌려 줘보니 단체로 막 날아와 눈치코치도 안보고 쪼아 먹기 시작한다. 우리 비둘기하고는 판이하게 다르다.


  우리 토종은 체면을 차리는 것인지? 겁을 먹는 것인지? 누가 잡아먹기나 하나 의심은 되게 많아서 곁눈질 치며 1.5m 거리를 유지한 채 모이를 먹다가 모이를 준 사람이 한 발짝만 떼도 훌쩍 날개 짓 치며 정확하게 다시 1.5m 거리를 유지하는 비겁한(?) 의심 많은(?) 비둘기인데 반해 이놈들은 땅위의 모이를 먹다가 아예 모이를 뿌려주는 나의 손으로 날아와 앉아서 쪼아 먹는다. 나는 이 녀석들의 경계심이 없는 그 솔직함에 기분이 좋았다.  


  우리 부부와 같이 사진촬영에 협조해준 내 어깨에 앉은 녀석 2마리와 양손에 앉은 2마리, 루시아처럼 얌전한 한 녀석이 루시아의 손에 앉아 모이를 먹고 있고 또 한 녀석이 멋지게 비행하여 나에게 날아오는 예쁜 모습에 반하여 사랑의 표시를 한다. 양손바닥에 앉은, 내 손안의 모이를 쪼아 먹는 비둘기의 머리를 손으로 가볍게 쓰다듬어주니 기분 좋아하며 제 할 짓만 하고 있다. 경계심을 품지 않은 동물로부터 사랑을 느꼈다.


  이슬람문화와 그리스도문화가 어우러져 예술을 빚어낸 세비야 대성당으로 향하였다. 마침 대성당에 미사가 있다고 했다. 주일미사참례를 못할 것에 대비하여 포르투갈 리스본의 주교좌 성 안토니오 대성당에서 토요특전미사를 봉헌했지만 세비야 대성당에서 주일미사참례를 봉헌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세비야 성당의 내부에는 여러 곳에 소 성당이 있으며 콜럼버스의 무덤이 있는 대성당이 있고, 또한 보물을 많이 소장한 성당이기도 하다.


  `Magna Hispalensis` 라고도 하는 세비야 대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큰 고딕양식의 건축물로, 로마의 성 베드로성당, 런던의 성 바오로성당에 이어 규모 면에서 유럽에서 3번째로 큰 교회이다. 이슬람교도를 물리친 기념으로 이슬람 사원 그 자리에 1401년부터 건축을 시작하여 1511년에 완성된 폭116m, 내부길이 76m의 대성당이다. 대성당은 고대 모스크(이슬람사원)의 잘 보존된 유적지 위에 5개의 큰 제대와 25개의 소 제대를 갖춘 웅장한 대성당으로 이루어졌으며 이슬람교 위에 그리스도교가 존재한다는 우월성과 권위의 상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대성당 내부에는 천사들의 모습과 사도와 성인들의 모습을 모자이크 한 15세기의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가 눈을 어지럽힌다. 대성당 중앙의 가장 큰 제대 앞으로 가보았다. 세계최대의 목제 제대라고 하는 중앙제대는 금빛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있었고 예수님과 성모님의 생애가 36개 장면으로 연출되어졌는데 1000 년을 두어도 썩지 않는다는 마호가니 나무로 멋있게 조각한 그 자체가 예술이었다. 제대 앞에는 나무의자가 놓였고 사람들이 이곳에 앉아 기도와 묵상 그리고 사진을 찍는다. 제대 옆으로 성가대석이 있는데 이 성가대 석은 천사들(아기 천사도 많음)이 나팔을 부는 모습이 천상음악을 노래하는 천사성가대인 것 같아 잠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성가대석 위로 웅장한 파이프오르간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여러 가지 형태의 크고 작은, 굵고 가느다란 파이프들! 성가대석 중앙위에 제일 큰 파이프가 여러 단 높이로 배열되었고 중앙에서 양옆으로 점차 굵기가 가늘어진 파이프들이 질서정연하다. 이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성가대가 15세기에 만들어 졌다니 그 웅장한 위엄과 위대한 예술에 절로 고개 숙여진다. 제대 위쪽에는 고딕양식의 장식 벽(어느 조각가가 일생을 바쳐 이 한 작품만 남겼다는데 그 조각가가 기억이 나지 않음. 혹시 세비야 출신의Martinez조각가인지도 모르겠음)과 같은 예술적인 건축물들로 가득 찼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는 오른쪽으로 산크리스토발 문을 들어서니 아라곤의 4명의 스페인 국왕이 받들고 있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묘가 보인다.  소성당과 분리되어있는 왕실성당으로 갔다. 세비야의 수호성인인 성모상이 안치된 왕실성당의 성모님(Ntra. Sra. de la Esperanza Macarena)은 피부색갈이 스페인 사람 색깔이었고 머리에서 몸으로 이어지는 수를 놓은 하얀 드레스의 머리 위에 황금으로 장식된 화려한 왕관과 그 왕관위로 적당히 조그만 십자가가 우뚝 솟아있다. 화려한 황금빛 광채를 뿜어내는 찬란한 왕관 밑으로 성모님 어깨를 폭 감싸주는 황금 망토가 붙어서 이어져 내려온 성모님 전신의 모습을 보고 나서 얼굴을 보니 성모님께서 눈물을 흘리고 계시지 아니한가? 화려한 모습 뒤에 숨어있는 그늘진 얼굴에 눈물을 흘리시는 성모님의 모습을 보며 뭔지 모를 알쏭달쏭한 기분을 느꼈다.


  왕실성당에 배치돼 있는 Murillo, Zurbaran, Valdes Leal, Goya 등의 그림을 감상한 후 대성당 내부의 25개 소 성당을 차례로 기웃거려 보았다. 이름 모를 여러 형상의 성인 상이 많았고 특히 Murillo의 대표작인 `산 안토니오의 환상`이 있는 산 안토니오 소성당과 기억을 할 수 조차도 없는 예술작품들! 그리고 Goya, Zurbaran의 그림이 있는 성배실과  Murillo의 성모무염시태가 있는 주교회의실 등 대성당 안은 마치 미술품의 보고라고 할 만큼 유명작품들이 많았다. `성모무염시태`그림이 있는 회의실에는 역대 교구장(성인 및 대주교)들의 초상화가 연대별로 걸려있었고 교회의 중요한 회의는 주로 이곳에서 열렸다고 한다. 


  이제 종탑으로 올라갈 차례다. 4각형으로 축조된 탑 내부를 빙글빙글 돌면서 걸어 올라간다. 올라가는 층마다 구석진 공간에 전례 미사 때 사용했음직한 성광 이며 성합 등 미사성구들을 진열해 놓았다. 꼭대기 층으로 다 올라가니 크고 작은 종이 많이도 매달려있다. 동서남북으로 탁 트인 시야에 세비야 시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매달려있는 모든 종이 한꺼번에 울린다면 세비야 전체가 시끄럽겠다. 영화 안소니퀸이 주연한 노틀담의 곱추가 갑자기 생각난다.


  Giralda(히랄다)! 대성당의 종탑인 히랄다는 12세기 모로코의 모하드 왕조가 성인(聖人) 모하메드를 추모하기 위해 로마신전 터에 대리석과 벽돌을 사용해 사방 14m, 높이 98m 의 히랄다를 축조했다. 그러나 1234년 그리스도교가 세비야를 함락한 뒤 그 탑 위에 예배시간을 알리는 28개의 종을 달았으며 그 위에 신앙을 상징하는 여성상을 세워 풍향계 역할을 하도록 했고 하늘의 영광을 나타내는 고딕식의 지붕을 만들었다. 이 탑은 1565년에서 1568년에 완성하였다. 그래서 히랄다 탑의 이름도 풍향계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대성당을 나와 알카사르로 갔다. 알카사르는 8세기경에 만들어졌으며 몇 번의 개축 끝에 현재의 모습은 14세기에 페드로 1세가 완성했다. 가장 화려한 곳은 대사의 방으로 아라베스크 모양의 장식을 한 벽이 특히 아름답다. 조각을 새긴 여러 가지 모양의 무늬와 아랍어가 새겨진 문장, 전문지식이 없는 우리 눈에 비치는 것은 아무리 충실한 설명을 곁들여도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그 옛날 대사들이 외교 교섭을 위하여 이곳을 방문했다는 것인데!......   


  알카사르에서 유대인거리까지 가는 동안 숲이 우거진 공원 같은 곳에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퍽 이나 인상적이다. 유대인 거리를 산타크루스 거리라고도 하는데 좁은 골목길마다 하얀 색의 벽 창가에 아주 예쁘고도 활짝 핀 빨간, 하얀 꽃들이 집집마다 서로 교태를 부리며 여유 있게 아름다운 자태로 앉아있는 모습이 사람들을 유혹한다. (좁은 골목길의 아름다운 여자가 남자를 유혹하는 홍등가처럼!) 아닌 게 아니라 이곳이 돈 후앙이 태어나 살았던 생가가 있는 곳이라고 한다.


  세비야의 방탕아! 돈 후앙, 돈 주앙, 돈 조반니, 돈 지오반니, 모두 같은 이름이요 한사람이며 14세기의 인물이다. 호색한 돈 후앙의 이름을 소재로 <돈 조반니>오페라를 작곡한 모차르트, 바이런이 <돈 주앙> 이라는 미완성 작 장편서사시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돈 후앙>이라는 교향시를, 여러 극작가들의 작품의 대상이 된 인물 돈 후앙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애인을 거느렸을까?


  안달루시아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이곳에서 기념품을 쇼핑한 후 골목을 빠져 나오니 다시 대성당이 나온다. 말똥 냄새가 심하게 나는 대성당을 돌아 황금의 탑을 거쳐 과달키비르 강의 산텔모 다리를 건너 강가에 위치한 이곳 전통을 자랑하는 안달루시아 지방의 특산 요리 집으로 마음에 점 하나 찍기 위해 들어갔다. 소주를 반주로 점심식사 후 지브롤터로 향하였다. 가는 도중에 목장이 자주 보인다. 투우를 하는 소인데 저 소들은 일을 시키지 않고 평생 대우받으며 살다가 마지막에 한순간 투우로서 보답하고 생을 마감한다고 한다. 세비야는 아름다운 고도(古都)였다.

Il Barbiere di Siviglia-Overture

롯시니 서곡“세빌리아의 이발사”

 <꾀꼬리 꽃미남 돈키호테 강길 파비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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