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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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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남터 귀신 너 나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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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하 [domini0727] 쪽지 캡슐

2008-07-19 ㅣ No.122225

 

내가 어렸을 때, 용산과 노량진을 잇는 한강인도교는 가운데 지점인 중지도에서부터 한강물이 가득하게 흘렀을 뿐 신용산 쪽에는 여름장마철에나 시뻘건 황톳물이 흐를까 물이 없는 모래펄이었다.

여름철이면 중지도 노량진 쪽 북단에 지금 잠실대교나 영동대교에 떠있는 것처럼 빈 드럼통 위에 건물이 지어져 있어 그곳에서 보트를 빌려 타기도 했고 또한 얕은 데서는 사람들이 수영을 하기도 했다.

중지도에서 길을 따라 내려가면 명수대 맞은 편 가까이까지 하얀 모래 사장이 펼쳐져 있었다.

지금의 용산쪽 강은 대부분 모래펄에 여기저기 풀이나 아카시나무 숲이 있었는데 샛강이라는 이름도 아마 그래서였던 것 같다.

 

샛강에는 홍수가 지고 난 후에 여기저기 약간씩 파인 곳에 별로 깊지 않는 물웅덩이가 생겨서 우리 같은 아이들이 헤엄치며 놀기에는 딱 좋았다.

그 물웅덩이에는 큰물이 졌을 때 물을 따라 들어왔다가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고 가두어진 물고기들이 많았는데 대부분이 붕어였지만 가끔 재수 좋은 날에는 뱃바닥이 누런 커다란 민물장어를 잡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탁구 채 크기만한 제법 큰 자라를 한꺼번에 두 마리를 잡았던 기억도 난다.


여름방학이 끝날 때쯤에 샛강에 가면 모래땅 토질에 특히 잘 자란다는 땅콩 밭이 지천이었는데 밤이 오면 아이들과 함께 신주머니를 들고 가서 땅콩 밭 서리에 재미를 붙여 매일 밤 땅콩서리를 하러 다녔다.

주전부리 할 것이 귀했던 시절이라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달콤하고 고소한 생 땅콩 맛이 비릿내가 좀 나기는 했어도 그때는 그맛이 최고였다.

다음날 아침 학교에 그 생땅콩을 가져가면 친구들이 서로 달라고 매달릴 정도였다.


당시 서빙고쪽 모래펄에는 지금은 강물에 잠겨서 보이지 않지만 동부이촌동이라고 불렀던 판자촌 마을이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오락가락해서 땅콩서리를 하기가 어려웠지만 한강철교 쪽인 새남터 쪽은 밤에 귀신이 나온다고 하여 사람들이 접근을 꺼리는 곳이라서 그랬던지 땅콩밭주인이 낮에만 지킬 뿐 밤이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러는데 밤이 되면 한강철교 밑에서 귀신이 우는 소리가 들리고 조금 더 기다려 밤이 깊어지면 목이 잘려서 몸둥이만 걸어다니는 귀신들이 나와서 떼를 지어 돌아다닌다고 했다.

나도 처음에는 그런 줄로만 알고 겁을 잔뜩 먹고 그 근처에는 얼씬도 않았었다.

왜냐하면 그곳 가까운 새남터가 바로 천주학쟁이들이 끌려가 막난이의 칼에 목이 잘린 곳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었고, 그 당시 “막난이의 비사”인가 “막난이의 애사”인가 최은희 주연의 영화를 학교에서 단체로 가서 관람한 기억이 나서였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가만히 생각을 하여보니 아무래도 뭔가 아닌 것 같았다.

학교에서 성경시간에 교목선생님한테 배운 바에 따르면 “벗을 위하여 목숨을 내 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 그랬는데 하물며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를 믿다가 차마 예수를 배신할 수가 없어서 자기 목숨을 내 놓은 이들이 귀신이 돼서 나타날 까닭이 없다고 여겨졌던 것이다.


나는 그 다음날부터 성경책을 들고 또래 친구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 성경책이라는 것이 미국에서 인쇄를 해 와서 그랬을 터이지만 당시로서는 아주 좋은, 매끄러운 종이에, 표지그림도 당시에는 보기가 힘든 총천연색이었는데 목자의 지팡이를 잡은 채, 구렛나루와 수염이 더부룩한 예수님이 몇몇 제자와 함께 그려져 있던 조그만 치부책 크기 단행본이었다.

요한복음인가 마가복음인가는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책을 들고 아이들에게

“봐라. 이 책에 보면 예수를 믿다가 순교하면 천당 간다고 쓰여 있다.”

나는 아이들에게 그 책을 들이밀며 보여주었다.     

“정말이가? 어디 보자. 몇 페이지에 있는데?”

짜아식이, 내가 그렇다면 그런 줄 알면 됐지. 꼭 토를 다는 녀석이 하나 있었지만 나는

분명히 보기는 본 것 같고 듣기는 들은 것 같은데도 그 페이지는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

“야. 임마야. 내가 학교에서 배왔는데 선생님이 우리한테 거짓말을 가르치겠냐? 더군더나 성경 가르치는 목사선생님인데...믿어라. 좀. 니는 우째 꼭 말이 많노?...”


그랬는데도 결국은 아이들이 나한테 설득을 당했다. 한번 해 보자는 것이었다.

그 당시 샛강에 흔하게 자란 미루나무 가지 중에서 굵은 것을 꺾어서 나무껍질을 벗긴 후에 다시 크로스로 짧은 것을 노끈으로 묶어 십자가를 만들어 높이 들고 어느 날 밤 나는 용감하게 맨 앞장에 서서 아이들에게 큰소리로 진군 신호를 보냈다.

“도스케키!(돌격!)”


결국 귀신은커녕 그날부터 땅콩 밭은 우리 것이었다. 진짜 땅콩밭주인도 귀신 나온다는 소리에 겁을 먹어서인가 밤에는 얼씬도 않았으니 말이다.

밤에 귀를 기울여 자세히 들어 보니 귀신이 운다는 그 소리의 정체는 한강철교에 부딪는 바람소리 같기도 했고 간혹 기차가 지나간 뒤에 교각에 남은 여진소리가 울려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인터넷에 한강다리 귀신 괴담이라는 것이 뜬다기에 추억해 본 내 어릴 때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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