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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이 짓밟은 진주… 누구 책임? (담아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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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홍주 [jhj5063] 쪽지 캡슐

2013-09-11 ㅣ No.93

교회
국정원이 짓밟은 진주… 누구 책임?[9월 9일 부산교구 시국미사 강론 전문 - 김상효 신부]
김상효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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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9.10  14:3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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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져주어서
그 돼지가 발로 진주를 짓밟고 돌아서서 우리를 물어뜯는다면
그것이 돼지의 잘못입니까?
아니면 돼지에게 진주를 준 사람의 잘못입니까?

진주는 조개의 상처에서 생겨난다고 합니다. 우리의 민주주의도 수많은 상처를 보듬어 안고 그 상처를 통하여 생겨났습니다. 민주주의의 어느 한 부분도 우리에게 그냥 오지 않았습니다. 독재를 극복하는 데에도, 군인들의 통치를 견뎌내고 이겨내는 데에도, 우리 손으로 대의 기관을 구성하는 데에도, 고작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뽑는 권리를 되찾는 데에도 수많은 고통과 희생이 뒤따랐습니다. 군인들이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막는 데에도, 국가기관이 선거에 개입하지 못하게 막는 데에도, 아니 적어도 그런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는 데에도 엄청난 사회적 비용과 고통이 뒤따랐습니다.

국가정보기관에서 고문을 당한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죽어간 사람들. 녹화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군대에 끌려가 고초를 치른 학생들, 그리고 죽어간 사람들. 노동현장에서 생존을 위한 권리를 요구하다가 끌려간 사람들, 그리고 죽어간 사람들. 남루한 삶의 현장을 그것만이라도 지켜보려 발버둥치다 끌려간 사람들, 그리고 죽어간 사람들. 자신의 고유한 내면과 의식을 누구에게도 침해당하지 않고 배타적인 것으로 소유하고 싶어서 생각의 자유를 주장하다 용공세력이 되어 끌려간 사람들. 그리고 죽어간 사람들... 이들의 은혜를 입어 진주보다 더 귀한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어느 한 부분도 우리에게 귀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진주를, 이렇게 어렵게 얻은 진주를 돼지가 발로 짓밟고 배설물 속에 처박는다면 그것이 돼지의 잘못이겠습니까? 그 돼지에게 진주를 준 사람의 잘못이겠습니까?

지난 정권이 시작될 무렵 발생한 용산참사 때 사람들은 그리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어느 구석에서 일어난 일이라 여기거나, ‘재개발 보상금을 더 받아내려고 악다구니를 하는구나’ 정도로 치부하면서 그저 그들의 문제나 불행으로 여겼으며, 그들을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사태의 진상을 알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고, 그래서 사태에 합당한 분노도 표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진주 한 조각을 내팽개친 것입니다.

쌍용차 사태가 발생합니다. 자국의 노동자를 마치 테러집단을 대하듯, 무지막지한 공권력으로 진압하고 나서 지속적으로 학대할 동안, 그리고 그 학대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속출할 때에도 우리는 그리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노사분규가 생길 때마다 습관적으로 우리는 ‘배부른 귀족노조가 임금 좀 더 받아내려고 무리한 행동을 하는구나’ 라고 단순화해 버리면서 그들의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반반한 직장에서 배가 불러서 저런 짓을 한다고 치부해 버리고, ‘생산차질로 생긴 손해가 천문학적이다’는 언론의 보도행태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버립니다. ‘저리니 경제가 더 어려워진다’ 고 투덜거리면서 오히려 그들을 비난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아니었고 그래서 우리는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의 진주 한 조각을 또 내팽개쳤습니다.

제주도 강정의 아름다운 자연과 그 자연을 닮은 지역민들의 마음을 굴삭기로 파헤치고 폭약으로 짓이길 때에도 우리는 그리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해군기지가 들어오면 국방이 튼튼해질 것이고 국방이 튼튼해지면 평화가 더 강화될 것이라는 논리를 머릿속에 또 새겨 넣으면서 무자비한 파괴를 용인해 주었습니다. 강정은 우리 동네가 아니고, 내 문제가 아니라 여기며 우리는 또 합당한 분노를 표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의 진주 한 조각을 내팽개쳤습니다.

밀양, 초고압 송전탑이 들어서려 하는 현장에서, 또 기초적인 노동의 권리를 주장하며 올라간 철탑과 성당의 종탑 위에서 우리의 진주 한 조각은 무시당하고, 조롱당했으며, 짓밟혔습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국가정보원이 대통령 선거에 개입하는 과감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사진 제공 / 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
푸대접에 익숙해져 버린 국민을 향하여, 분노할 줄 모르는 국민을 향하여, 스스로 진주를 내팽개치는 국민을 향하여 어느 정부와 정권이 자발적으로 존중을 표하겠습니까? 어느 정부와 정권이 그 국민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무슨 일이라도 가능하다고 생각지 않겠습니까? 한 나라의 국민이 자신의 정부로부터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 정부를 바꿀 수 있는 기회를 국민 스스로 가질 수 있을 때입니다. 그런데 그 유일한 길을 국가정보원은 훼손해 버렸고, 오염시켜버렸습니다. 여론을 조작하는 일이란 국민의 내면과 영혼을 조작하는 일입니다. 그 일을 시도했고, 얼마간 성공했으니 그들에게 두려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져주어서 그 돼지가 발로 진주를 짓밟고 돌아서서 우리를 물어뜯는다면 그것이 돼지의 잘못입니까? 아니면 돼지에게 진주를 준 사람의 잘못입니까?

우리는 존중받고 싶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정부로부터 제대로 된 대접을 받고 싶습니다. 우리를 어려워하고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우리의 어려움에 주목하는 정부를 갖고 싶습니다. 한 나라의 중심이 정부나 정권이 아니라 국민이 되는 나라를 만들고 그 속에서 살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깨어 있으려 무진 애를 씁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들을 만난 사람을 보살펴 준 것을 놓고 그의 착한 마음을 칭송해야 할 뿐 아니라 그의 지혜와 현명한 처신도 함께 칭송해야 합니다. 강도들을 만난 사람을 돌보아 주는 행위는 강도들을 만난 사람에게 사람들의 시선을 불러 모으기에 충분한 일이 됩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의 시선이 강도를 막는 좋은 방패가 됩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곳에서는 강도들이 활개 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그 강도들을 만난 사람을 돌보아 주고 있으면 강도들이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착할 뿐 아니라 현명하였습니다. 자신이 다니는 길에서 누군가 강도들에게 당했다면, 자신도 언젠가 그런 일을 당하게 될 것이고 그것을 막는 길은 사람들의 시선을 불러 모으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강도들을 만난 사람을 돌보아 주었던 그의 행위는 착할 뿐 아니라 현명한 처신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보인 애덕의 행위가 그 스스로를 보호하는 장치가 되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부디 이웃을 많이 만드시길 바랍니다. 강도들을 만난 사람들, 촛불을 든 사람들, 쫓겨난 사람들, 밀려난 사람들, 억눌려 있는 사람들, 세상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여기며 사는 많은 사람들, 여기저기서 엄청난 권력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 그들을 이웃으로 만드시길 바랍니다. 그들의 상처가 무엇인지, 무엇이 상처인지, 왜 그런 고통이 왔는지, 살펴보고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애정 어린 눈으로 지켜볼 수 있도록 시선을 모아주십시오. 그 시선이 방패가 되고 안전망이 되어 우리를 보호해 줄 것입니다. 결국 좋은 민주주의란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결국 좋은 민주주의란 누군가를 보듬어주고, 보살펴 주고, 치유해 주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바로 그 자리에서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진주가 더 이상 돼지들의 발길질과 그들의 배설물로 모욕당하지 않도록 우리의 소중한 자리에로 되돌려 놓읍시다.
 

김상효 신부 (필립보)
부산교구 화봉성당 주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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