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인물 현대사 - 노래하는 전사 - 김남주

스크랩 인쇄

이강길 [u90120] 쪽지 캡슐

2005-03-26 ㅣ No.56

시인이 시인으로서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누릴 수 없었던
시대…

'긴급조치 9호'가 발표되고 유신 정권의 폭압이
절정에 달했던 70년대 중반은 그런 시대였다.



김남주는 詩를 사회 변혁의 무기로 삼아 反유신, 反독재 투쟁의
전면에 나선다.

김남주는 빼앗긴 자유를 되찾기 위해 무장 투쟁을 내세운 '남민전'의
전사가 되어 유신에 맞서 싸우다 투옥된다.



박정희의 죽음으로 유신 체제가 무너졌어도 그는 10년 가까운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게 된다.

대부분의 긴급조치 사범들은 석방되지만 김남주와 남민전
관련자들은

'시국 사건'이 아닌 '공안 사건'으로 분류돼 풀려나지 못하고
광주교도소에 갇힌다.



옥중에서 광주 학살 소식을 접한 김남주는 시를 무기로 광주 학살을
자행한 신군부 정권과 또 다른 싸움을 벌인다.

종이도 펜도 주어지지 않은 감옥 생활.

그는 우유곽에서 벗겨낸 은박지 위에 한 글자 한 글자 못으로 긁어 시를
쓰고,

또 화장지로 지급된 갱지 위에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그렇게 시를
썼다.



광주 학살의 진상을 알리며 저항을 외친 그의 옥중 시들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은밀하게 돌면서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가 노래가
되었다.

그의 옥중 시 <노래>는 그렇게 85년 세상에 나와 어느 시위
현장에서나 불려진 <죽창가>가 되었다.

또한 옥중에서 화장지용 갱지 일명 '똥종이'에 쓴 옥중 시 60여
점은

그 어떤 탄압도 인간의 '자유를 향한 의지'를 결코 꺾을 수 없음을
생생하게 입증하고 있다.



문학적 고상함를 떨쳐 버리고 폐부를 찌르는 통쾌한 민중의 언어로
단호하게 써내려간 그의 시들은

80년대 한국의 청년, 노동자, 대학생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진정한 자유란 <만인을 위한 삶>이라고 외친
시인 김남주,

'노래하는 전사' 김남주의 생생한 육성과 옥중 시를
통해

지금 우리 시대의 자유의 의미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마련하고자 한다.

724

추천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