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6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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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카나의 혼인잔치에서의 기적에 대한 성경말씀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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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중호 [emeis] 쪽지 캡슐

2008-04-27 ㅣ No.119826

사흘째 되는 날, 갈릴래아 카나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에 계셨다.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그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으셨다.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 하였다.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말하였다.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정결례에 쓰는 돌로 된 물독 여섯 개가 놓여 있었는데, 모두 두세 동이들이였다.  
예수님께서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워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물독마다 가득 채우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이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 하셨다. 그들은 곧 그것을 날라 갔다.  
과방장은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지만,물을 퍼 간 일꾼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과방장이 신랑을 불러  그에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군요.”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그 뒤에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카파르나움으로 내려가셨다.
그러나 그곳에 여러 날 머무르지는 않으셨다. 
요한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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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인 활동에서 이루어지는 첫번째 표징으로서 카나의 혼인잔치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카나의 혼인잔치 이야기는 첫번째 제자들을 부르시는 내용과 성전정화 사건 그 가운데 배열되어 있다.
카나의 혼인잔치 이야기는요한복음서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파견되신 사람으로써 처음으로 당신 자신을 현현하는 모습을 전해준다.
물론 요한적인 관점에서 이 이야기도 예수님이라는 인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제 본격적인 본문 주석에 들어가봅시다~
 
 
>> 3절: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 하였다.  
 
왜 혼인잔치에 손님으로 초대받은 어머니 마리아가 남의 혼인잔치에 관계하고
또 어머니는 예수님을 향해 방향을 돌리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다, 떨어졌다고 이야기한 이 구절을 가지고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을 알고 기적을 하도록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해왔고
또 그렇게 주석해왔다.
그래서 어머니의 청을 거절할 수 없어서 기적을 행했다....
그러니 우리도 성모님께 기도를 해서
하느님께 우리 간구가 전달될 수 있게 해야 한다라는 논리의 비약이 이루어진다.
 
바로 이런 논리적 비약 때문에 성서학자들은
예수님의 어머니이 이런 이야기 속에 기적을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기존의 생각을 부정한다.
어머니의 이 말씀은 포도주가 없다는 상황을 전해주는 것이 불과하다.
 
어머니께서 술이 떨어졌다고해서 자기 아들에게 기적을 요구했겠는가?
그렇다면 마리아는 처음부터 예수님의 메시아성을 완전하게 인지하고 있었던 분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의 인격의 본성을 제대로 깨닫고 있었는가?
다시 말해 마리아의 예수님에 대한 신앙이 처음부터 완성된 형태였겠는가?
지금 이 이야기의 시점은 예수님 공생활 초기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요한복음에서 믿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단계 한단계 거쳐 성숙되어야 하는 것이다.
 
어찌 해볼 수 없는 절망의 상황을 어머니가 아들에게 알려준다는 것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예수님의 중재가 이루어지게 된다.
즉, 인간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마지막 상황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예수님의 주도권 아래서 기적이 성취되는 것이
요한 복음 전체에 나오는 표징이 지니고 있는 일관적인 모습이다.
 
마리아가 포도주가 없다라는 이야기를 아들에게 한 것은 그 상황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고
이것은 또 하나 중요한 모습이다.
즉 이웃의 고통과 어려움에 눈감지 않고 함께 하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이다.
예수의 어머니는 자기 자신으로서는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걱정스러운 상화을 직면하면서
그런 사실들을 근심스럽게 자기 아들에게 표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참고: 계약의 신비 안에 계시는 마리아(이냐시오 드 라 포테리 지음/박영식요한 옮김)316-319P>
마리아가 예수님께 기적을 요구했는가?에 대한 학자들의 의견은 네 가지이다.
첫째, 마리아의 말을 떨어진 포도주를 채우기 위하여 실천적 해결을 얻기 위한 단순하고 평범한 질문으로 본다.
예를 들어 "너의 제자들이 포도주를 구하러 갔다 올 수는 없겠느냐?"라는 정도의 질문으로...
둘째, 몇몇 교회교부들(니싸의 그레고리오, 테오도르,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은
예수님의 메시아 사명을 잘 알고 있던 마리아가 예수님께 기적을 행할 것을 촉구한 것으로 본다.
셋째, 처음부터 마리아가 우의적, 상징적 수준에서 말하고 있다고 본다.
곧 마리아는 이스라엘을 대변하고 있으며 메시아적 선의 포도주를 얻으려는 이스라엘의 열망을 대변한다는 것이다.
 
넷째, 많은 주석학자들은 마리아는 단순하게 포도주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라 본다.
예수님께서 아직 아무런 기적을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리아가 여기서 참된 기적을 청한다는 것은
실제적으로 불가능하다. 아직 예수님의 공생활 초기 단계이다.
마리아는 젊은 신랑 신부와 그들의 가족들이 처한 딱한 사정을 염려한다.
마리아는 충만한 신뢰로 예수님께 자신의 염려스러운 마음을 표현한다.
물론 여기에 예수님께서 어떻게 해보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의 마음이 담겨있는 것은 당연하다.
 
 
 
>>4절: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이 말씀에서 드러나는 것은 예수님의 주도권이다.
기적이라는 것은 전적으로 하느님께 달려있다.
즉 예수님의 공적인 직무에 있어서 성모님의 모성적 권위는 아무 소용이 없음을 알려주는 말이다.
이것이 요한적 사상이다.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예수님이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에 의해서만 행하신다.
인간 누구도 예수님께 이렇게 저렇게 하게끔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머니라 하더라도
예수님의 공적인 직무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을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성적 권위의 무용성을 증명하기 위해 요한복음서는 이 표현을 쓰고 있다.
특히나 예수님의 때가 오지 않았다는 말씀에서 이 의미는 더 잘 드러난다.
 
결국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당신을 현현하시는 것이 카나의 혼인잔치인데
예수님이 전해주고자 하는 계시와마리아의 인간적 무지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이 요한의 관점이고
때(Καιροs) 라는 표현에서 좀더 구체화된다.
 
이 때(Καιροs) 에 관한 주제는 요한복음에서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처음 나타나고 있는데
아직은 어느 때를 나타내는지 알 수 없다.
복음서를 읽어가는 동안 서서히 그 뜻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때(Καιροs) 라는 것은 수난과 영광의 때를 나타낸다.
구원의 포도주가 풍성하게 흘러 넘치는 그 때를 말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어머니의 청을 들어서 때가 이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기적을 행하셨고, 이 때를 앞당겼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생각은 요한복음서에 나오는 때(Καιροs) 에 대한 개념을 근본적으로 잘못 알고 있는데서 오는 오해이다.
 
요한의 사고를 보면
때(Καιροs) 라고 하는 것은 온전히 아버지의 뜻에 달려 있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자신도... 어머니도...
그 누구도 이 때를 앞당기거나 뒤로 미룰 수 없는 것이다.
 
아버지는 구체적인 구원의 때를 정하고 계신 분이시다.
예수님께서는 철저하게 아버지께 순종하신다.
아버지로부터 파견된 예수님은 그 때를 당신의 뜻대로 앞당기거나 뒤로 미루지 않으신다.
 
 
 
<참고: 계약의 신비 안에 계시는 마리아 319-325P>
여기서 시작되는 예수님의 시간은 메시아적 계시의 때이며
이스라엘은 예언자들의 시대부터 그때를 기다려왔다.
예수님의 시간은 지금 시작되지만
예수님의 공생활 전체 동안 계속될 것이며
십자가와 부활의 신비 안에서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
 
이 해석에 비추어 우리는 예수님이 여기서 자기 어머니에게 말할 때
'여인'이라 부르는 이유를 지금부터 어느정도 직감할 수 있다.
예수님은 이제부터 더 이상 자기 어머니의 아들로서
마리아에 대해 가족관계에만 머물지 않고
구원 경륜 안에서 '여인'에 대한 메시아로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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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어려울 수 있지만
시간을 두고 찬찬히 읽어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과 어머니 마리아의 대화를
잘 이해한다면
 
올바른 성모신심과 함께
어떻게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지
더 깊이있게 생각해 볼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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