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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차 종교 개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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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차 종교 개혁
“제대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현재 기독교에 대해서 두 가지가 확실하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사람들은 종교 없이는 살 수 없다. 둘째 지금 이대로의 종교를 가지고는 살 수 없다”
At the present moment two things about Christian religion must surely be clear to anybody with eyes in their head. One is, that men cannot do without it; the other they cannot do with it as it is.
1875 년에 영국 시인이자 문명 비평가인 Matthew Arnold라는 사람이 한 말인데 2008 년의 내 심정이기도 하다. 난 늘 기독교 주변에서 살아왔다. 중학교와 대학교를 기독교 재단의 학교를 다녔고 지금 직장도 기독교 (카톨릭) 재단의 학교이다. 부모님도 형제들도 다 교회에 아주 열심히 나간다. 나 자신도 미국에 살면서 10년 넘게 한 교회에 적을 두고 있다. 그런데 나보고 기독교인이냐고 물어보면 그렇다는 대답이 잘 나오지 않는다. 그런 이유는 교회에서 목사님들의 설교를 듣거나 소위 믿음이 깊으시다는 교회 원로들의 말씀을 들을 때 뭔가 진실되지 않은 구석이 있고 납득이 되지 않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종교는 다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고 신같은 것은 없다 라고 선언하기엔 좀 섭섭한 면도 있다. 게다가 나도 나이가 더 들고 죽을 날이 가까워지면 더 이상 따지지 않고 이어령씨 처럼 무릎 꿇고 잘 믿겠습니다, 천국에 보내 주세요 라고 할 가능성이 없다고 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차라리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 교리를 합리적으로 재정리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몇 번 있다. 특히 비합리적인 교리를 무조건 믿으라는 설교를 들을 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여러 가지 기독교 교리가 많은 현대인들에게 설득력이 약한 주된 이유는 많은 교리가 경험적 또는 과학적 자료와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기독교 교리 중에 핵심적인 것이 전지전능한 신이 존재하고 그 신이 자기를 도와준다는 (또는 도와줄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신이 나의 편이 되어 나를 도와주고 천당에도 갈 수 있는지가 여러 가지 종교 활동의 동기가 된다. 믿음이 강하면, 교회에 열심히 나가면, 교회에 헌금을 많이 내면, 착한 일을 많이 하면, 새벽 기도를 나가면, 선교를 하면, 찬양을 열심히 하면, 기도를 열심히 하면…… 그런데 그런 기대를 가지고 “성령 충만” 해서 교회를 다니다 보면 종종 실망하게 된다. 하라는 대로 다 했는데 신이 별로 도와주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믿음이 약해서 그런 것일까? 헌금을 적게 내서? 하나님이 시험해 보시는 것인가?
이 문제는 성경 자체 (욥기 Job) 에서도 제기된다. 누구보다도 정의롭고 신앙심도 깊은 사람 욥에게 재난이 닥쳐 병에 걸려 고생하고 재산을 다 잃고 자녀들이 죽는다. 왜 신은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놔두는가? 기독교 교리가 품고 있는 모순 중에 가장 많이 논의되는 것이 바로 이 욥 (Job) 의 문제이다. 신이 전지전능하고 기본적으로 인간의 편에 서 있다면 (benevolent) 왜 세상에 불의나 악이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problem of theodicy). 꼭 성경에 나오는 예를 들을 것도 없이 신이 존재한다면 왜 순진한 아이들이 납치되어 성폭행 당하고 사지가 잘려 매장당하는 일이 일어나는가? 신은 왜 말리지 않았을까? 신이 전지 전능하지 않아서 악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해 줄 수 없었나? 아니면 신이 인간사에 무관심한 것인가?
이에 대하여 많은 기독교인들은 사탄의 존재를 믿고 사탄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악의 원인이라고 믿는다. 사실 욥기에서도 사탄이 신과 내기를 하는 과정에서 욥이 그런 재난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사탄의 존재 자체도 논리적으로 문제가 된다. 전능하고 우호적인 신이 왜 사탄이 나쁜 짓을 하도록 내버려 두는가 말이다. 전지 전능하다는 개념 자체가 모순이라는 지적도 있다. 모든 것을 다 안다면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다 안다는 뜻일 텐데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안다는 것은 미래에 일이 다 정해져 있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신이 미래에 일어날 일을 바꿀 수 없다는 뜻이 되므로 전능하다는 명제에 모순이 된다.
이런 문제를 기독교인들에게 제기하면 흔히들 돌아오는 반응은 신의 뜻을 우리는 이해하거나 알 수 없다. 무조건 믿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자기가 모르는 존재를 믿을 수 있는가?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의 심정은 “나는 전지전능한 신이 나를 뒤에서 보살펴 준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믿는다. 그런 믿음이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거나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해도 그런 믿음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것이다. 즉 그들은 자기가 생각한 대로 이해하고 믿는 것이지 모르면서 믿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2000년 전에는 사람이 병에 걸리고 또 병에서 낳는 것을 포함한 세상 만사와 천둥 번개가 치는 것도 천재 지변이 일어나는 것 같은 자연 현상 모두 신이 직접 통제하는 것이라 믿었다. 이런 믿음을 21세기에도 가르치고 믿으라고 종용하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다. 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머리 한구석으로는 믿으려고 노력하지만 사실상 믿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이다. 사실 그런 믿음으로는 21 세기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 병은 신이 화가 나서 주는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라든가 박테리아 같은 병원균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손을 잘 씻든지 해서 예방하면 피할 수도 있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자연현상들 – 쓰나미라든지 지진이라든지 – 을 신이 직접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일으킨다고 가르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다 뻔히 아는 것을 교회에서 우기면 사람들이 결국엔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교회에서 이런 식의 신앙을 가르치는 이유는 교회자체의 이기심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식의 신앙이 교회가 부흥하는데 가장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신이 인간사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는다면 종교를 가질 이유가 무엇인가 라고 물을 수 있지만 신이 인간의 행동을 통해서 세상사에 관여한다고 믿으면 되는 것이다. 즉 인간이 기도를 하면서 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사리 사욕을 벗어나 좋은 일을 하도록 영감도 받고 신의 격려도 받아 신의 의지를 실천한다고 믿으면 되지 않는가? 그렇게 믿으면 위에 지적한 논리적 모순이 해결될 수 있다.
1517년에 마틴 루터가 당시 교회의 가르침에 불만을 품고95 개의 항의문을 당시의 게시판 역할을 하던 교회 (Castle Church) 정문에 붙여서 종교 개혁을 시작했다는데 내가 바빠서 95개 까지는 못 만들었고…
• 교회는 자기 교단의 교리만 옳고 다른 교단 또는 다른 종교는 무조건 틀렸다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 루터가 500년전에 주장하고 개신교도들이 받아들였듯이 목사님만 신과 교감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것이 아니다. 교회는 일방적으로 목사님의 가르침을 받는 곳이 아니라 교리를 토론할 수 있는 장이 되어야 한다.
현을 위한 세레나데 마장조 작품22제1악장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