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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본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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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본 사람은 내 아버지를 본 사람이다.” 어제 부활 마지막 주일의 복음말씀이었다.
훌륭한 사제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느껴지더니, 바로 그 까닭이었다.
그렇다면 내 모습은? 나를 본 사람들이 나를 보고 느끼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갑자기 두려워진다. 남에게 비친 내 모습이 과연 하느님을 믿는 사람으로, 천주교신자로, 예수님 말씀을 따르는 그런 사람으로 보였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어제 교우 딸 예식장에 갔다가 주례를 맡은 전임 총회장님과 한자리에서 식사를 했다. “모이세 형님, 오늘 주례사 끝내주던데 ‘물처럼 살라’는 주례사, 혹시 신랑신부보다 그 말씀 나더러 들으라고 한 소리 아니요?” 내가 그랬다. 한때 나와 함께 사목위원, 울뜨레아 등등 교회내 여러 모임이며, 또 우리 000구의 선거관리위원회를 비롯하여 지역의 대외적인 모임도 여럿 함께 하면서 모든 것을 묵묵히 포용하는 그 형님에 비하면 나는 회의 때마다 언제나 톡톡 튀는 촉 바른 소리를 해서 언젠가 그 형님한테서 핀잔을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우스개로 한 소리였다. “왜 또 그러시나? 당신은 그거 빼면 시첸데... 그게 당신 장점 아닌가? ㅎㅎㅎ ” 같은 자리에서 식사를 하던 교우들이 모두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를 바라보며 웃는 것을 보면 모이세 형님 말씀이 전혀 근거가 없는 빈말은 아닌 것 같았다.
내가 한때 지역신문사를 운영하면서 구청행정이나 사회비평 논설을 신문에 자주 쓰다보니 마치 그게 내 달란트처럼 비추인 면도 없잖아 있었겠지만 과연 내가 독자들이나 주위사람들에게 행동으로 언행일치를 보였을까 생각하면 자신이 안 선다. 나는 ‘바담풍’ 하면서 남들더러 ‘바람풍(風) 하란 것과 같아서 말이다.
내가 천주교신자로서 살아가려면 나를 보는 이들에게 내가 천주교신자로 보여야만 당연한 것이거늘 “과연 내가 그래왔느냐?” 자문하는데 이 나이가 되어서도 자신감이 안 서니 이건 아무래도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정말로 복음은 허투로 들을 게 아니다. “나를 본 사람은 내 아버지를 본 사람이다” 참말로 두려운 말이다. 내가 존경하는 사제의 모습에서 내가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듯이 남에게 비친 내 모습에서 천주교신자의 모습이 보여야만 한다는 것을 복음을 통해 새삼 깨달으니.....
이제 머잖아 생을 마감할 나이이니, 이제부터는 촉 바른 말보다는 천주교신자다운 행동으로 소리보다는 천주교신자다운 실천으로 “나를 본 사람은 천주교신자를 본 사람이다”고 했을 때 스스로 자신감이 서도록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며 귀로에 혼자 예술의 전당 숲에 들어가 한참동안 앉아 깊은 고민을 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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