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6일 (화)
(녹) 연중 제34주간 화요일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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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날 하루종일 쫄쫄이 굶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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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영 [pennom] 쪽지 캡슐

2008-04-18 ㅣ No.119634

 
지금 식당 쪽에서는 기타 반주에 맞추어 7080시절의 불후의 명곡들이 화음까지 넣어 걸쭉하게 흘러나온다. 성가대 회원 한 분의 환갑 잔치다. 게다가 조 아래 읽어보니 지요하님의 그야말로 환갑잔치의 FM이라할 만한 신앙문집 봉헌기사도 있다. 그러나 세상에는 환갑날 하루종일 쫄쫄이 굶은 사람도 있다.(누가 굶으랐나?)
 
우연인지 모르겠으나 작년 올해는 내 주위에 환갑잔치하는 분들이 많다.
"주위"라고 한 이유는 내 환갑잔치는 어디론가 실종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 실종의 원인은 구할(九割)이 내 탓이다. 나는 원래부터 환갑이라는 말이 남의 일이거니, 내가 환갑이라니?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환갑이 가까워오자 어떻게 이걸 피해 도망가나? 그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큰 애가 일본여행 운운하는 얘기를 하길래, 아예 말을 못하게 입을 막아 놓았다.
 
 
"나, 일본 안간다. 이건 확실하게 이야기 한다." 하고 못을 박았다.
"그냥 미역국이나 끓여서 가족끼리 먹고 끝내자." 이게 내 결론이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아내 입장에서는,
"지가 무슨 독야청청 선비라고, 내 생각은 전혀 하지도 않고 멋대로 결정이야?" 속으로는 일본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것 같다.그래서 그랬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으나, 환갑날 아침은 아내가 밥도 해 놓지 않고 휭하니 출근해 버리고 마침 휴가를 얻어 집에서 늦잠을 자던 나는 그냥 아침을 거르고 늦으막하게 일어났다. 아내가 일찍 들어온다고 하길래 점심이나 같이 먹지, 뭐 이러고 있었다.
 
 
점심때가 되어 전화가 왔다. "금방 들어갈테니 기다려요."
그러면 그렇지 하고 내심 나가서 외식이나 할까 하고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연락도 없고 오지도 않는다. 시간이 흘러 1시가 넘고 두시가 가까워 온다. 아침을 걸렀으니 배도 고프고 먹을 것도 없다. 두시 다 되어 아내로 부터 전화가 왔다.
"나 아무래도 못들어 갈것같은데, 어쩌지?"
긴말 하고 싶지 않아 "알았어." 하고는 집을 나왔다.
이 동네에는 점심 한끼 먹을 만한 집도 없다. 이리저리 쏘다니다가 무슨 우동집에 들어갔는데, 값만 비싸고 어찌나 짜기만한지 영 기분이 말이 아니다.
 
전철을 타고 서울로 올라갔다.
"사해 사본과 그리스도교의 기원전" 얼마나 멋진 제목인가? 여기 가 보면 사해 사본도 볼 수있고 그리스도교의 기원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같다.
용산 전쟁박물관도 한 번도 안 가보았으니 한 번 가보자. 하고 들어갔다. 어랍쇼? 입장료가 장난이 아니다. 보통 2천원 정도, 비싸봐야,5천원 정도일줄 알았는데 만오천원 이던가?(기억력이 이 정도다 벌써 얼마 주었는지 잊어버렸다.) 하여튼 만원은 넘었다. 게다가 설명하는 도우미 옆에는 어떤 개신교 머저리가 한 명 따라 다니며 계속 딴지(천주교에 대해서)를 걸고 난리다. 아마도 성지에서 공부를 한, 목사는 아닌 것 같고 무슨 전도사쯤 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콘스탄티누스 대제 시대에 기독교가 비로서 국가 공인을 받았다고 도우미가 이야기하자, 이 머저리가 톡 나서서는 "물론 그래서 좋은 점도 있었지만, 결국은 종교 정치와 결탁하여 타락하는 원인도 되었죠. 이 둘을 같이 보아야 합니다." 하면서 초를 친다. 이 친구는 코스가 끝날 때가지 계속 따라다니며 자신의 유식과 박학을 뽐내고 다녔다.
하여튼 좀 비싸다는 감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전시내용은 그저 보통이다. 그 정도였다. 점심으로 곰탕인가 한 그릇을 떼우고 전쟁박물관을 돌아보고 내려왔다.
.........
 
동인천역 옆에는 소위 <참치 골목>이라는 게 있다. 알만한 분들은 아시겠지만, 주머니가 가벼운 대학생들이 손님의 주류다. 참치구이에 막걸리 한 주전자, 이거 오랜만에 한 잔 생각이 간절하다.
동인천에 내리니 번뜩 이 생각이 나서 무작정 그리로 향해서 막걸리 한 주전자를 비우고 일어섰으면 내 환갑날도 그렇게 허무하지는 않았을 텐데,..
 
동생이 나오고 막걸리가 한 주전자 더 나오고, 신협 달력을 하나 선물로 받고, 그리고 내 환갑날은 화려하게 막을 내렸는데...
 
요 아래 지요하님의 환갑잔치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사람 사는 것도 이렇게 다르구나 새삼 존경스럽고 부럽기 까지하다. 일생에 한 권 내기도 어려운 문집을 한꺼번에 세 권씩이나 내고 그것도 성전에서 하느님께 봉헌하는 영광도 얻고, 게다가 그 수익금을 이웃과 성당을 위해서 바치는 거룩한 마음까지 보이시니 마누라한테 밥 한끼 못 얻어먹고 씰데없이 서울이나 기웃거리다가, 막걸리 한 통에 비틀거리는 내 자신과 대비해보니, 스스로가 참으로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물론 지요하님은 문단에서 화려하게 각광을 받는 소위 스타 문인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스타 문인 몇몇을 빼놓고는 글 써서 밥 먹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은게 사실이다. 게다가 소위 인터넷에서 글을 쓰면서도 스스로 잘나가는 내공파들로 부터 무수한 조롱과 비난을 받았다. 글이 꼭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의 훈화같다는 둥, 문학이 무슨 도덕교과서냐는 둥 너무 종교를 내세우는 것 아니냐는 등등이 대표적인 비난의 촛점이었다.
그러나 그분의 진실한 삶의 자세에서 우러나오는 좋은 글들은 많은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번에 환갑을 맞은 또한 분이 계시다.
내가 아는 신부님이다. 신부님 역시 극구 잔치를 안하겠다고 하셨으나 사목위원들이 가만히 좀 계시라고,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테니 신부님은 잠자코 계시라고 거의 욱박지르는 통에 마지못해 받아들이셨는데, 만약, 그나마 고집대로 그냥 자나갔다면 내짝 났지 싶다. 어짜피 신부님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있었을 것이고 저녁 먹자 ,한 잔하자 했을 것이니, 그럴바에야 역시 잘했다 싶은 생각이다.
 
그러나 이제 한 고비는 넘어갔다는 건 숨길 수 없다. 목소리는 갈라지고, 잔소리는 늘고, 옳은 말씀은 더욱더 잔소리로 들리고, 신자들은 "알았어요. 네, 네,." 하지만 내심으로는 "신부님, 이제 알았으니, 좀 잔소리 좀 그만하세요." 이러는 눈치가 역력하다. 상대적으로 생생한 보좌신부님의 곁으로 자꾸 신자들이 몰린다. 대견하고 좋아보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위기감을 느끼지 않으시는 건 아닐 것이다.(이건 내 괜한 지레짐작인지도 모른다.)
 
참 세상에는 별별 희안한 인간도 많다.
"사둔 남 말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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