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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재난이 가져온 또 하나의 작은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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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요하 [jiyoha] 쪽지 캡슐

2008-04-18 ㅣ No.119637

          기름재난이 가져온 또 하나의 작은 에피소드




어제(16일) 오전 태안읍 삭선리 '00자동차공업사'에 가서 이틀 전에 맡긴 내 승합차를 찾아왔다. 수리비는 정확히 38만7천원이 들었다. 어이없는 사고로 내 승합차의 옆문이 찌그러진 바람에 졸지에 40만원 가까운 돈이 날아간 것이다.

사고는 지난 12일(토) 오전에 있었다. '놀토'라서 전국 각지에서 온 많은 천주교 신자 자원봉사자들이 우리 태안성당을 통해 해변 기름제거 작업을 하게 되었다. 무려 900여 명이나 되었다. 먼저 도착한 버스 일곱 대를 우선 안내하여 작업장으로 가게 되었다. 물론 가장 먼저 안내를 하는 일은 내 몫이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소원면 의향리 '개목항' 해변이었다. 우리 태안성당으로서는 처음으로 찾는 작업장이었다. 우리는 지난달 중순 모항2리 군사보호지역에서 철수한 후로 모항항 해변에서 작업을 해왔다. 그러다가 11일(금) 하루는 120명 정도를 안내하여 의향리 '태배'라 부르는 지역의 '가르미'라는 해변에서 작업을 했다.
 

▲ 주교님의 미사 집전 / 11일(금) 기름제거작업을 하러 태안에 오신 대전교구장 유흥식 라자로 주교님과 교구청 직원들은 '물때'에 맞춰 오전 9시 태안성당에서 미사부터 지냈다.  
ⓒ 지요하  재난봉사

11일 태배지역을 택한 것은 '붉은 언덕', '뎅갈막', '가르미', '내태배', '외태배' 등으로 구분되는 태배지역 해변에 아직도 기름이 많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대전교구장 주교님과 교구청 신부님들을 포함하여 교구청 직원 80여 명이 처음으로 방제작업을 하는 날이기 까닭이었다.

주교님과 교구청 신부님들과 직원들에게 아직도 태안의 해변이 심각한 상황임을 실감시켜 드리면서 확실하게 기름을 닦았다는 일종의 보람 같은 것을 선사해 드리려는 의도였다.

태배지역에 아직도 기름이 많은 것은 접근이 어렵고 작업 조건이 좋지 않은 곳이기 때문이다. 급히 만든 굴곡이 많은 능선 길, 좁은 주차장, 수직에 가까운 철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려야 하는 작업 조건('붉은 언덕'과 '뎅갈막'), 별로 넉넉지 못한 작업 공간은 태배지역을 마지막 '전투지'로 만들 공산이 크다.

우리는 그동안 태배지역을 놓고 고심과 갈등을 거듭해 왔다. 재난봉사본부 봉사자들은 의견이 양분되어 있었다. 안전 위주로 가야 한다는 쪽과 다소 힘들고 어렵더라도 작업 보람을 얻어야 한다는 쪽으로 갈려서 약간의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 주교님의 기름닦기 작업 / 천주교 대전교구장 유흥식 라자로 주교님은 기름사고 이후 세 번째 태안을 찾은 11일, 태안군 소원면 의향리 '태배'지역의 '가르미' 해변에서 기름제거작업을 했다.  
ⓒ 지요하  재난봉사


그러다가 11일에는 태배로 가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쉽게 의견 통일이 이루어진 상황에서 나는 의아스러움을 삼키며 혼자 웃음을 짓기도 했다. 11일은 주중이라서 다른 갈래의 봉사자들도 많지 않았다. 별다른 불편함 없이 확실한 체감 속에서 방제작업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12일 토요일은 사정이 달랐다. 작업장마다 포화 상태라고 했다. 모항항은 다른 갈래 자원봉사자 2천 명이 예정되어 있어서 군청 상황실 관계자는 900명을 안내해야 하는 우리 쪽에 난색을 표했다. 전날 작업을 한 태배지역의 '가르미'는 도저히 900명을 끌고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구름포와 태배의 여러 지점으로 분산을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군청 상황실의 제의를 우리는 수용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낙착을 본 곳이 개목항이었다. 개목항은 다행히(?) 다른 갈래 봉사자들이 200명 정도 예정되어 있어서 우리 쪽 900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재활용 방제복과 장화가 태부족이라고 했다. 그 문제 때문에 군청 관계자와 옥신각신하는 상황 속에서, 나는 휴대폰 통화를 계속하며 차 운전을 했다.


▲ 태안성당 주임 신부님의 작업 모습 / 태안성당 최익선 그레고리오 주임 신부님은 지난 1월 30일 부임 이후 재난봉사를 진두 지휘하시다가 11일에는 교구장 주교님과 함께 직접 기름닦기 작업을 했다.  
ⓒ 지요하  재난봉사

그런데 구름포 초입머리를 통과할 때였다. 좁은 길목에서 포터 트럭과 마주치게 되었다. 포터 트럭의 운전자는 60대 중반 정도의 현지 주민으로 보이는 분이었다. 내 오른쪽으로 작은 공간이 있었다. 나는 포터 트럭 운전자에게 내 오른쪽 공간으로 잠시 비켜줄 것을 손짓으로 요구했다. 그러자 그는 나더러 비키라고 했다. 나는 내 뒤를 가리키며 무려 일곱 대의 버스가 내 차를 따르고 있는 상황을 알려주었다.

포터 트럭 운전자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할 수 없이 내 오른쪽 공간으로 차를 넣었다. 나는 곧 차를 움직이려다가 또 한 대의 트럭이 다가와 있는 탓에 좀더 지체를 했다. 그러자 내 오른쪽 옆의 포터 트럭이 후진을 했다. 둔탁한 마찰음이 내 승합차의 옆문 쪽에서 났다.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차에서 내려 찌그러진 옆문을 본 다음 "왜 그렇게 뒤도 안 보고 후진을 하십니까?"라는 말을 했다. 격앙된 언성은 아니었다. 차에서 내려선 포터 트럭 운전자는 노기를 머금은 표정으로 "난 그 차가 빠져나간 줄 알고 후진을 혔는디, 왜 그냥 있는 겨?"라는 말을 했다.

내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아니, 뒤에 차가 있거나 없거나 후진을 하려면 먼저 뒤를 보아야 할 것 아닙니까?"하니, "그 차가 비켜야 할 곳으로 나보고 비키라고 해서 생긴 일이여. 그쪽에서 원인 제공을 헌 일이라구!" 이미 나보다 몇 배나 더 커진 음성이었다.

나는 '원인제공'이라는 말에 주눅이 들었다. 본디 이런 일에 있어서는 마음이 약한 사람이었다. 사소한 교통사고에서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말을 도저히 실체화할 수 없는 위인이었다.

나는 좁은 길에서 길게 늘어서 있는 버스들을 생각해야 했고, 나 때문에 먼 곳에서 온 수많은 천주교 신자 자원봉사자들의 방제작업이 늦어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천주교 신자들을 안내해온 태안성당 총회장 처지임을 생각해야 했고, 내 차의 앞 유리에는 천주교 신자임을 나타내는 표찰이 붙어 있다는 생각도 순간적으로 해야 했다. 
  

▲ 또 하나의 작은 재난 손실 / 좁은 길에서 내 승합차 오른쪽 작은 공간에 비켜섰던 포터 트럭이 뒤를 보지 않고 후진을 한 바람에 내 승합차 옆문이 찌그러지고 말았다.  
ⓒ 지요하  재난봉사

"알았습니다. 제가 양보할 테니 그냥 가십시오" 이 한마디로 모든 상황을 끝내고 차에 오르니, 차 안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본 큰 수녀님과 세 분의 자매님들이 기막혀했다. "아니, 잘못은 자기가 해놓고 왜 저렇게 큰소리를 한대?" 수녀님과 자매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을 들으며, "내가 원인제공을 했으니 내 쪽에서 양보를 해야지요, 뭐"하고, 나는 운전에만 열중했다.

그 후 점심식사를 하고 났을 때 그 포터 트럭의 노인 운전자가 내게로 와서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나는 그가 나를 찾아와 미안하다고 하는 말에 야릇한 감동 같은 것을 느꼈다. 오히려 내가 더 미안하고 고마울 지경이었다. 그가 종합보험에 들어 있다면 내 차에 대해 보험처리를 하도록 좋은 말로 부탁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언뜻 들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개목항의 주민이고 피해 어민이기도 한 그와 불편한 관계가 되고 싶지 않았다. 자칫 다툼이 벌어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앞으로 개목항을 천주교 신자 작업장으로 정하고 종종 찾게 될지도 몰랐다. 내일의 큰 행사(내 회갑기념 신앙문집 3권 봉헌미사와 출판기념회)를 하루 앞둔 시점이었다. 차량 접촉사고가 더욱 기분 나쁜 상황으로 발전한다면 그거야말로 상서롭지 못한 일일 터였다.

나는 그에게 오히려 웃음 지은 얼굴로 "괜찮습니다. 앞으로는 후진을 하실 때 꼭 백미러를 보십시오"라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더욱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는 그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 개목항 방제작업장의 주차장 풍경 / 태안군 소원면 의향리 개목항 방제작업장 주차장은 버스 기사들의 노련함과 세심함이 더욱 필요하다. 버스 기사들을 보노라면 그들 역시 방제작업장의 귀중한 일꾼들임을 절로 실감하게 된다.  
ⓒ 지요하  재난봉사

다음날 나는 가족들을 내 차에 태우고 성당에 갈 때 옆문이 잘 열리지 않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좋은 행사를 치르러 가는 내 꼴이 승합차의 찌그러진 옆문 때문에 조금은 우스꽝스러워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는 14일(월) 오후에 차를 00자동차공업사로 끌고 갔다. 견적을 뽑아보니 38만여 원이 나왔다. 내 차는 종합보험에 '대인'과 '대물'만 들어 있고, '자차'와 '자손'은 들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수리비 38만여 원은 고스란히 내 부담이었다.

나에게서 사고 경위를 들은 00자동차공업사 직원들은 "원인제공 따질 것 없이 후진을 한 차의 잘못"이라고 했다. '부당한 손해'라면서 "사고를 낸 포터 트럭 운전자를 만나 타협을 보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의 바보 같은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에게 나는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시비를 하지 않고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득이 될 것 같아요. 시비를 벌여서 현실적인 손해를 피한다면, 그게 하느님 앞에서는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는 거지요. 이런 경우 피해 어민인 그 포터 트럭 운전자와 시비를 벌이지 않고 내가 현실적인 손해를 감수하는 편이 신앙인의 좀더 올바른 태도일 것 같아요."

이런 내 말에 자동차공업사 직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를 이해하는 듯한 그들의 표정을 보면서 나는 감미롭기도 한 기분을 맛보았다.

그리고 이틀 후인 어제 오전에 나는 00자동차공업사 대표로부터 차를 다 고쳤다는 전화를 받았다. 사장이 직접 내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그는 내게 이런 말도 했다.

"선생님 출판기념회 행사에 가지 못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멀리 출타할 일이 있었습니다. 행사에 참석치 못한 벌로 선생님 책 다섯 질을 사겠습니다. 차 찾으러 오실 때 책 다섯 질만 갖다 주십시오."


2008.04.18 10:09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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