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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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일 연중 제13주간 금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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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vegabond] 쪽지 캡슐

2010-07-02 ㅣ No.56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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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일 연중 제13주간 금요일-마태오 9,9-13

 

http://www.catholic.or.kr/

  

“나를 따라라.”


<세리 마태오를 통해 받는 위안>


    마태오 복음 첫머리에서는 예수님의 족보 전체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 시작이 이렇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이어서 정확하게 사람이름들을 쭉 나열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았다.”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예수님의 직계 조상님들 이름을 나열하고 나서는 마지막에 정확하게 계산까지 하면서 족보 소개를 마무리 합니다.


    “그리하여 이 모든 세대의 수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가 십사 대이고, 다윗부터 바빌론 유배까지가 십사 대이며, 바빌론 유배부터 그리스도까지가 십사 대이다.”


    이런 스타일의 문장을 보면서 느껴지는 것이 없습니까? 정확하게 계산하는 스타일, 아주 세밀하고 꼼꼼한 스타일, 이것은 바로 마태오 복음사가의 전직(前職)을 유추할 수 있게 합니다.


    이런 이유로 마태오 복음사가는 모든 은행원들과 경리직원들의 수호성인이십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마태오는 예수님으로부터 부름받기 전에 직장생활을 했었는데, 세관원이었습니다.


    마태오가 예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는 장면은 공관 복음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시오’하고 부르셨다. 그러자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다.”


    세리였던 마태오의 제자공동체 편입은 하나의 큰 충격이었습니다. 마태오는 열두 제자 가운데 일곱 번째로 부르심을 받았는데, 그 이전에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은 그런대로 봐줄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베드로, 안드레아, 야고보, 요한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이 여섯 명이었습니다. 이들은 다 전직이 어부였고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럭저럭 별 탈 없이 무난한 삶을 살아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일곱 번째로 부르심을 받은 마태오는 먼저 부르심을 받은 여섯 명과는 질적으로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세리였습니다. 세리는 당시 공공연한 죄인으로 취급받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동족들의 피를 빨아먹는 뿐만 아니라 매국노로 낙인찍힌 사람들이었습니다. 창녀와 함께 세리는 죄인들의 대명사였습니다.


    이런 대 죄인이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에 떡 하니 들어온 것입니다. 처음에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이 ‘이상해 졌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 사람은 절대 안 된다’며 펄쩍 뛰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편안한 얼굴로 말씀하십니다.


    “저 사람이 왜 안 된다는 말이냐?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세리 마태오의 지난 삶, 참으로 안된 삶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의 일거수일투족 전체, 그의 삶 자체가 죄였습니다. 그는 눈만 뜨면 하느님께, 동족들에게, 가족들에게 죄를 지었습니다. 밥 먹듯이 습관처럼 죄를 지으며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마음으로는 하루 빨리 이런 죄로부터 벗어나야겠다는 간절한 열망이 있었지만 마음뿐이었습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생각으로는 수백 번도 더 죄의 수렁에서 빠져나와야겠다고 다짐했었지만, 생각과는 달리 몸은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이런 마태오에게 한 줄기 강렬한 구원의 빛이 다가옵니다. 생명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바로 예수님의 부르심이었습니다.


    “나를 따라라.”


    세관 앞에 하릴없이 앉아 의미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던 마태오, ‘과연 이렇게 살아도 되나’, ‘돌파구는 없을까’, 고민을 거듭하던 마태오에게 예수님의 음성이 전달됩니다.


    “나를 따라라.”


    다행히 자신의 영적 상황을 제대로 진단하고 있었던 마태오였습니다. 죄로 인해 비참해진 오늘 자신의 처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던 마태오였습니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 나름대로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었던 마태오였습니다.


    그런 이유로 인해 마태오는 주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처지가 필설로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비관적이었지만, 주님의 따뜻한 음성에 힘을 얻습니다. 마침내 그 오랜 죄의 사슬을 끊고 힘차게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마태오 이상으로 머리칼보다 많은 죄에 시달리며 살아온 우리들입니다. 이토록 부족하고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오늘 다시금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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