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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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 [20joolid] 쪽지 캡슐

2013-09-10 ㅣ No.2705

201395일 목 청명함 (독방)

 

오후 2시경에 김인숙 변호사의 접견이 있었고,

마지막 점검 직전 4시경에 구속노동자 후원회의 이광열 선생님과

두 분의 선생님들이 밀양 구치소에서 화상으로 접견 신청을 했다.

이 선생님의 편지는 옥중에서 여러 차례 받아 보았지만

모습은 화면으로나마 뵙기는 처음이었다.

 

이 선생님은 오늘 접견하신 선생님들 중에 가장 촌스럽고 구수하게 생기셨다.

이분들이 감옥에 수감된 양심수들을 돌보기 위해 이렇게 수고하시는 것을 보면서

머리 숙여 감사 드린다.

서로 친분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모든 사람들에게 잊혀져버리는 수감자들을 기억하고

안부를 묻고 위로와 격려를 해주는 이분들이 하느님의 거룩한 천사들처럼 여겨진다

95년인가에 독일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유학생들이 숙박비를 줄이려고

캠핑카를 빌려서 독일 북부의 항구도시 함부르크(Hamburg)에서 열린 독일 개신교 총회(Kirchentag)에 참석하기 위해 갔었던 적이 있다.

시간도 없고 돈도 여유가 없는 유학생들이 객기 투합해서 먼 여행을 함께 떠났던 것이다. 그 때 세계교회들이 자국을 소개하는 전시장에 한국전시관도 있어 호기심을 가지고 들렸다거기에 전시된 여러 가지 전시물 중에 가장 인상이 깊이 남았었던 것은

죄수들의 독방의 실제 모형이었고 이 한 평 밖에 안 되는 독방에서

30, 40년을 살아온 비전향 장기수들에 대해 소개하는 곳이었다.

나는 그 독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 좁고 어두운 방에 혼자 앉아 이런 곳에서 온 생애를 살아내고 지금도 머리가 허연 백발의 노인이 되어 버린 소위 사상범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내 눈에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교회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잃은 양을 찾아내자고 변죽을 울리지만 정작 붙잡고 강권하는 사람들은 교회 안 나와도 스스로 잘 살아갈 사람들이다.

정작 하나님이 아흔 아홉 마리의 양떼들을 다 팽개치고 찾아 나서려는

한 마리의 잃은 양은 어쩌면 자신이 옳다고 믿는 사상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30년 이상 감옥을 떠나지 못하는 그런 바보, 천치들일 게다.

그리스도인들 중에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30~40년을 감옥에서 살 사람이 몇이나 될까나도 자신이 없다.

아마 나는 감옥을 지키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절을 올리고 나의 배교를 용서해달라고 빌고 나서 감옥을 나올지도 모른다.

자신의 신념과 신앙, 양심과 사상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젊음을 감옥에서 보냈다면

그 색깔이 어떻든 그를 존경할 거다.

파랗든, 빨갛든 긴 고난의 세월 속에서 응결된 진주나 다이아몬드처럼

그 자체로 빛을 내는 불멸의 보석들과도 같다.

 

데자뷰일까?

20년이 지난 이 시점에

내가 독일 함부르크에서 잠시 머물러 묵상했던 같은 크기의 독방에 갇혀있다.

지구의로 보자면 독일의 반대편인 제주교도소 2층 독거 방이다.

 

가끔은 꿈이 현실 같고 현실이 꿈 같을 때가 있다.

잠들기 전이나 깨어날 때 내가 갇혀있는 이 좁은 골방과 철창,

그리고 쪽창 같은 배식구가 꿈속의 잔상은 아닌가 헷갈리기도 한다.

 

인생에 자기 뜻대로 되는 것이 얼마나 될까?

깊은 우물 속 같은 교도소의 독방에 갇혀 있다 해도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 감사하지 않은가?

어두운 방의 창문으로 내다보는 정원의 장미가 타는 듯 빨갛듯이

시간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는 감옥에서 바라보는 생은 더욱 찬란하다

 

***  갇혀 있는 분들을 위하여 기도 드립니다. 

       순교자들께서도 신앙을 위하여 갇혀 계셨고 

       결국은 목숨까지 내어 놓으셨습니다. 

       부디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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