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3일 (목)
(녹) 연중 제7주간 목요일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성지순례ㅣ여행후기

독일 케벨라어 성지 소개(번역)

스크랩 인쇄

김형기 [hyonggikim] 쪽지 캡슐

2009-10-12 ㅣ No.596

1641년 크리스마스 경에 주님께서는 행상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신앙심이 깊은 헨드릭 부스만에게 신비스럽고도 특별한 방법으로 사명을 주셨다. 베조에서 겔던으로 행상을 나가던 길에 늘 하던대로 케벨라어에서 관목으로 덮인 공터에 세워진 십자가-- 지금은 은총의 셩당이 세워져 있는 바로 그곳이다--에 멈춰 서서 잠시 기도를 바치는데  갑자기 십자가 있는 쪽에서 신비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나를 위해서 여기에 경당을 세워라.”라는 목소리를.  처음에는 거의 무시해 버렸으나, (헨드릭은 아마도 이 지역 사람 답게 진지하고 분별력이 있었던 듯하다.) 그는 이 신비로운 목소리를 각기 다른 날에 세 번이나 들었다. 그 당시의 케벨라어 지역 교구의 담당 사제인 요한 슁크 신부의 허락을 받고 그의 도움으로 경당의 건립에 즉시 착수하였다. 1642년 부활절 직후에 헨드릭의 아내인 메켈 쇼제가 어느날 밤에 환시를 보았다. 그녀가 본 광경은 순백색 빛이 비치는 가운데 룩셈부르크의 복되신 모후가 모셔져 있는 경당이었다. 

이날밤의 환시에 대한 이야기는 때마침 당직 근무를 하던 야간 경비병이 부스만의 집에 이상한 빛이 비치는 것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는 사실로 뒷받침이 된다. 동판화인 룩셈부르크의 복되신 모후 그림은 바로 얼마전에 헤시쉐 마을 군인 두명이 그녀에게 팔겠다고 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림이 너무 비싸다고 생각되어서 사지 않았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헨드릭은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준 사명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는 이 동판화를 구해오라고 아내에게 시켰는데, 그녀는 큰 고생을 한 끝에 그림을 사오는 데 성공하였다. 이 그림은 룩셈부르크의 복되신 모후로서 1623년 페스트가 창궐 할 때에 그려져서 “슬퍼하고 고통받는 이들의 위로자”로 경배되었다. 헨드릭은 경당을 세워야겠다는 사명감을 깊이 느꼈다.

1642년6월 1일, 주일에 경당은 완공되었다.  요하네스 슁크 신부는 은총의 성모상으로도 알려져있는 그 그림을 경당 안에 모셨다.  그림은 가로 7.5cm, 세로 11cm크기의 소박한 동판화였는데, 그림에는 “만민에게 기적을 베푸시고 만민에게 경배받으시는 슬퍼하고 고통받는 이들의 위로자이신 공경하올 성모자상”이라는 글이 쓰여져 있었다. 이날 호기심에 찬 많은 이들이 방문했고, 이 놀라운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들판에 번지는 불길처럼 이 지역 전체로 퍼져나가서 케벨라어는 순례지가 되었다.

9월 8일, 복되신 모후의 탄생 축일에, 클레프 근처의 하숨에 살던 라이니어와 마르가리타 반 브뢱 부부가 병든 아들 페테르를 데리고 케벨라어로 순례를 나섰다. 페테르는 장애가 일어난지 5년 정도 되어서 일어날 수도, 걸을 수도 없었다. 그들은 페테르의 병이 낫게 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았다. 마침내 마지막 희망을 갖고 케벨라어의 모후에게 의지하고자 하였다.  그들이 케벨라어를 방문한지 꼭 이틀 후에, 페테르는 아무런 문제 없이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놀라운 사건들로 인해 케벨라어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첫번째 순례 행진이 1643년에 있었는데, 많은 순례자들의 집단이 멀리 에메리히 근처의 리스에서 케벨라어까지 성가를 부르고  기도하며 걸어서 행진하였다.

1643년에 오베르 베투베에 살던 어떤 사람에게 일어난 기적도 전해진다. 휘센의 관리인 루카스 베르회벤이 영주와  보좌관들에게 전하여 알려지게 된 이야기기는 다음과 같다 : 에르트겐 더르크스라는 독신녀가 양쪽 다리에 드러난 상처로 여러해 동안 고생을 하다가 이러한 병을 치료해서 효험을 보게 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발라벤 몸이라는 여인을 찾아가 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케벨라어에서 일어난 기적을 듣고서 그녀는 거기에 가보기도 마음먹었다. 단 두번을 방문하였는데 그녀의 다리는 약물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도 기적적으로 치유되었다. 이미 1643년에, 오늘날 촛불 성당으로 알려진 순례 성당을 짓기 시작했다. 이 성당에서는 각기 다른 많은 순례단들이 봉헌한 큰 초들을 볼 수 있다. 수많은 가족들의 문장이 기나긴 순례의 전통을 증거하고 있다.
 
1654년에 헨드릭 부스만이 세운 소박한 경당은 오늘날 은총의 경당이라고 알려져 있는 6각형의 경당으로개축되었다. 북쪽에는 투시창이 있어서 순례 중에 길거리에서 성상을 바라볼 수 있다. 제단 왼쪽에 있는 등 안에는 세 마리의 비둘기가 가져다 준 접시 하나와 1949년에 루르드에서 알퇴팅을 거쳐서 케벨라에로 운반되어 온 평화의 등이 있다. 세 마리의 비둘기는 세 거룩한 장소, 루르드, 알퇴팅, 그리고 케벨라어를 나타낸다. 적의를 드러내며 등을 노려보는 뱀 한 마리는 뱀의 머리를 바수는 우리의 모후에게 평화를 구하는 기도를 끊임없이 바쳐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복되신 모후 대성당은 1858년과 1864년 사이에 건립되었다.

은총의 경당 맞은편에 있는 사제관은 1647년에 세워졌다. 1889년에 마을 가장자리에 십자가의 길 건립이 시작되었다. 1934년에는 대규모의 보수가 개시되었다. 새로 조성된 마리아 공원에는 슈츠만텔 마돈나라고 불리는 전쟁 기념물이 적합한 장소에 세워져 있다. 과거에도 그러했지만, 오늘날 케벨라에 있는 “슬퍼하고 고통받는 이들의 위로자”의 성지에는 많은 순례자들이 찾아온다. 그들은 멀리서 가까이서, 국내에서 외국에서 찾아온다. 그들은 일상에서의 슬픔과 지상에서의 오랜 여정을 통한 순례길에서의 어려움을 어루만져줄 위로를 구한다. 그들은 우리들에게 주님 자신을 낳아주신 우리들의 어머니에게서 위안을 찾는다.
 


2,004 0

추천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