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 - 몽포르의 성 루도비꼬 마리아 |
---|
이 신심은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확실한 길이다 우리가 주님 대전을 향함은 이미 성령의 부르심입니다. 불확실한 길로 갈까 걱정하는 것은 기우이며 속단입니다.
164. 이 신심은 예수 그리스도께로 가는 안전한 수단이다. 왜냐하면 우리를 영원하신 아버지께로 확실하게 인도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뚜렷한 특성이듯이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로 우리를 안전하고 확실하게 인도하는 것은 마리아의 가장 뚜렷한 특성이기 때문이다. 토마는 고백합니다. 요한복음 20:28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또한 요한은 증언합니다. 요한복음 10장 27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라온다.
28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래서 그들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고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가지 못할 것이다.
29 아버지께서 내게 맡겨주신 것은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아무도 그것을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갈 수 없다.
30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한분이신 주님을 두고 성자의 특성이 아버지께로 확실히 인도하는 것이라면, 성자께서 무슨 정거장이나 길 안내자쯤으로 생각을 하신 모양입니다.
성인말씀이라 대꾸를 주저했으나 죽어라 편식하는 분께 다른 밥상도 내어 드려야지요?
물론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성부께 나아갑니다.
성부께 나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비확실하게 나가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영성에 진보한 이들이 하느님과 일치하는 데 있어 마리아가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일반적으로 전 인류를 위하여 그리고 우리 개개인을 위하여 하느님 앞에서 은총을 얻어내는 마리아께서 각각의 영혼이 하느님과 일치하는 커다란 은총을 얻는 데 있어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은총을 차고 넘치도록 받으셨고 하느님과 그처럼 일치해 계시고 하느님께서 그 안에 강생하기까지 했던 마리아께서 어떤 영혼이 하느님과의 완전한 일치에 이르는데 방해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과연 가능한가? 이는 당시의 개신교신자들을 대상으로한 글일 수 밖에 없습니다. 가톨릭신자들은 방해가 된다고 믿지 않습니다. 다만 일치를 위해 전구해주시기를 빕니다. 모든 성인의 통공 개념을 벗어난 과도한 고백은 오바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들이 아무리 거룩하더라도 하느님과의 일치를 늦출 수 있지만, 내가 앞서 말하였고 결코 싫증나지 않도록 계속 반복하겠지만, 마리아께서는 결코 그렇지 않다. 거룩한 분이 할 일이 없어서 하느님과 일치를 부러 늦추겠습니까? 본당의 신부님조차 우리들 모두가 영원한 생명을 얻어 천국에 가기를 바라십니다. 누구라도 주님의 영을 받은이는 주님의 일을 합니다. 신앙의 길에 브레이크도 밟고 악세레이타도 누르고 그렇습니까? 번역의 오류인지 논리가 서질 않습니다. 논리가 아니니 묵상해라? 그럼 혼자 묵상을 하시면됩니다. 등짝에 붙여 남들에게 싫증나게 보기를 강요하지 마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완덕을 본받는 데 성공한 영혼이 거의 없는 이유 중 한 가지는 성자의 어머니이시고 성령의 정배이신 마리아가 그들의 마음속에 충분히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잘 익고 모양이 좋은 열매를 얻고자 하는 사람은 그것을 맺을 수 있는 나무를 가져야만 하고, 생명의 열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자 하는 사람은 생명의 열매를 맺는 나무를 가져야 하는데 그분이 바로 마리아이시다. 이런 것이 오바의 전형입니다. 보십시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교회나 개개의 신자에게 구체적이시며 명료합니다. 이와 같이 교회의 역사와 주님의 구원사 역시 희미하지 않은 분명한 역사입니다. 이는 성령이 우리와 함께하심입니다. 사도행전13'2 그들이 주님께 예배를 드리며 단식하고 있을 때에 성령께서 이르셨다. “내가 일을 맡기려고 바르나바와 사울을 불렀으니, 나를 위하여 그 일을 하게 그 사람들을 따로 세워라.”
사도행전 16:6
성령께서 아시아에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막으셨으므로, 그들은 프리기아와 갈라티아 지방을 가로질러 갔다.
자기 자신 안에 성령의 역동적인 작용을 가지고자 하는 사람은 성령의 충실하고 갈라질 수 없는 정배이시고, 우리가 이미 보았던 것처럼, 그분을 기름지게 하고 풍성하게 하시는 마리아를 모셔야만 한다. 성령이 충만한 사도가 마리아를 모시고 사도역을 한 예는 성경에 없습니다. 이 역시 위에서와 같이 성부에게 가려면 성자를. 성자에게 가려면 마리아를 통해야 확실하다는 길안내 방식입니다. 우리가 주님 대전에 나가는 것 자체가 주님의 부르심입니다. 성령께서는 낮잠을 주무시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1:2
예수님께서 당신이 뽑으신 사도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분부를 내리시고 나서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다 다루었습니다.
------------------------------
늦 저녁을 좀 먹어야 하겟습니다.
누군 슬쩍 손가락으로 주욱~ 긁어서 근력으로 쓰고 누군 짚어가며 글력으로 써야한다니 이거 엄청 불공평입니다.
나머지 부분은 형제님들께 코멘트를 부탁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