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은, 특히 몽포르의 루도비코, 끌레르보의 베르나르도(+1153), 프란치스카인 시에나의 베르나르디노(+1444), 알퐁소 리구오리(+1787) 그리고 이후 프랭크 더프 등의 주장에서 보듯이 “성자의 구원 은총은 성모님만을 통해서 주어진다, 성령은 성모님만을 통해서 은총을 주시고 활동하신다”, 한마디로 “우리의 구속을 위해선 성모님의 외투가 필수적이다”는 식의 하느님 외에 하느님의 활동에 제한을 가할 수 있는 또 다른 존재를 인정한 성모과공 신심이 지배하던 시대라면 현대는 “우리의 유일한 신앙 대상, 구속주는 예수님뿐이시다”는 진리를 재확인한 “유일신 신심 시대”다.
피조물이신 성모님을 하느님께 제한을 가하실 수 있는 분으로 신봉하는 신심은 출발부터 유일신 신앙 정의에 모순되는 것으로 참다운 기독교 신앙이라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유일신 신심이란 “하느님은 제약 받는 존재가 아니다”라는 명제 위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모님을 하느님 활동을 간섭하실 수 있는 신적 존재로 간주하는 루도비꼬 등의 성모과공 신심에 기반한 주장은 기독교의 핵심인 “예수님 유일신, 유일 구속자” 신앙에 정면 배치되기 때문에 참된 기독교 신심이라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에 와서도 중세시대적 성모과공 신심에 함몰하여 기독교의 근본 진리를 께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래의 글을 읽고서 현대 가톨릭 교회가 참다운 기독교 신앙에 대해 어떠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지 께닫기를 바란다.
‘예수님이 우리의 유일한 참 구세주임을 께닫는 것이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게시번호:108461)
”예수님은 참으로 나의 유일한 구세주”임을 확고히 절실히 께닫는 것, “예수님은 참으로 하느님이시고, 인간이시다는 것”, “예수님은 본래 하느님이시지만 죄에 빠진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이 되어 오셨고,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는 살아있는 신앙적 체험을 하는 것이 오늘날의 그리스도 신앙에서 절실히 요구 된다고 교황청 설교가이시며, 카푸친 수도회 사제이신 칸타라메사 신부님은 말씀하셨다.
“오늘날의 예수께 대한 신앙”이라는 주제 아래 베네딕토 16세와 교황청 관계자들을 위해 해주신 일련의 대림절 강론들 중 하나에서 신부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와 인간성을 부정했던 도세티스트 이단들에게 “이 세상의 유일한 희망을 빼앗지 말라” 외쳤던 터투리안처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신 예수님 없이 살아가려는 사람들을 향해 같은 외침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우리 주 그리스도 (루가 복음 2장 10-12절)께 구세주라는 칭호가 중요성을 띄고 불려지기 시작한 것은 이방인들에게 기독교가 전파되기 시작한 때 부터로 신약성서에는 사도들이 당시 예수님을 구세주로 불렀음을 증언하고 있다고 신부님은 말씀하셨다: 마태오는 예수란 단어의 의미는 “하느님은 구원하신다”는 뜻임을 강조하고자 했으며(마태오 복음 1장 21절), 바오로는 예수님을 “구원자”로 불렀다(필립보서 3장 20절). 또 베드로는 사도행전 4장 12절에서 유일한 구세주는 예수님이시며, “그 외의 어느 누구로부터도 구원은 주어지지않는다”(이분(예수님)에게 힘입지 않고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이름은 이 이름밖에는 없습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고 하셨고, 요한은 사마리아인들로 하여금 “우리는 그 분이야말로 참으로 이 세상의 구세주이심을 직접 들어왔으며 또 이를 알고 있다(요한 복음 4장 42절)”고 신앙 고백케 했다.
이처럼 예수님은 나의 유일한 구세주라는 살아있는 체험을 하는 것이 그리스도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이 점이 다른 세속적 세계관, 인간적 종교와 구별되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으로 이를 통해 우리 기독교인들은 모든 것에서 해방된 완전한 구원을 성취할 수 있다고 신부님은 강조하시며, 이 같은 예수님 유일 구세주론에 바탕을 둔 기독교 신앙의 특성을 아래와 같이 말씀하시면서, 바로 그 같은 이유로 기독교는 다른 종교, 사조들과는 달리 우리에게 진정한 해방과 구원을 주는 참된 종교라고 결론지으셨다:
첫째, 기독교 신앙 특히 가톨릭 신앙은 이 세상의 존재 근거를 확실히 제시해 준다. 인간과 우주의 존재 근거로 삼위일체 하느님을 제시함으로서 세계관에 일목요연한 논리성을 제공하여 인간과 자연의 기원, 목적, 역사에 대한 의문에 참된 해답을 제시한다.
둘째 눈에 보이는 현상계만을 인정하는 유한한 공간 개념에 기반하여 설파되는 뉴 에이지, 무신론적 과학 사상과는 달리 기독교 신앙은 공간의 제약에서 인간을 해방시킨다.
“말씀(성자 하느님)이 육체를 취하신 사람이 되시어 우리 사이에 거하셨다!(요한 복음 1장 14절)”는 복음 말씀대로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으시는 무한하신 분인 성자 하느님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상에 오셨고 우리가 어디로 가든 항상 우리에게 오신다. 예수님의 육화는 세기를 두고 성체성사를 통해 계속 새롭게 일어나며, 이처럼 언제 어데서나 계시는(omnipresent) 예수님을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 마음에 모시고 그 분과 일체가 됨으로서 우리는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세계의 중심에 있음을 느낀다. 이러한 예수님과 함께 있음으로서 우리는 평화를 느낀다.
셋째 기독교 신앙은 우리가 예수님에 의해 구원받아 영생을 누릴 수 있다고 가르침으로서 시간의 제약, 특히 죽음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다.
신부님께선 “우리는 매일 매일 불신의 늪에 빠지는, 죄에 빠지고, 미지근한 믿음, 낙담, 불신, 의심, 타성의 늪에 빠지는 경험을 한다. 신앙 자체는 벼랑 끝을 걸어가는 것과 같아 언제든 균형을 잃고 공허함에 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선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도움을 청할 때 언제든 손을 뻩쳐 우리를 나락으로부터 들어 올리실 준비가 되어있으시며,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커다란 위안이 된다” 말씀하시며 좌절하지 말고 굳건히 예수님께 대한 살아있는 신앙을 견지할 것을 촉구하셨다.
아래는 위 같은 내용의 신부님 강론 말씀 중 주요 부분 요약이다:
구원은 죄의 용서뿐 아니라 바오로가 말했듯이 우리 육체의 궁극적 구원도 포함한다(필립보서 3장 20절). 예수께서 이룩해 내신 구원은 소극적으로는 죄와 악의 힘으로 부터의 해방에 있지만, 적극적으로는 새 생명의 선물, 하느님 자녀가 됨으로서 누릴 수 있는 자유의 선물, 성령의 선물, 영원한 삶의 희망의 선물을 주심을 의미한다.
또 예수님 안에서 얻는 구원은 초기 기독교 신자들에만 해당되는 것이거나 계시록을 통해 믿는 한갖 문자적 진리가 아니라 우리 삶에서 체험되며 우리 신앙 안에서 즐거히 고백하는 가운데 실제로 이루어지는 성격의 것이다.
하느님 말씀과 성사 생활(특히 성체 성사) 덕택으로 우리 신자들은 그리스도안에서 이루어진 구원의 신비가운데 살고 있음을 느낀다: 구원은 해방, 께우쳐 비침, (악이나 죄에서) 건저냄, 신성화등의 양식으로 서서히 드러난다. 이러한 구원은 원초적이며 평화스러운 것으로 복음 저자들은 구태여 이를 증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예수님과 접하니 우리가 신성화 되었다, 그러니 예수님은 하느님이 틀림없다. 이같은 사실을 아타나시우스는 “ 예수님이 취하신 육체가 실제 인간의 육체가 아니라면 우리는 죄와 저주에서 해방되지 못할 것이며, 육체를 취하신 예수님이 아버지 하느님 성부와 같은 하느님이 아니라면 우리 인간은 신성화 되지 못할 것이다”고 말했다.
그리스도의 구원론은 인간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인간학에 의해 다양한 견해들이 제시될 수 있는데 교부시대도 마찬가지였다.
인간 이해 및 이와 관련한 그리스도의 구원 이해는 3가지 순서로 전개된다. 첫째 인간은 무엇이며 그의 악한 성품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두번째는 이러한 인간을 위해 어떠한 구원이 필요한가? 마지막 세번째는 이러한 구원을 성취하기 위해 구원자는 어떠한 성격의 존재여야 하는가?이다.
프라톤 사상이 지배적이엇던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경우 인간의 악한 부분은 육체라 간주됬다. 그 결과 이 학파는 하느님 말씀 (예수님)이 육체를 취하셔서 육체를 타락으로부터 구하고 이를 신성하게 하신 순간인 그리스도의 인간되심, 즉 육화를 강조했다. 이들 학파에 속한 라오디체아 출신 아포리나리스는 심지어 인간 영혼은 (악하지 않아)구원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예수님은 인간 영혼을 취하지 않으셨고 단지 영원한 로고스 가 비추이신 분이라고 말했다. 즉 그리스도에 있어서는 인격에 내재해 있는 로고스가 이성적 영을 대신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이 지배했던 안티옥파에서는 인간의 악은 영혼, 특히 인간의 반역적인 의지에서 발견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이 학파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간성 구현, 그의 죽기까지의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순종과 함께 이루어진 부활 신비, 또 이러한 부활을 통한 그리스도의 인간 구원, 특히 영혼 구원을 주장한다. 칼세톤 교회는 위의 두 학설, 즉 인간의, 육체, 영혼 한 면만의 구원을 주장한 두 학설들을 종합하여 그리스도와 그의 구원에 관한 총체적인 이론을 이루어 내었다.
오늘날 역시 우리는 위에서 처럼 다음의 3가지 질문에 대해 자문해 보아야 한다: 즉 오늘날 인간과 인간에 악에 관해 어떠한 중심 생각들이 있는가? 오늘날의 인간에는 어떠한 구원이 필요한가? 오늘날 제시되는 여러 구원론들에 그리스도는 어떻게 답하며 선포되어야 하는가?
먼저 오늘날 그리스도교 외에 인간과 인간의 악으로부터의 구원에 관해 말하는 중심되는 생각들에는 어떠한 것이 있는가에 관해서이다. 이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말할 수 있는데 하나는 뉴 에이지이고 다른 하나는 무신론적 과학 사상이다.
뉴 에이지는 구원은 인간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 자신의 내부에서 스스로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사조는 구원이란 인간이 자기 자신을 전 우주의 에너지, 생명과 조화를 이루어내는 것이라 말한다. 따라서 이 사조에서는 구세주가 필요 없으며 기껐해야 자아 실현의 길을 제시해주는 사부가 필요할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뉴에지 사상은 “모든 인간이 죄를 지은 상태에 있고 하느님의 영광이 박탈당한 상태에 있어 스스로는 구원 받을 수 없고,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에 의해서만 구원받고 의화될 수 있다”는 바오로가 확신에 차 말한 기독교의 원초적 믿음에 비추어 보아 허황된 것이므로 더 이상 언급할 가치가 없다.
두번째는 무신론적 과학 사상인데 프랑스 생물학자 쟈크 모느드(Jacques Monod )가 “우연과 필연(Chance and Necessity)”라는 책을 써 이를 널리 주창하고 있다. 그는 “인간은 우주 안에서 우연히 생겨났으며 그가 생겨난 우주의 광활함 가운데 홀로 내던져있음을 드디어 알게 되었다. 그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그의 이 세상에서의 의무에 관해선 아무데에도 쓰여져 있는 것이 없다. 우리의 존재, 운명은 우연한 것이다”고 말하여 무신론적 유물론적 과학 지상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인간 구원 문제는 아예 제기되지도 않으며 이 같은 문제를 제기하는 자체를 불확실성 가운데 우연과 필연의 법칙아래 계속 진행하는 우주에서 객관성이나 목적을 찾으려는 물활론적 사고 방식의 유산으로 간주한다. 유일한 구원은 과학에 의해 주어지며 만물이 어떠한가에 대한 지식에 있지 자기 위안적인 공상적 생각에 있지않다고 말하며 유물론적 과학 지상주의를 내세우며 기독교적 가르침을 공상적인 것이라 배척한다.
”우리의 운명은 우연적인 것이다. 생명은 생명없는 여러 물질들의 우연한 조합에 의해 생겼다” 등등의 무신론적 과학주의 주장이 일리있다 치자. 그렇다면 이러한 우연적 현상들을 가능케 한 이러한 물질들은 누가 이 우주에 가져다 놓았나? 누가 만들었나. 여기에 대해서 과거로부터 이제까지 어떠한 과학자도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즉 우주와 인간의 존재 근거에 대해 근본적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무신론적 과학 사상은 물질계의 현상만을 설명할 수 있을 뿐이지 이 현상의 존재 근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우연”을 존재 근거라고 억지를 쓰지만 이는 바로 위에서 본 것처럼 억지일 뿐이지 타당한 근거가 못되며 모든 존재들의 존재 근거인 “신”을 “우연”이라는 말로 대치했을 뿐으로 그 주장 근거가 타당성이 없다.
취약한 근거 위에 세워진 현대의 위와 같은 인간관과 구원관에 기독교 신앙 특히 가톨릭 신앙은 어떠한 해답을 제시해 주나?
첫째 이 세상의 존재 근거를 확실히 제시해 준다. 인간과 우주의 존재 근거로 삼위일체 하느님을 제시함으로서 세계관에 일목요연한 논리성을 제공하여 인간과 자연의 기원, 목적, 역사에 대한 의문에 참된 해답을 제시한다.
둘째 눈에 보이는 현상계만을 인정하는 유한한 공간 개념에 기반하여 설파되는 뉴 에이지, 무신론적 과학 사상과는 달리 기독교 신앙은 공간의 제약에서 인간을 해방시킨다.
“말씀(성자 하느님)이 육체를 취하신 사람이 되시어 우리 사이에 거하셨다!(요한 복음 1장 14절)”는 복음 말씀대로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으시는 무한하신 분인 하느님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상에 오셨고 우리가 어디로 가든 항상 우리에게 오신다. 예수님의 육화는 세기를 두고 성체성사를 통해 계속 새롭게 일어난다. 언제 어데서나 계시는(omnipresent)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모시고 그 분과 일체가 됨으로서 우리는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세계의 중심에 있음을 느낀다. 이러한 예수님과 함께 있음으로서 우리는 평화를 느낀다.
셋째 기독교 신앙은 시간의 제약, 특히 죽음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다.
19세기 스페인 시인 구스타보 아돌포 베커는 죽을 운명을 타고난 유한한 인간의 실존 상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읍조렸다:---우연히 세상을 살아가는 나는 언제 내가 태어났는지 죽으면 어데로 가는지 생각없이 살아간다.
이처럼 뉴 에이지나 무신론적 과학 사상 등을 신봉하는 현세주의자들은 죽음 앞에서 절망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 신자들은 어뗘한가? 신자들도 죽음이 있음을 믿는다. 그러나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이를 정복하셨음을 알고 있다. 어거스틴은 죽음을 “더 이상 건너갈 필요가 없는 곳으로 건너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St. Augustine, "Trattati su Giovanni," 55, 1.).
예수님을 믿어 그에 의해 구원 받고, 그와 함께 살고 있는 우리는 죽음에서 해방된다. 영지주의, 기타 무신론적 과학 지상주의자들을 포함 이 세상이 전부인 사람들과는 달리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바오로 사도는 “한 사람이 모든 사람들을 위해 죽었다 (고린토 후서 5장 14절), 그는 우리 각자들 위해 죽음을 맛 보았다(히브리서 2장 9절):고 말했다. 요한도 또한 “나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죽더라도 살 것이다”(요한 복음 11장 25절)는 예수님 말씀을 적었다.
이처럼 기독교는 죽음의 공포에 기반하지 않고 예수님의 죽음에 기반한다, 예수님은 죽음의 공포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오셨다. 하느님의 아들께선 “죽음의 힘을 가진 자 즉 악을 멸하고 죽음의 공포 때문에 한평생 종살이에 얽매여 있는 이들을 해방시키기 위해(히브리서 2장 14-15절)” 우리처럼 살과 피를 취하셨다.
이 같은 체험을 바오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을 구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 이들 중 나는 가장 큰 죄인이다(티모데오 전서 1장 15절)” 라는 말로 표현하셨으며, 베드로가 호수에 빠진 일화는 이 같은 체험의 대표적 일화라고 신부님은 말씀하셨다.(예수님이 하느님이시라는 믿음이 확고하지 못했던 베드로는 호수에 빠졌다. 그러나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즉시 회복하자 그는 호수를 걸어 나올 수 있었다.)
우리 역시 매일 매일 불신의 늪에 빠지는, 죄에 빠지고, 미지근한 믿음, 낙담, 불신, 의심, 타성의 늪에 빠지는 경험을 한다. 신앙 자체는 벼랑 끝을 걸어가는 것과 같아 언제든 균형을 잃고 공허함에 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선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도움을 청할 때 언제든 손을 뻩쳐 우리를 나락으로부터 들어 올리실 준비가 되어있으시며,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커다란 위안이 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와 인간성을 부정했던 도세티스트 이단들에게 “이 세상의 유일한 희망을 빼앗지 말라” 외쳤던 터투리안처럼, 예수님 없이 살아가려는 사람들을 향해 같은 외침을 해야 한다고 신부님은 말씀하시며 오늘날에 있어서도 여전히 세계의 유일한 희망이신 예수님께 대한 살아있는 체험적 신앙을 새롭게 할 것을 촉구하시며 강론을 마치셨다.(바티칸 시, 12월 23일, 2005제니트 통신)
Father Cantalamessa's 4th Advent Sermon
The Experience of the Salvation of Christ Today
VATICAN CITY, DEC. 23, 2005 (Zenit.org).- Here is a translation of the Advent sermon delivered today by Capuchin Father Raniero Cantalamessa, preacher to the Pontifical Household, in the presence of Benedict XVI and members of the Roman Curia.
The sermon was the fourth and last in a series. Father Cantalamessa offered a series of reflections on the theme "'For What We Preach Is Not Ourselves but Jesus Christ as Lord' (2 Corinthians 4:5): Faith in Christ Today."
* * *
"To You Is Born This Day a Savior"
The Experience of the Salvation of Christ Today
1. What Savior for man?
In one of the last Christmases, I was attending a midnight Mass presided over by the Pope in St. Peter's. The moment came to sing the Calends:
"Many centuries since the creation of the world … 13 centuries after the march out of Egypt … In the year 752 of the foundation of Rome … In the year 42 of the empire of Caesar Augustus, Jesus Christ, eternal God and Son of the eternal father, having been conceived by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after nine months, was born in Bethlehem of Judea of the virgin Mary, made man."
Having come to these last words I experienced what is called "the anointing of faith": a sudden interior clarity which makes one say to oneself: "It is true! It is all true! They are not just words. God has truly come to our earth." I felt a total upheaval, and could only say: "Thank you, Most Holy Trinity, and thank you, also, holy Mother of God!" I would like to share this profound certainty with you, venerable fathers and brothers, during this last meditation the theme of which is the experience of the salvation of Christ today.
Appearing to the shepherds on the night of Christmas, the angel said to them: "I bring you good news of a great joy which will come to all the people; for to you is born this day in the city of David a Savior, who is Christ the Lord" (Luke 2:10-12). The title of Savior was not attributed to Jesus during his life. There was no need of it, its contents already being expressed, for a Jew, by the title Messiah. But when the Christian faith appeared in the pagan world, the title acquired decisive importance, in part precisely to oppose the custom of calling the emperor by it as well as some saving divinities, such as Aesculapius.
It was found already in the New Testament in the Apostles' lifetime. Matthew is concerned to emphasize that the name "Jesus" means, precisely, "God saves" (Matthew 1:21). Paul already called Jesus "Savior" (Philippians 3:20); in the Acts of the Apostles, Peter specifies that he is the only Savior, "and there is salvation in no one else" (Acts 4:12), and John puts on the Samaritans' lips the solemn profession of faith: "We have heard for ourselves, and we know that this is indeed the savior of the world" (John 4:42).
The content of this salvation consists above all but not only in the remission of sins. For Paul it also embraces the final redemption of our bodies (Philippians 3:20). The salvation wrought by Christ has a negative aspect that consists in the liberation from sin and the forces of evil, and a positive aspect which consists in the gift of the new life, of the freedom of the children of God, of the Holy Spirit and of the hope of eternal life.
Salvation in Christ was not, however, for the first Christian generations, only a truth believed from Revelation; it was above all a reality experienced in life and joyfully proclaimed in worship. Thanks to the word of God and to the sacramental life, believers feel they are living in the mystery of salvation realized in Christ: salvation that is configured, little by little, as liberation, illumination, rescue, divinization, etc. It is a primordial and peaceful event which authors almost never feel the need to demonstrate.
In this double dimension -- of revealed truth and lived experience -- the idea of salvation played a decisive part in leading the Church to the full truth about Jesus Christ. Soteriology was the plow that made the furrow for Christology; it was the propeller that pulls the plane or drives the ship. The great dogmatic definitions of the Councils were attained by making use of the experience of salvation that believers had in Christ. His contact, they said, divinizes us; therefore, he must be God himself. "We would not be liberated from sin and damnation," wrote Athanasius, "if the flesh the Word assumed was not human by nature; nor would man be divinized if the Word that was made flesh was not of the same nature of the Father."[1]
The relationship between Christology and soteriology is mediated, in the patristic age, by anthropology, so that it must be said that to a different understanding of man corresponds always a different presentation of Christ's salvation. The process develops through three important questions. First: What is man and where does his evil reside? Second question: What kind of salvation is necessary for such a man? Third question: What must the Savior be like to realize such salvation? Based on the different answers given to these questions we see a different understanding being delineated of the person of Christ and of his salvation.
In the Alexandrian school, for example, where the Platonic view prevails, the evil part of man most in need of salvation is his flesh; hence the emphasis on the Incarnation as the moment when, assuming flesh, the Word of God liberates it from corruption and divinizes it. In this line, one of them, Apollinaris of Laodicea, will go so far as to affirm that the Word did not assume a human soul, because the soul has no need to be saved, itself being a spark of the eternal Logos. In Christ the rational soul is substituted by the Logos in person; there is no need for a spark of the Logos where the whole Logos is found.
In the Antiochian school, where, instead, Aristotle's thought prevails, or in any case a less Platonic view, man's evil is seen, on the contrary, precisely in his soul and, in particular, in his rebellious will. Hence the insistence on the full humanity of Christ and his paschal mystery, through which, with his obedience unto death, Christ saves man. Synthesizing these two instances, the Church in Chalcedon will attain a complete idea of Christ and his salvation.
The Christian faith does not limit itself however to respond to the expectations of salvation of the environment in which it operates, but it creates and expands all expectations. Thus we see that to the Platonic and Gnostic dogma of salvation "through the flesh," the Church opposes with firmness the dogma of salvation "from the flesh," preaching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to a life beyond the tomb infinitely weaker than the present life and devoured by nostalgia of it, deprived as it is of an objective and center of attraction, the Christian faith opposes the idea of a future life infinitely more full and everlasting in the vision of God.
2. Is there still need of a Savior?
In the first meditation I mentioned that, in regard to faith in Christ, in many aspects we find ourselves today close to the situation of the origins and we can learn from that time how to re-evangelize the world which is again, to a large extent, pagan. We must also ask ourselves today those three questions: What idea is there today about man and his evil? What kind of salvation is needed for such a man? How should Christ be announced to respond to such expectations of salvation?
Simplifying greatly, as is necessary in a meditation, we can identify two important positions in regard to salvation outside of the Christian faith: that of religions and that of science.
For the so-called new religions, which share the common background of the New Age movement, salvation does not come from outside, but is potentially within man himself. It consists in being attuned to or in rhythm with the energy and life of the whole cosmos. There is no need therefore for a savior but, at most, of teachers who show the way to self-realization. I will not comment on this position because it was refuted once and for all by Paul's affirmation on which we commented last time. "All have sinned and are deprived of the glory of God, but have been justified by faith in Christ."
Let us reflect instead on the challenge to faith in general and the Christian faith in particular from nonbelieving science. The atheist version most in fashion at present is that which is called the scientific, which French biologist Jacques Monod made popular in his book "Chance and Necessity." "The old alliance is infringed," concludes the author, "man finally knows that he is alone in the immensity of the universe from which he arose by chance. His duty, as his destiny, is nowhere written. Our number has come up randomly."
In this view the problem of salvation is not even posed, regarded as it is as a residue of that "animist" mentality, as the author calls it, which seeks to see objectives and aims in a universe which advances instead in obscurity, directed only by chance and necessity. The only salvation is that offered by science and consists in knowledge of how things are, without self-consoling illusions. "Modern societies," he writes, "are built on science. To it they owe their wealth, power and the certainty that even greater wealth and power will one day be accessible to man if he wants it. … Furnished with all power, and enjoying all the riches that science offers them, our societies still endeavor to live and teach systems of values, already undermined at the base by this same science."[2]
My intention is not to discuss these theories, but only to give an idea of the cultural context in which we are called at present to announce the salvation of Christ. We must, however, make one observation. Let us admit that "our number has come up randomly," that life is the result of a chance combination of inanimate elements. But to get the numbers from the roulette, someone has to have put them there. Who has provided by chance the ingredients with which to work? It is an old and trivial observation, and one which no scientist to date has been able to give an answer, except for the quick one that it's not something brought into question.
One thing is certain and incontrovertible: The existence of the universe and man is not explained on its own. We can give up trying to find a further explanation beyond that which science can give, but that's not to say that everything has been explained without the hypothesis of God. At most, chance explains the how, not the what, of the universe. It explains that it is as it is, but not the fact itself that it exists. Nonbelieving science does not eliminate the mystery; it only changes its name: Instead of God it calls it chance.
I believe that the most significant denial of Monod's thesis has come precisely from that science to which, according to him, humanity should entrust its own destiny. The scientists themselves are the ones who, in fact, recognize today that science alone is unable to answer all the questions and needs of man, and seek dialogue with philosophy and religion, the "systems of values" which Monod regards as irreducible antagonists of science. We see it, moreover, with our own eyes: The extraordinary successes of science and technology are not followed necessarily by more free and peaceful human coexistence in our planet.
In my opinion, Monod's book demonstrates that when a scientist wants to draw philosophic conclusions from his scientific analyses -- whether these are of biology or astrophysics -- the results are no better than when philosophers sought to draw scientific conclusions from their philosophic analyses.
3. Christ saves us from space
How can we announce in a significant way the salvation of Christ in this new cultural context? Space and time, the two coordinates within which man's life on earth develops, have undergone such a sudden expansion and acceleration that even the believer suffers vertigo. The "seven heavens" of ancient man, each one slightly above the other, have become, meanwhile, 100 million galaxies, each one made up of 100 million stars, distant from one another by thousands of millions of light-years; the Bible's 4,000 years since the creation of the world have been transformed into 14 billion years …
I believe that faith in Christ not only resists this clash, but that it offers the one who believes in him the possibility to feel at home in the expanded dimensions of the universe, free and joyful "as a child in his mother's arms."
Faith in Christ saves us above all from the immensity of space. We live in a universe the magnitude of which we can no longer imagine or quantify, the expansion of which continues without interruption, until it is lost in the infinite. A universe, science tells us, sovereignly ignorant and indifferent to what happens on earth.
But this is not what most influences the consciences of ordinary people. It's a fact that on the earth itself, with the event of mass communication, space has expanded all of a sudden around man, making him feel even smaller and insignificant, as a disoriented actor on a huge stage.
Movies, television and the Internet place before our eyes at every moment what we could be and are not, what others do and we do not do, awakening a sensation of resigned frustration and passive acceptance of one's own fortune or rather, on the contrary, an obsessive need to emerge from anonymity and call attention to oneself. In the first case one lives in the reflection of the life of another and, as a person, becomes an admirer or fan of someone; in the second case, life is reduced to a career.
Faith in Christ frees us from the need to make our way, to avoid our limitations at all costs and to be someone; it also frees us from envy of the great, reconciles us with ourselves and with our place in life, gives us the possibility of being happy and of being totally fulfilled where we are. "And the Word became flesh and dwelt among us!" (John 1:14). God, the infinite, came and comes continually to you, where you are. The coming of Christ in the incarnation, kept alive through the centuries by the Eucharist, makes every place the first place. With Christ in one's heart one feels oneself in the center of the world, including in the earth's most remote village.
This explains why so many believers, men and women, can live ignored by all, carry out the most humble jobs in the world or even be enclosed in a cloister and feel themselves, in this situation, the happiest and most fulfilled persons on earth. One of these cloistered souls, Blessed Mary of Jesus Crucified, known by the name "the Little Arab" because of her Palestinian origin and slight stature, on returning to her place after having received Communion, could be heard exclaiming to herself in a low voice: "Now I have everything, I have everything."
Today the fact that Christ did not come in splendor, power and majesty, but little and poor acquires a new significance for us; that he chose a "humble maiden" as his Mother, that he did not live in a metropolis of the period, Rome, Alexandria or even Jerusalem, but rather in a remote village of Galilee, exercising the humble profession of carpenter. At that moment the true center of the world was not in Rome or Jerusalem but in Bethlehem, "the smallest village of Judea," and after it in Nazareth, the village of which it was said that "nothing good could come from it."
What we say about society in general is even truer for us, people of the Church. The certainty that Christ is with us, wherever we are, frees us from the obsessive need to go higher, to hold the highest posts. No one can say that he is altogether exempt from feeling such natural sentiments and desires within himself -- not in the least, preachers! -- but the thought of Christ helps us at least to recognize them and to struggle against them so that they will never become the dominant motive of our action. The wonderful result of this is peace.
4. Christ saves us from time
The second realm in which we experience the salvation of Christ is that of time. From this point of view our situation has not changed much from that of men at the time of the Apostles. The problem is always the same and it is called death. The salvation of Christ is compared by Peter to that of Noah of the deluge that "engulfed all" (1 Peter 3:20 ff.) and it is because of this that he is represented among the mosaics of this chapel, as a moment of the history of salvation. But there is always a deluge in the world: that of time which, like water, submerges everything and sweeps all away, one generation after another.
The 19th-century Spanish poet Gustavo Adolfo Bécquer expressed admirably the perception that man has of himself facing death.
"Gigantic wave that the wind / curls and pushes in the sea, / And rolls on and passes, and knows not / what beach it seeks.
"Light that shines in trembling rings, close to expiring, / knowing not which will be the last to shine.
"I am he, who by chance go through the world, thinking not from whence I come or whither my steps will take me."[3]
At present there are renowned psychologists who see in the rejection of death the true spring of all human action, including the sexual instinct, placed by Freud as the basis of everything, it would be no more than one of the manifestations.[4] Biblical man was consoled by the certainty of surviving in his offspring; pagan man by surviving in fame: "Non omnis moriar (I will not die completely)," said Horace. Referring to his poetry, he said: "Exegi monumentum aere perennius (I have built a monument more lasting than bronze)."
Today appeal is made rather to survival of the species. "The survival of each individual," writes Monod, "has no importance whatsoever for the affirmation of a specific species; the latter is entrusted to the capacity to give origin to abundant offspring capable in turn of surviving and reproducing themselves."[5] A variant of the Marxist view -- based in this occasion on biology instead of dialectical materialism, but in each case the hope of surviving in the species -- has revealed itself insufficient to placate man's anguish in the face of his own death.
The philosopher Miguel de Unamuno -- who was also a "secular" thinker -- answered a friend, who reproached him as being proud and presumptuous in his search for eternity, in these terms: "I do not say that we deserve a beyond or that logic show it to us; I say that I need it, whether or not I deserve it, and nothing more. I say that what happens does not satisfy me, that I thirst for eternity, and that without it nothing matters to me. Without it there is no joy in living. … It is very easy to say: 'We must live!' 'We must be content with life!' And those of us who are not content with it?"[6] It is not the one who desires eternity, said the same thinker, who shows no love for life, but the one who does not desire it, from the moment he resigns himself so easily to the thought that it must end.
What does the Christian faith say about all this? Something simple and grandiose: that death exists, that it is our greatest problem, but that Christ has conquered death! Human death is no longer the same as before; a decisive event has intervened. It has lost its sting, as a serpent whose venom is now only able to lull the victim for an hour, but not kill it. Death is no longer a wall before which everything breaks; it is a step, that is, an Easter. It is a "passing to what does not pass," said Augustine.[7]
Jesus in fact -- and here is the great Christian announcement -- did not die just for himself, he did not just leave us an example of heroic death, as Socrates. He did something very different: "One died for all" (2 Corinthians 5:14), exclaims St. Paul, and also: "He tasted death for every one" (Hebrews 2:9). "Whoever believes in me, even if he dies, will live" (John 11:25). Extraordinary affirmations that do not make us cry out in joy only because we do not take them seriously enough, and to the letter, as we should.
Christianity does not gain ground in consciences with the fear of death; it gains ground with the death of Christ. Jesus came to liberate men from fear of death, not to increase it. The Son of God assumed flesh and blood like us, "to destroy him who has the power of death, that is, the devil, and deliver all those who through fear of death were subject to lifelong bondage" (Hebrews 2:14 ff.).
In addition to Christ's resurrection, the proof that all this is not "self-consoling illusion" is the fact that the believer already experiences, from the moment he believes, something of this victory over death. Last summer I preached in an Anglican parish in London. The church was full of young men and women. I was talking about the resurrection of Christ and, at a certain moment, after I had given all the arguments to support it, I was inspired to ask those present a question: "How many of you think you can say as the blind man from birth: 'I was blind, but now I see,' 'I was dead, but now I live'?" A forest of hands were raised even before I finished the question. Some were coming from years of drugs, prison, despairing life and suicide attempts; others, on the contrary, from promising careers in the field of business and entertainment.
To his close friends who expressed concern about his future and health conditions, raising his head in his wheelchair, Pope John Paul II surprisingly repeated one day, toward the end of his life, with a profound voice, Horace's phrase: "Non omnis moriar" (I will not die completely), but on his lips that already had another meaning.
5. Christ "My Savior"
It is not enough, however, that I recognize Christ as "Savior of the world"; it is necessary that I recognize him as "my Savior." A moment that cannot be forgotten is that in which this discovery takes place and this illumination is received. One then understands what the Apostle tried to say with the words: "Christ Jesus came into the world to save sinners. Of these I am the foremost" (1 Timothy 1:15).
The experience of salvation that is had with Christ is wonderfully exemplified in the incident of Peter, drowning in the lake. We experience daily the sense of drowning: in sin, in lukewarmness, in discouragement, in incredulity, in doubt, in routine. Faith itself is to walk on the edge of the cliff, with the constant sensation that at every moment we might lose our balance and plunge into the void.
In these conditions it is an immense consolation to continually discover that Christ's hand is ready to lift us up, if only we seek and grab hold of it. We can even experience a profound joy seeing ourselves as weak and sinners, as the liturgy sings in the "Exultet" of the Easter Vigil: "O felix culpa quae talem ac tantum meruit habere Redemptorem!" (O happy fault, which gained for us so great a Redeemer).
I shall end here, venerable fathers and brothers, my Advent reflections on faith in Christ in the world of today. Writing against the Docetist heretics of his time, who denied the Incarnation of the Word and his true humanity, Tertullian proffered the cry: "Do not take away from the world its only hope" (parce unicae spei totius orbis).[8]
It is the sad cry we must repeat to the men of today, tempted to do without Christ. He is, still today, the only hope of the world. When the Apostle Peter exhorts us to "give reason for the hope that is in us," he exhorts us to speak to men of Christ because he is the reason of our hope.
We must re-create the conditions for a recovery of faith in Christ. Reproduce the impulse of faith from which the symbol of Nicaea was born. The body of the Church produced on that occasion a supreme effort, raising itself in faith above all human systems and all the resistances of reason.
The fruit of this effort remained later as the symbol of faith. The tide once rose to the highest level and a sign of it remained on the rock. But it must rise again, the sign is not enough. It is not enough to repeat the Nicean Creed; the impulse of faith must be renewed which then existed in the divinity of Christ and of which there has been no equal in the centuries.
While waiting to proclaim it publicly, bending the knee, on the night of Christmas, I now take the liberty to invite everyone to recite, in Latin, the article of faith on Jesus. It is the most beautiful gift we can give Christ who comes, the one he always sought in life. He also asks his closest collaborators today: "You, who do you believe that I am?"
And we, rising to our feet, respond:
"Credo in unum Dominum Jesum Christum, Filium Dei unigenitum. Et ex Patre natum ante omnia saecula. Deum de Deo, lumen de lumine, Deum verum de Deo vero. Genitum, non factum, consubstantialem Patri: per quem omnia facta sunt. Qui propter nos homines, et propter nostram salutem descendit de coelis. Et incarnatus est de spiritu sancto ex Maria Virgine: et homo factus est."
(I believe in one Lord, Jesus Christ, the only Son of God, eternally begotten of the Father, God from God, Light from Light, true God from true God, begotten, not made, one in Being with the Father. Through him all things were made. For us men and for our salvation he came down from heaven: by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he was born of the Virgin Mary, and became man.)
Merry Christmas to all!
* * *
[1] St. Athanasius, "Oratio contra Arianos," I,70.
[2] J. Monod, "Il caso e la necessità," Est Mondadori, Milan, 1970, pp. 136-7.
[3] Gustavo A. Bécquer, "Obras Completas," p. 426.
[4] Cf. E. Becker, "Il Rifiuto della Morte," St. Paul's Publishers, Rome, 1982.
[5] J. Monod, "Il caso e la necessità," Milan, 1970.
[6] M. de Unamuno, "Cartas a J. Ilundain," in Review of the University of Buenos Aires, 9, pp. 135-150.
[7] St. Augustine, "Trattati su Giovanni," 55, 1.
[8] Tertullian, "De Carne Christi," 5, 3 (CC 2, p. 8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