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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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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2-04-08 ㅣ No.3527

4월 9일 부활 제 2주간 월요일-요한 복음 3장 7-15절

 

그 때에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다. "새로 나야 된다."

 

 

<죽음 연습>

 

승용차를 몰고 지방으로 내려가다가 덤프트럭을 포함한 예닐곱 대의 차량들과의 추돌사고를 일으켜 거의 죽게되었던 한 형제를 알고 있습니다. 구겨진 차에 끼인 그를 구급대원들은 겨우 빼내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 옮겨갔습니다. 워낙 큰 사고였기에 처음 그를 본 의사들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습니다. 그러나 워낙 기본체력이나 정신력이 강한 분이어서 그런지 수 차례에 걸친 대수술을 잘 견뎌내고 기적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다 일어선 그분은 건강이 회복되면서 뭔가 뚜렷한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분은 그 사고를 자신의 일생 안에서 하나의 결정적인 전환점으로 여겼습니다.

 

그분은 자주 이런 말씀을 되풀이 하셨습니다. "이제 내게 남아 있는 삶은 하느님께서 덤으로 주신 선물입니다."

 

때로 절실히 죽음체험을 해본 사람에게 삶의 새로운 차원이 열릴 수 있습니다. 만사형통할 때는 이기심에 가려서 보이지 않던 영적인 것들이 삶의 가장 밑바닥에 섰을 때 환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죽음을 한번 맛 본 사람들은 영성이 한 단계 비약적인 진보를 보이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래서 죽음의 문턱을 한번 밟아본다는 것은 일단 고통스런 일이지만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은총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영적인 자유로움을 체험합니다. 죽음의 맛을 본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는 그 대가로 객관적인 시각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을 선물로 주십니다. 죽음 체험이야말로 자신의 정확한 실체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 나온 사람, 죽음의 손아귀를 풀고 뛰쳐나온 사람, 죽음을 극복하고 일어난 사람들은 더 이상 죽음의 노예가 아닙니다. 그들은 생명의 사람이고 자유의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집착과 욕심과 미움을 떨치고 힘차게 일어섭니다.

 

그리스도교는 역설적으로 고통의 종교이자 죽음의 종교입니다. 그러나 그런 고통과 죽음은 결국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죽음이기에 더욱 소중합니다.

 

살레시오회 양성소에서는 "착한 죽음의 연습"이란 오랜 전통이 있습니다. 매월 말일이 바로 그 연습을 하는 날입니다. 이날은 한 달간 자신이 사용했던 침실이나 옷장, 책상의 위치를 서로 바꿉니다. 그러면서 불필요한 물품들은 정리해서 필요로 하는 다른 형제들을 위해 다 내어놓습니다. 이렇게 지난 한 달간의 자신의 일상을 정리하고 새로운 각오로 새달을 맞이하는 노력을 하자는 것이 "착한 죽음의 연습"의 취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다시 나야한다"는 의미는 곧 "죽는다"는 의미입니다. 하느님과 멀어져 어둡게 살아왔던 지난 삶과의 단절이 곧 새로남의 의미입니다. 대단한 존재로 여겼던 나 자신에 대한 그릇된 인식의 틀을 깨고 나는 결국 죽어야만 하는 작은 존재임을 깨닫는 노력이 "새로 나는" 노력입니다. 진정으로 우리가 죽지 않으면, 기존의 그릇된 고정관념에서, 편협된 사고방식에서, 그릇된 시각에서 죽지 않으면 결코 새로 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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