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 (수)
(홍)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이번 한번만 딱!

스크랩 인쇄

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2-07-19 ㅣ No.3860

7월 20일 연중 제 15주간 토요일-마태오 12장 14-21절

 

"그는 상한 갈대도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리라."

 

 

<이번 한번만 딱!>

 

언젠가 투병중인 한 젊은 환자를 방문하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환자는 안타깝게도 이제 한창 꽃피어나야 할 스물 다섯 먹은 처녀였습니다.

 

동행했던 자매님의 설명에 따르면 그렇게 부유한 가정은 아니었지만 남부럽지 않게 단란했던 가정이었다고. 그러나 갓스물에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맏딸을 의식 불명상태에 빠뜨린 교통사고 이후에 식구들은 한동안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집단 우울 증세에 빠진 식구들은 모두 넋 나간 사람들처럼 지난 몇 년을 살아왔다고 합니다.

 

의식불명 상태가 길어지면서 거의 식물인간이 다 된 딸을 두고 사람들은 말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딸도 딸이지만 이러다 식구들 다 죽겠으니, 이쯤에서 그만 포기하자." "이만큼 노력했으니 저도 서운하지 않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교리적으로나 윤리적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아쉽지만 생각을 바꾸자."

 

그러나 딸을 향한 어머니의 집념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조금이라도 호전기미만 보이면 뛸 듯이 기뻐하며 "저것 보세요. 이제 점점 좋아지고 있다구요. 반드시 의식이 돌아올 겁니다"며 더 지극한 정성으로 간병에 매달렸습니다. 어머니는 딸을 위해 자신의 사생활을 완전히 포기했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 "그는 상한 갈대도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무모해 보일 정도로 극진했던 그 어머니의 딸을 향한 정성을 기억합니다.

 

물론 그 뒤로 딸의 병세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에 대한 소식은 전해듣지 못했습니다만, 당시 집요하리 만치 지극했던 어머니의 정성을 생각할 때 아마도 지금쯤 그 딸은 의식이 완전히 회복되었으리라 확신합니다. 지금은 어머니와 나란히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예수님은 연민 가득한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 오늘 우리 삶의 모습이 아무리 당신 마음에 안 들고 비참해 보일지라도 그저 참아주십니다. 늘 속으면서도 "이번 한번만 딱!"하면서 인내하십니다.

 

제 인생도 뒤돌아보니 마치도 살얼음판 위를 걸어온 아슬아슬한 나날이었습니다. 기억하기 싫을 정도로 아찔했던 순간들도 참으로 많았습니다. "어쩌면 내가 그럴 수가 있었을까?" 하며 지금도 한탄할 정도로 부족하고 비참했던 나날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측량할 길 없는 하느님의 인내와 자비가 제 삶의 구비 구비에 깃들여져 있었음을 이제야 절감합니다.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간에 수없이 되풀이되었던 용서와 인내, 자비의 역사가 제 삶 안에서도 되풀이되고 있음을 깊이 느낍니다.



1,907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