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장윤선 기자]
"너무 억울하게 짓밟혀 한이 됩니다. 수녀님이 에이즈 환자들의 간병비를 떼어먹었어요. 인권사각지대에 놓인 불쌍한 저희들을 두 번 죽이지 마십시오."
가톨릭 수녀가 국내 유일 강원도 원주 에이즈호스피스센터 입원환자들의 명의를 도용해 정부로부터 간병비를 허위 청구하는 방법으로 수천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다. 원주지검은 지난 11일 최아무개 수녀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하고 18일째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이고 있다.
"에이즈환자 간병비가 수녀의 착복 도구였다니"
대한에이즈예방협회는 2005년 프란치스코 전교봉사 수녀회(원장수녀 하이디 부로우크만)와 공동협약을 맺고 강원도 원주 C병원에 에이즈환자 호스피스센터 사업을 위탁했다. 원주 가톨릭병원은 프란치스코 전교봉사 수녀회가 82년에 설립, 25년간 직접 운영하고 있는 의료시설이다.
프란치스코 전교봉사 수녀회 소속인 최 수녀는 지난 2005년부터 2년간 이 사업을 벌이면서 에이즈 환자 2명의 명의를 도용해 허위 간병근무확인서를 만들어 질병관리본부로부터 총 2000여만원의 돈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06년 6월부터 8개월간 이 병원에 입원해 있던 HIV 감염인 A씨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간병인으로 둔갑해 있었다. 환자를 간병인으로 바꿔치기 한 것이다. 최 수녀는 A씨 명의로 가짜 도장을 만들고 간병근무확인서에 날인하는 방법으로 매월 A씨의 명의로 100만원의 돈을 대신 타갔다. 최 수녀가 허위 청구해 받은 돈은 모두 700여 만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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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치스코 전교봉사 수녀회 소속 한 수녀가 에이즈환자들을 간병인으로 둔갑시켜 국고를 2000만원 횡령했다. 사진은 원주 C병원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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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오마이뉴스 장윤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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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 감염인 B씨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2006년 3월에 입원한 B씨는 빠른 쾌유로 9월부터 간병활동을 시작했다. 최 수녀의 권유로 시작된 일이다. B씨의 말이다.
"몸이 회복됐으니 바쁠 때 좀 도와달라고 했어요. 수녀님 일을 도와주면 조금씩 용돈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죽게 된 사람이 호스피스센터에 와서 담뱃값이라도 벌 수 있게 됐다니 그것만으로도 저는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310호 병실에서 환자들을 위해 열심히 일했는데 그게 모두 최 수녀의 착복을 위한 도구였다고 생각하니 치가 떨립니다."
B씨는 최 수녀로부터 매월 20만~30만원의 용돈을 받아썼다. 호스피스센터 환자들의 밤샘 기저귀 갈기, 밥 먹이기, 약 먹이기, 양치질하기, 운동 함께하기 등과 같은 간병인 역할을 하면서 받은 돈이다.
이 때 최 수녀는 온 상근 분량의 간병비를 타내고, 그 중 소액을 B씨에게 건넨 것이다. 방법은 A씨와 똑같았다. 가짜로 만들어진 간병근무확인서에 최 수녀가 직접 '날림 글씨'로 일지를 작성하고 서명했다. 질병관리본부로부터 간병비를 수령할 때는 B씨 몰래 만들어둔 도장을 썼다. 최 수녀가 B씨의 명의로 받아낸 간병비 총액은 1450만원이다.
본인 모르게 환자를 간병인으로 둔갑
이뿐 아니다. 최 수녀는 마지막 임종을 앞두고 호스피스센터를 찾아온 환자들의 가족들에게 '소모품비' 형태의 금품을 거뒀다. 1인당 30만원 수준이다. 환자 가족들은 병원에서 요구하는 비용이기 때문에 매월 냈다. B씨가 분개하는 대목이 바로 이 부분이다.
"나 때문에 이혼하게 돼서 아이와 함께 먹고살기도 힘들 텐데 아내에게서 매월 30만원을 받아냈다는 게 너무 화가 납니다.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도 참을 수 없어요."
이를 알게 된 B씨가 거세게 항의하자 최근 최 수녀는 이 돈을 모두 돌려주었다. 최 수녀는 B씨 말고도 310호 병실에 누워있는 다른 호스피스 환자 보호자로부터도 매월 30만원 정도의 돈을 받았다. 여기에는 의료보호 1종 수급대상도 예외가 아니었다. 환자가 입원하게 되면 일체 비용을 병원이 부담하게 돼 있지만 310호 병실은 예외였다.
2003년 겨울 원주 C병원 에이즈호스피스센터에 입원한 HIV 감염인 C씨의 경우에도 가족들로부터 매월 30만원 정도의 돈을 받았다. 명목은 기저귀와 샴푸, 비누와 치약, 소독약 등의 소모품이라고 한다. 이 병실에서 일했던 간병인 D씨는 "모든 소모품비를 다 합친다 해도 10만원이면 족하다"고 전했다. D씨는 실제로 310호 병실과 에이즈환자 쉼터의 살림을 도맡아 운영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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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 수녀가 횡령사건이 문제가 되자 에이즈환자 B씨에게 '소모품비' 등을 돌려줬다. B씨가 공개한 통장 계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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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오마이뉴스 장윤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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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환자 생활수급비 통장과 도장, 비밀번호 일괄 관리?
최 수녀는 에이즈호스피스센터에 입원한 환자의 생활수급비 통장에도 손을 댔다. HIV 감염인 A씨의 주장에 따르면, 최 수녀는 생활수급비 통장과 도장, 비밀번호를 알아낸 뒤 일괄 관리한다는 것이다. A씨의 말이다.
"최 수녀는 의료보호 환자들의 생활수급비 통장과 비밀번호, 도장을 보관해 일괄 관리하고 있습니다. 제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최 수녀가 우리의 통장과 도장을 일괄 관리하는 것은 인권침해라고 생각합니다. 최 수녀는 우리 같은 환자들이 사망단계에서 오니까 생활수급비 통장을 관리한다고 하지만 심지어 어떤 환자는 1년간 개인 통장을 구경하지 못했다고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최 수녀는 질병관리본부를 통해 전달되는 간병인의 간병비와 운영비 일체를 개인 계좌로 일괄 수령했다. 최 수녀 나름의 명분은 있었다. 에이즈환자 간병인도 감염인인지라 자칫 매월 정액의 급여가 지급될 경우 기초생활 수급자 명단에서 제외될 수 있기 때문에 '봐' 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통째로 대신 받아 배분하겠다는 게 최 수녀의 논리였다.
문제는 지난 2년간 프란치스코 전교봉사 수녀회와 이 사업을 공동으로 진행했던 대한에이즈협회가 단 한 차례도 이에 대한 실사를 벌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질병관리본부, 최 수녀 상대로 원주경찰서에 고발장 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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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 수녀가 가짜로 만든 간병근무확인서. 모두 최 수녀의 필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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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오마이뉴스 장윤선 |
유은주 대한에이즈예방협회 사업부장은 25일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공동사업을 벌인 것이기 때문에 따로 감사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며 "구체적인 명단 확인 없이 첨부된 서류에 따라 비용을 집행했었다"고 밝혔다.
이어 유 부장은 "HIV 감염인들의 개인정보 보호 때문에 구체적인 이름을 확인하지 않고 숫자만 보고 식비 등을 계산해 수녀회 측에 건넸다"며 "일일이 확인하지 않았던 것은 협회의 잘못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한에이즈예방협회가 지난 2년간 질병관리본부로부터 받아 집행한 사업비는 총 3억7200만원이다. 집행항목은 ▲운영요원 인건비(간호사 2명) ▲체류자 식비(매월 315만원 가량) ▲집기비품비 ▲프로그램 운영비 ▲공공요금 ▲의약품 및 의료기구 구입비 ▲업무추진비 등이다. 간병인들의 간병비는 '에이즈 환자 자활사업' 일환으로 별도 지급된다.
대한에이즈예방협회의 사업비를 관장하는 질병관리본부와 보건복지부도 지난 2년간 단 한번도 실효성 있는 실사를 전개하지 않았다. 최 수녀에게 당한 에이즈환자들이 직접 고소장을 들고 검찰에 찾아갈 때까지 주무관청에서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질병관리본부 에이즈결핵관리팀은 뒤늦게 관련 사실을 인지하고 원주경찰서에 사기 및 횡령 혐의로 최 수녀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하고 참고인 조사에 응했다.
남정구 질병관리본부 에이즈결핵관리팀 연구관은 "지난 22일 원주경찰서에 고발장을 접수했다"며 "지난 7월 중순 원주 에이즈호스피스센터를 상대로 현장조사를 벌인 바 있다"고 밝혔다.
이어 남 연구관은 "국가보조금 횡령에 대해 본인이 일부 시인했다"며 "국고를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고발조치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전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 수녀는 지난 18일 경찰조사에 앞서 해외출국 계획을 세웠다. 원장수녀인 하이디 부로우크만과 동행하는 아프리카행이었다. 그러나 법무부로부터 출국금지조치가 내려지면서 최 수녀의 발이 묶였다. 지난 22일 경찰로부터 1차 소환조사를 받았으며, 8월 초순 2차 대질심문이 예정돼 있다.
한편, 프란치스코 전교봉사 수녀회 소속 수녀의 에이즈환자 간병비 횡령 및 사기사건이 불거진 직후 지난 18일 아프리카로 떠난 하이디 브로우크만 원장 수녀는 다음달 8일 귀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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