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 Gabriel / 피터 가브리엘
데뷔/결성 : 1977년
활동 시기 : 1970, 1980, 1990, 2000년대
멤 버 : 솔로활동
하나의 전형은 유행을 낳고, 하나의 명작은 아류를 낳는다. 어떤 뮤지션은 새롭고 독창적인 음악을 창조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남이 만든 형식에 자신의 능력을 맞춰나간다. 그러나 영국 출신의 싱어 송라이터 피터 가브리엘(Peter Gabriel)은 다른 아티스트가 닦아 놓은 길을 거부했다. 스스로 선택한 고행의 길을 통해 음악의 프리즘을 다각화시켰고 대중 음악의 개념을 넓혔다. 아트록, 팝록, 컬리지록 등을 두루 섭렵하면서 자신의 음악 제국을 건설한 그는 또한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민속 음악을 월드 뮤직(다분히 서양인 중심적인 시각이지만)이란 이름으로 알린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상업적이고 틀에 박힌 유행음악에 싫증을 느낀 팬들은 피터 가브리엘의 노래들을 통해 음악적인 갈증을 풀었고 지적인 배고픔을 채웠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피터 가브리엘은 명 프로그레시브 그룹 제네시스(Genesis)를 이끌면서 음악적인 이상을 찾았고, 1977년부터 시작된 솔로 활동은 그 유토피아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실천의 시간이었다. 그가 몸담고 있던 제네시스는 1970년을 전후한 기간 동안 클래식을 근간으로 한 복잡한 곡 구조와 난해한 가사, 그리고 시각적인 충격 요법을 가미한 공연으로 가장 초현실적인 아트록 밴드로 팬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고 그 선두엔 바로 피터 가브리엘이 있었다.
그러나 1976년에 친정인 제네시스를 출가한 이 영국 아티스트는 이전처럼 일반 대중들이 쉽게 수용하기 어려운 음악에서 좀 더 대중적인 음악으로 방향타를 틀었다. 그 대표적인 곡이 1986년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한 'Sledgehammer'이지만 그러한 세속적인(?) 성공이 그의 음악 철학을 송두리째 뒤흔든 것은 아니었다. 친숙한 멜로디의 강점을 살리면서도 자신만의 고집스런 눈으로 응시한 날카로운 가사와 긴장감을 풀지 않는 도전적인 실험 정신으로 수많은 뮤지션들은 그를 대중 음악의 스승이자 정신적인 지주로 추앙하고 있다.
1977년, 포크 스타일의 기타 연주로 포문을 여는 데뷔 싱글 'Solsbury hill(68위)'이 수록된 처녀작 <Peter Gabriel>부터 1980년의 세 번째 음반까지 모두 자신의 이름을 앨범 타이틀로 정한 그는 이전 제네시스 시절과는 달리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투사로 거듭났다. 특히 <Peter Gabriel Ⅲ>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반인륜적인 인종차별 정책에 저항한 인권운동가 스티븐 비코에게 헌정한 명곡 'Biko'와 케이트 부시(Kate Bush)의 얼음처럼 차갑고 오싹한 백보컬이 전율적인 'Games without frontiers(48위)'가 자리하고 있어 그 가치를 더하고 있다. 1994년에 열린 우드스탁 페스티발 25주년 기념 공연에서 피터는 관중들과 함께 'Biko'를 열창해 쉽게 잊혀지지 않는 감동과 환희의 무대를 연출하기도 했다.
제네시스 시절부터 짙은 화장과 화려한 공연으로 시각적인 면에서도 앞서갔던 가브리엘은 1981년 MTV가 개국하면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한다. 1982년의 4집 <Security>에 수록된 'Shock the monkey(29위)'의 긴박한 멜로디를 그로데스크한 분위기와 공포스런 화면으로 풀어낸 뮤직비디오는 MTV 역사상 가장 훌륭한 작품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으며 스탑 모션으로 제작된 1986년도 싱글 'Sledgehammer'도 여러 상을 수상하면서 뮤직비디오 역사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렇듯 영상에도 깊은 조예를 나타낸 그는 1984년 알란 파커 감독의 영화 <버디>와 1988년 마틴 스콜세지의 <예수의 마지막 유혹>의 사운드트랙을 전담함으로써 자신의 활동 반경을 확장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수상한 4개의 그래미 트로피 중에서 3개가 뮤직비디오 부문일 정도로 '보는 것'에 대한 그의 집념과 의지는 대단하다.
또한 그는 대중음악의 새로운 대안을 제3세계의 민속음악에서 찾기 시작했다. 피터 가브리엘은 WOMAD(World of Music, Arts and Dance) 재단을 만들어 1980년대 폴 사이먼(Paul Simon), 토킹 헤즈(Talking Heads)의 리더 데이비드 번(David Byrne)과 함께 아프리카와 남미, 그리고 아시아의 전통음악을 서방인들에게 널리 알렸다. 자신의 곡인 'Biko'의 도입부에서 들을 수 있는 아프리카 합창단의 음원과 <So> 앨범에 수록된 세네갈 출신의 남성 가수 유쑨 두루(Youssou N'Dour)를 백보컬리스트로 모셔온 'In your eyes' 등은 타지역의 민속음악에 대한 그의 각별한 애정을 의미하는 대표곡이다.
1986년에 발표된 통산 다섯 번째 정규 음반 <So>는 피터 가브리엘을 상업적으로 성공한 남성 가수로 등극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첫 싱글 'Sledgehammer'가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의 고지를 점령했고 'In your eyes(26위)'와 'Big time(8위)', 케이트 부시와 호흡을 맞춘 발라드 'Don't give up(72위)'이 무더기로 차트를 누비면서 일반 팝 팬들과의 거리감을 대폭 줄였다. <So>는 앨범 차트 2위까지 상승했고 그래미에도 여러 부문에 후보로 노미네이트 되면서 대중성과 음악성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특히 'In your eyes'는 1989년에 카메론 크로우(Cameron Crowe)의 영화 <세이 애니씽>에 삽입되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겨 다시 싱글 차트에 입적되기도 했다(41위).
1989년, 영화 <예수의 마지막 유혹>의 사운드트랙 <Passion>으로 그래미 뉴에이지 부문을 수상한 그는 1992년에 <Us>를 발표했다. 피터 가브리엘과 핑크 빛 염문을 뿌렸던 아일랜드의 자존심 시네이드 오코너(Sinead O'Connor)와 입을 맞춘 'Come talk to me'를 위시해 그루브한 싱글 'Steam(32위)', 'Digging in the dirt(52위)'를 배출한 이 작품은 그러나 전작의 영광을 이어가지는 못했다.
이후 'Secret Live'로 명명된 전 대규모 세계 순회 공연의 열광과 희열을 담은 음반과 비디오를 1994년에 발표해 다시 한번 그래미상을 거머쥔 피터 가브리엘은 현재 음악과 영상, 그리고 컴퓨터 산업을 아우르는 멀티미디어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다시 한번 세계에 가할 충격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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