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6일 (화)
(녹) 연중 제34주간 화요일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자유게시판

새해도 되었고 사순절도 시작되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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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cmf005k] 쪽지 캡슐

2008-02-08 ㅣ No.117295

이전에 학교에서 철학시간에 정반합의 원칙에 대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누구 이론이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바른 것이 나올 때에는 그것만이 바른줄 알지만 지나고 보면, 반대하는 것이 나오게 되는 틈이 생기고 반대하는 것과 원래의 흐름이 합쳐져서 또 새로운 바른 것이 나온다는 ... 뭐 그런 이론이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잘 나가다가도 한 발 잘못 들어선 길에서 죄에 빠지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다 보면, 또 내 안에서 혹은 외부로부터 회개의 기회가 오고 또 새롭게 나아가게 되는 것도 그 이론 그대로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주일 복음과 독서를 보니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아담과 하와는 분명히 하느님을 거슬렀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죄에 대한 댓가로 벌 안에 가둬두지 않으시고, 그 시점에서 가장 옳은 방향으로 사람들을 흘러가게 하셨습니다. 그 죄의 댓가는 인간의 역사 안에서 무수한 오점들을 탄생시키고 죄 중에 있게 되는 상황으로 치닫게 되면서도 또 하느님의 은총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그리고 하느님 나라를 알리는 활동, 수난과 죽음, 부활을 통해 새로운 흐름을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최악의 상황이 될 수록 우리는 희망을 가지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지금보다 더 최악일 수 없다는 믿음도 희망이 될지 모르지요.
 
그런데 인간사회에서는 그러한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 있습니다.
처음의 바른 흐름, 혹은 새로나온 반대의 흐름이 기존의 것, 혹은 새로운 것과 맞물려서 더욱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나가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그 모습만을 고수하며, 그것을 밀어부치는 흐름입니다.
 
요 최근에 연판장 이야기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제까지 본당에서 신부님이 뭔가를 잘못했다 그러면, 그것이 본당 신자 대다수의 반대를 받는 경우가 아닐지라도
어김없이 본당신부님이 무조건 나가야 했습니다. 저는 그간 본당 조직체계에서의 본당 주임신부님의 자리를 절대적인 축으로서 봤습니다. 그래서 신자들이 신부님께 많이 끌려다니는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만 보면 그렇게 고생을 하더라도 결국에는 본당의 색깔이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게 신부님이 이동하시면 다시 제색깔을 찾아갑니다. 바꿔 말하면 아무리 훌륭하신 신부님이 수없이 다녀가셔도 신자들의 영성은 크게 나아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쁜 쪽으로는 쉽게 갑니다. 본당 수도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지요. 본당의 기존 신자라는 "정"과 새로 부임하시는 신부님이라는 "반"이 만나면 "합"이 나와야 하는데, 늘 다시 "정"으로 갑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 "정"에 정반대로 역행하는 듯이 보이는 "반"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살수가 뻗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본당을 기반으로 하는 한국 가톨릭 교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경우가 된다고 봅니다. 뭔가 새로운 비전을 본당 밖에서 열심히 쏘아 봐야 본당 내에서 기존의 틀을 고집하는 이상에는 달라질 것이 없습니다. 그 새로운 비전은 변화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변화하기 위해서는 틀을 깨야 하는데, 집을 더 크게 짓기 위해서는 기존의 집을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하는데, 집 부수는게 싫다고 새로 집지으려는 사람들을 쫓아냅니다.
 
가능성이 있다면 계속 물갈이를 해줘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게 가능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떤 본당의 경우에는 십 몇 년동안 구역의 임원들과 사목회의 임원진이 바뀌지 않는 곳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분명히 새로운 피가 계속 수혈되어 새 신자도 생겨나고 다른 곳에서 전입오는 사람들도 있고, 요즘에는 일반 신자들 중에서 자진해서 교리신학원을 다니거나 통신으로 수학하거나 다른 교육기관을 통해서 유식해지는 신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당에서 활용이 안 되면 모두들 자기 공부만 될 뿐, 그냥 제자리 걸음일 수 밖에 없습니다. 본당 신부님이 열심히 하셔도 계실 때 뿐입니다.
 
결국 본당을 기반으로 하는 일반 신자 안에서 새로운 힘이 솟구치지 않는 이상, 바뀌지 않습니다.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발전도 후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좋은 것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바람이 불지 않는 무풍지대에 있는 배는 그것 자체로 죽음을 의미합니다.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 입니다. 지금 당장은 괴롭고 힘들더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합치고 길을 인도하는 사람에게 그 힘을 실어줘야 합니다. 그런데 조금 인간적인 이야기를 했다고, 하는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학력이 높지 않다고, 가차없이 밟아버리니, 누구나 실수를 하면서 성장을 하고 실패를 하면서 발전을 하는데, 사제는 그럴 때만 사람이 되면 안되더군요. 다른 때는 사제가 사람이란 것을 다 인정하고 인간적이 되기를 간곡히 원하면서도, 꼭 그런 때만 사제는 인간이면 안된다고 생각들 하십니다.
 
교회는 사제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수도자만으로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바뀔려면 다 같이 바뀌어야 하고 성장하려면 다 같이 성장해야 합니다. 최소한 본당 단위에서 그러한 성장이 함께 이루어지지 않으면 교구차원에서 소리를 높여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성지나 성령세미나, 피정에서 소리를 높여도 색깔은 바뀌지 않습니다.
 
사순절은 참으로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좀 뭔가를 해보려고 하면 꼭 마가 낍니다. 사순기간동안 술 좀 안 먹어보려고 하면 꼭 회식이 많이 생기고 술마시자는 인간들이 어찌나 많은지 ... 그런 유혹들, 뻔히 잘 알고 있으면서도 꼭 걸려 넘어집니다. 하지만, 한 번 넘어지고 그것으로 끝난다면 사순절이 40일 동안 계속될 이유가 없겠지요. 40일동안 넘어지고 쓰러지고, 넘어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다시 일어나서 어쨌든간 힘을 내려고 애쓰다보면, 달려갈 수 있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지고 그렇게 길어지는 1초 1초가 나를 좀 더 지탱하는 원동력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새해도 됐고, 사순절도 시작됐는데, 아직 설연휴라서 그런지 계속 가물가물하네요. 
아무쪼록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풍성한 열매 맺는 사순기가 되세요.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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