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8.8.11 월요일 성녀 클라라(1193-1253) 동정 기념일
에제1,2-5.24-28ㄷ 마태17,22-27
"내적 자유"
하느님 체험의 열매가 내적 자유입니다.
내적 자유는 하느님 체험의 진정성을 알아보는 시금석입니다.
정말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요?
누구나 자유를 추구하지만
갖가지 욕심으로 자유로운 이들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욕심 없는, 무욕의 사람이 자유로운 사람이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진정 부자입니다.
예수님이 그 탁월한 모범이고 오늘 기념하는 클라라 성녀가 그러합니다.
수도자들의 복음적 권고인 청빈, 정결, 순명도
모두를 버리고 주님만을 섬김으로 자유로운 삶을 목표로 삼습니다.
이래서 수도자들이 자유로운 참 부자입니다.
하느님만으로 행복해 필요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내적 자유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하느님 체험의 은총으로 내적 자유입니다.
하느님을 향한 끊임없는 자아초월이 자기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합니다.
자유는 능력입니다.
똑같은 자유가 아닙니다.
하느님 체험의 정도에 따라 자유의 능력도 천차만별입니다.
끊임없는 하느님 체험에 따라 신장되는 자유의 능력입니다.
이런 자유인들 본질 파악의 지혜로운 사람들이기에
부수적인 것들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두가 하느님의 선물이요 하느님의 보고(寶庫)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성전세 납부를 명하시는 주님의 말씀이 사사하는 바 큽니다.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
스타테르 한 닢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주어라.”
참 황당한 말씀 같습니다만 깊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진정 예수님 같은 하느님의 사람, 무욕의 사람에게는
세상 모두가 하느님의 선물이요 하느님의 보고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호수에서 낚시로 건져 올린 고기의 입을 열어 얻게 된
스타테르 한 닢이 이를 상징합니다.
세상의 모두를 하느님의 선물이요 하느님의 보고로 보는 자들,
얼마나 자유롭겠는지요.
분별의 지혜를 이용하며 하느님의 선물을 적절히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유로운 내적 부자들이 진정 지혜롭습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 지혜롭게도 성전세 납부로 인해
불필요한 충돌을 야기하지 않습니다.
성전세라는 ‘덫’을 슬기롭게 통과합니다.
이런 무욕의 지혜가 없어,
욕심으로 인해 얼마나 숱한 덫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들인지요.
1독서의 에제케엘 예언자,
바빌론의 유배지 크바르 강가에서 주님의 말씀을 받습니다.
주님의 손이 그에게 내렸다 합니다.
주님 영광을 보고 에제키엘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립니다.
이런 하느님 체험 있어 에제키엘 예언자,
바빌론 유배라는 고단한 삶 중에도
활기차게 예언 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매일 미사를 통한 주님의 체험이
우리를 자유로운 내적 부자요 현자로 만듭니다.
“주님의 영광이 땅과 하늘에 가득하도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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