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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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민 [freebuilder] 쪽지 캡슐

2014-04-24 ㅣ No.7790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바오로 서간에서 나타난, 바오로 사도의 율법에 대한 견해가 아래와 같이 이중적이어서 혼돈이 오고, 난해하다고 말씀하신 교우분을 위하여 이 글을 씁니다.


[로마서 4장15절]율법은 진노를 자아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장20절]율법이 들어와 범죄가 많아지게 하였습니다.

[로마서 7장12절]율법은 거룩합니다. 계명도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것입니다.

[갈라티아3장 19절]율법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사람들의 범법 때문에 덧붙여진 것입니다.


상기 글을 보면, 율법에 대한 바오로의 말씀이 이중적으로 보여 헷갈리기도하는 것은 사실이다. 율법은 거룩하다고 했다가 율법이 들어와 범죄도 많아지고 진노도 자아낸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은 율법은 죄를 드러나게 하지만, 죄는 율법의 개입을 교활하게 이용하여 인간을 통제한다. 이것은 마치 창세기의 뱀의 유혹과도 같은 것이다. 율법은 인간들이 거슬리고 싶은 마음을 막지 못했고, 역으로 율법을 어기고 싶은 충동도 불러 일으킨다. 즉 율법은 죄를 드러나게 하지만, 죄를 짓지 못하게 하는 힘이 율법 안에는 없다는 말이다.

율법은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으로 좋고, 성스럽고 옳은 것이지만 죄에 의해 이용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율법이 죄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율법 아래에서는 인간이 선을 행하고자 하는 좋은 의지를 갖고 있지만 죄의 노예로 있는 현재의 우리를 벗어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오로는 율법의 체재로써는 인간이 죄의 아래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와 같은 율법의 한계성은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고, 자신을 구원하려는 것은 불가능함을 말하는 것이다.바리사이 같이 율법을 철저하게 준수하려는 것 뒤에는 자아 우상이 숨겨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율법이 할 수 없다는 것은 자아 정당화의 불가능을, 인간이 도덕적 행위로 자신을 정당화하여 구원하지 못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이 경우 율법은 인간에게 자신을 정당화하는 오만의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율법을 잘 준수 하는 것의 뒤에는 자기 우상이라는 교묘한 것이 도사리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바오로 말씀은 율법을 준수한다는 것에 대하여,율법을 인간 구원의 도구로 삼고자 하는 것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지, 율법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율법하의 인간은 , 예수그리스도가 없는 일반적 세상사람들의 인간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오로는 예수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삶, 성령께서 주시는 생명이라는 새계약의 삶을 로마서 8장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생명을 누리는 성령의 법은 율법의 완성인 것이다.


**은총론 "율법의 한계"에서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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