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 (수)
(홍)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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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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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2-10-17 ㅣ No.4169

10월 18일 금요일, 성 루가 복음사가 축일-루가 10장 1-9절

 

"떠나라. 이제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마치 어린양을 이리 떼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구나. 다닐 때 돈주머니도 식량 자루도 신도 지니지 말 것이며 누구와 인사하느라고 가던 길을 멈추지도 마라."

 

 

<영혼의 새벽>

 

우리 시대 가장 탁월한 소설가 중 한 사람으로 최인호(베드로) 선생을 꼽는데 사람들은 큰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그분이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것을 높이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소설 하나 하나에 기울이는 그분의 정성은 놀랍기만 합니다. 그분이 오랜 세월동안 심혈을 기울여 잉태해온 소설들을 순서대로 나열해보면 마치도 한 구도자가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영적인 순례과정 같습니다.

 

가장 최근의 책 "영혼의 새벽"을 단숨에 읽었습니다. 도저히 용서하기 힘든 사연을 간직한 분들, 가슴에 커다란 응어리를 하나씩 안고 살아가는 분들은 꼭 한번씩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모든 상황이 암울했던 군부독재 시절, 소설의 주인공은 별것도 아닌 일로 지하 깊은 곳 취조실로 끌려가 숱한 고초를 겪습니다. 완전한 짐승취급, 무자비한 구타와 물고문 등으로 심신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심한 고문의 후유증과 관련자를 "불었다"는 데서 오는 양심의 가책으로 풀려나서도 끔찍한 고통의 세월을 보냅니다.

 

그런 모든 고문의 총괄지휘자 S가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자신이 전입한 본당의 총회장으로 성체를 분배하는 모습을 발견한 주인공은 순간적으로 머리가 확 돌아버립니다. 그 순간부터 그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게 됩니다. 일상의 다른 모든 것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그 순간부터 그에게는 오직 복수만이 생존의 의미가 되었습니다.

 

이런 그에게 하느님의 손길이 펼쳐지는데, 그 손길은 역시 심한 고문을 겪었던, 그래서 나중에 가르멜회에 입회한 친구수녀가 읽으라고 보내준 하나의 작은 소책자를 통해서였습니다. 6.25때 납북되어 3년간 죽음의 행진을 거듭하다가 가까스로 생존한 수도자들의 피랍생활 중에 기록된 일기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끔찍스런 배고픔, 인간 이하의 삶이 전부였던 3년간의 피랍생활을 엮은 이 책 속에서 증오나 폭력이나 복수에 대한 말은 한마디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 수녀는 3년간의 피랍생활을 기적적으로 마친 소감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모든 사건들을 신앙의 빛으로 보는 수녀로서 우리는 북한 땅에서 보낸 3년간의 포로생활을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죽는 순간까지 잊혀지지 않을 그 끔찍했던 죽음의 행진, 그 짐승만도 못했던 하루하루, 무자비한 군인들의 폭력을 그저 견뎌왔던 지옥의 나날들 조차도 수녀님은 신앙의 빛으로 바라보면서 주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복음 선포를 떠나는 제자들에게 몇 가지 긴요한 당부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복음을 선포한다는 것 때로 그럴듯해 보이지만 참으로 고통스런 십자가의 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복음을 선포하러 현장에 나갔을 때, 낯선 곳 낯선 사람들의 그 철저한 냉담함, 강한 거부감, 빈정거림, 문전박대 참으로 체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선포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자세는 피랍되셨다가 생환되신 수녀님의 고백처럼 "모든 사건들을 신앙의 눈으로 보려는" 노력입니다. 그리고 어떠한 처지에서든지 감사하는 자세입니다.

 

최선의 노력을 다한 복음선포가 성공을 거두었다면 당연히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겠지요. 그러나 늘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지 않습니까? 실패한다 하더라도 그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필요하겠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선포하러 가는 세상 사람들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인정사정 없이 우리를 밖으로 몰아내기도 할 것입니다. 코웃음을 치며 우스갯감으로 만들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 반대자들조차도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그 철저한 실패 역시도 앞으로 더 잘 준비하고, 더 열심히 해보라는 하느님의 격려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복음 선포자인 우리에게 필요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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