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시마 가는 길
가고시마 가는 길에 터널이 23개가 뚫려 있다.
신부님께서는 몇 번이나 시도해도 완벽하게 세지 못했다 한다.
이야기를 하다 말고 손가락으로 개수를 세면서 굴을 지난다. 23 개의 터널.
전 일본이 그렇듯 이 곳도 온천지역이라 지열 때문에 나무들이 굽어 자라는 지역도 있다.
그래서 새우라는 뜻의 ‘애비노‘ 라는 고개도 있다. 이 영마루에서 커피를 마시고
조금만 가면 바로 가고시마로 입성한다 한다.
고속도로 양쪽 주변은 12월인데도 10월처럼, 바야흐로 만추에 접어들고 있다.
9월부터 한국의 성지에서 가을을 보아 온 것이 10월 11월 석달의 가을을 실컷 즐겼건만
12월에 다시 일본 땅에서 느끼는 가을. 무슨 복이랴 싶다.
10 시 50분 가고시마 입성이다.
가고시마는 녹아도라고 하는데 섬의 모양도 사슴이 아니고,
그곳에 사슴이 많은 것도 아니다.
7년 일본에서 유학한 성균관대학 이기동 교수의 말에 의하면 우리나라 동해안에서
자연풍에 배를 맡기고 떠가면 저절로 닿은 곳이 가고시마라 한다.
나라를 신라에 내어주고 일본으로 유랑한 백제의 유민들이 화를 면해서 떠내려 간 곳,
가고시마.
일본 곳곳에 그렇게 흩어져 있던 우리민족들은 그렇게 가고시마에 가면
반가운 동족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가고싶다. 가고싶다. 그리고 만났다 한다.
그렇게 일본으로 떠갔던 우리 민족들이 가고 싶어 하던 곳.
우리말의 다른 이름이라고 했다.
또 그곳에는 아직도 “왔소” 라는 이름의 축제가 남아 있다.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도 모르고 계속하는 그 축제의 이름 또한 떠 내려 온
우리의 유민을 환영하는 파티로 우리말 “왔소”가 그 유래라 한다.
그렇게 가고시마에는 고려교라는 다리도 있고 고려촌이라는 마을도 있고
우리 민족의 흔적이 많이 있는 곳이다.
그들은 이곳이 마치 꿈속에 많이 가 본 장소인 것 같이 생소하지 않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당, 기념 공원
성당 안은 환상적인 분위기다. 배와 같이 생긴 천정.
바다를 상징하는 푸른 색깔과, 태양을 상징하는 붉은 빛이 조화를 이룬다.
둥근 모양이 연속으로 파인 스테인드 그라스는 매우 특징이 있어 보인다.
스페인 본국에서 가져온 파이프 오르간이 2층에서 단아하다. 소리를 들어보고 싶었지만
그건 시간이 맞지 않았다.
전문 안내 요원인 중년의 단정한 일본 여인이 매우 친절하게 안내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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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계단으로 오르는 길에는 성인이 처음 상륙할 때의 모습이 담긴 부조물과
성인이 스님과 독대하여 천주교 교리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는 장면의 두 부조물이 인상적이다.
참, 하비에르 성인은 스님에게 사찰을 기증받아 일본인들 전교에 힘썼다 했지.
불교적인 용어로 일본인들을 설득시켰다 했지. 이름도 한자로 바꾸고...
우리나라에 오신 프랑스 신부님들도 박해시대 조선 이름,
조선옷 상복으로 몸을 감추고 발이 부르트도록 팔도를 누비며 전교에 힘을 쓰셨지.
산 설고 물 선 이국 땅에서의 전교는 그야말로 열정과 용기 없이는 되지 않는 법.
그분 그렇게 일본에서 2년 넘게 애쓴 결과, 천주교를 일본에 정착시켰다.
성당 한 쪽에 안치된 그분의 유해 앞에서 기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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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이 가졌던 깊은 신심과 열정과 용기를 나누어 주시라는 기도를..
그리고 모든 순교자들을 우하여도 기도했다. 그들의 영혼이 하느님의 자비를 얻게 되기를....
그리고 이 땅과 우리의 관계가 독도 문제를 비롯하여 편안한 관계가 이루어지기를...
기념 스탬프를 찍고(일본은 곳곳에 기념 스탬프가 있다), 그곳 신부님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안내를 맡은 여인은 이 신부님을 보고 이렇게 젊은 신부님을 뵌 적이 없다면서 너무나 즐거워한다.
그렇다 젊음, 그건 정말 귀하고도 복된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 하다니.. 그 말은 늙은이들의 아우성일 뿐이다.
물론 열정과 용기로 얼마간 버틸 수는 있다.
그러나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인가?
더러 지혜가 좀 더 나을 수도 있고, 현실에 대처하는 능력이 더 나을 수도 있는 것을...
그들이 푸르고 건강한 정신을 지녔을 때는 더더욱 그러하다.
성당 입구에는 하비에르 성인의 임종 장면의 그림도 있었고,
며칠 전 188인이 복자품에 오른 기사를 스크랩 해 둔 것도 눈에 띈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내게로 오라”
요한복은 7:37 절의 말씀이 입구에 적혀 있다.
목마른 사람. 참, 늘 목이 자주 마른다.
그리움에 목마르고, 시간에 목마르고, 인정에 목마르다.
깊이 대해보지 않고 선입견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때문에 자주 목이 마르기도 한다.
자신을 알리기엔 너무나 궁색하고 자신도 없음을 자주 깨닫는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좀 더 인내심을 기른다는 것이다.
영혼의 목마름을 채우기 위해서 이번 순례자의 길을 택한 것은 백번 잘한 일이다.
다음날 아침 소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기로 하고 성당을 떠났다.
스산한 가을바람이 기념 공원의 나뭇가지로 불어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고 있었다.
전교 여행을 떠나는 선각자들의 동상이 공원 한 귀퉁이를 꾸미고 있었다.
1549년, 8월 15일 이 땅에 처음 들어와 서양 문물을 가르쳤던 성인의 영혼이
가을 바람과 함께 훈풍처럼 가만히 다가옴을 느낀다.
“가서 복음을 전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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