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7일 (월)
(녹)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8월 9일 일기 - 송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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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 [20joolid] 쪽지 캡슐

2013-08-18 ㅣ No.2653

2013 8 9일 금 몹시 무더움 (감옥의 하루)

신용복 선생님이 겨울 징역보다 여름 징역이 더 힘들다고 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겨울에는 옆의 재소자가 온기라도 더해 주지만 뜨거운 여름에는 몸뚱이에서 나는 열기로 인해 존재만으로도 타인에게 혐오감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열 뿐이 아니다. 땀과 함께 몸 냄새도 난다.
옆에 있는 타인은 불쾌감을 더할 뿐이다.
그래서 이곳 제주교도소로 이감되는 날 내가 새로 들어가는 방식구들의 찌푸린 얼굴을 보게 될까 봐 마음이 몹시 불편했었다. 그러나 다행히 교도소에 단골 고객으로 인정 받아 첫날부터 마침 비어 있던 독방으로 수감되었다.
그 방은 작년에도 내가 지냈던 곳이어서 낯이 익은 곳이다.
내가 붙였다 뗀 시간표나 달력 자리에 아직 채 다 벗겨내지 못한 풀칠 흔적들이 눈에 띄었다.
독방은 낮에는 더 덥다. 창은 가림막으로 막혀 있고 굳게 닫힌 철문에 가로 세로 한 뼘 정도의 배식구만 있다.
바람이 많이 불면 이 작은 배식구로도 솔솔 바람이 들지만 바람 없는 날은 찜통이 된다.
찜질방처럼 땀이 온 몸으로 타고 내려 온다.
천장에 붙은 선풍기는 천장이 옥상에 맞붙어 있어 뜨거운 열기를 방안에 골고루 불어주기 때문에 틀지 않는다.
땀으로 밴 엉덩이에는 두 번째 종기가 났다.
더우니까 요를 바닥에 깔지 않고 하루 종일 가부좌로 앉아 있어서 생긴 염증이다.
엉덩이의 종기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다. 그러나 감옥에서 가장 취약한 곳은 허리인 것 같다.
늘 좌식 생활을 하고 작은 공간에서 행동의 제약을 받으니까 그만큼 허리 운동을 할 기회가 적은 것이다.
나야 그리 긴 세월을 감옥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니까 큰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8, 10년씩 징역살이를 하시는 분들은 몸이 많이 상할 거다.

감옥에는 야간에 미등을 켜 놓아서 수면에 방해가 된다.
그래서인지 잠이 깊이 들지 않고 온갖 꿈들로 설 잠을 잘 때가 많다.
그래서 아침 5 45분쯤에는 일어나 조용한 시간에 기도를 드리려 하는데 요즘 며칠 늦잠을 잤다.
낮에 드리는 기도는 확실히 집중이 잘 안 된다.
내일부터는 시계를 머리맡에 두고 꼭 일찍 일어나 기도를 드리려고 마음 먹었다.
꿈속을 달리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떠보면 한 눈에 들어 오는 한 평 감옥의 사각 벽이 내가 지금 감옥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어쩌면 난 밤마다 자유를 누리는 외출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외출이 늘 즐겁고 행복한 것이었으면 좋겠는데 대부분은 그렇지가 않다.
사고, 불행한 사건, 끔찍한 장면들이 많이 나타난다.
차라리 나가고 싶지 않은 외출일 경우가 많다.
많은 부분이 죽음과 관련된 것들이다.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그 경계선에 있는 이상한 상태의 인간들의 군상들이 종종 나타난다.
쫓기는 꿈도 많다. 감옥의 밤은 또 하나의 감옥 같다.
10시가 되면 불을 끄고 정숙해야 한다.
나는 마지막으로 찬물을 끼얹고 아픈 사람들과 수감자들, 그리고 가족들을 위해서 마지막 기도를 드리고 눕는다.
바닥은 마루 바닥이다. 딱딱하지만 늘 현장에서 마루바닥에 누워 자버릇해서 적응이 되어 있다.
이불은 덮지 않고 PT병에 찬 물을 담아 얇은 담요에 둘둘 말아 베개로 사용한다.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다.
행복한 상상의 외출을 기대하며 억지로 자리에 눕는다.
졸리지도 않고 늦은 시간도 아니다.
결코 잠이 올 것 같지 않은데, 그리도 정신이 멀쩡한데 마치 수면제를 마신 듯 곧바로 잠이 든다.
꼭 수면내시경 검사 하느라고 수면주사를 맞는 것하고 너무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때로는 모기 때문에 잠에서 깨곤 한다.
그러나 모기가 배 부르면 다시 괴롭히지 않으니 다시 눈을 붙일 수 있다.
새벽을 알리는 전령은 새들이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는 언제나 싱그럽다. 새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화신(化身)처럼 아침 창가를 찾아 온다.
그리고 새벽의 여명이 밝아온다. 감옥의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  감옥에서의 하루,
        감옥이 아닌 곳이지만 감옥만도 못한 하루를 보내는 이들도 있을 터,
         잠시 살다 떠나야 하는 이승에서 사람답게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런지.
          새로운 하루 하루가 너무 괴롭지 않은 시간이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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