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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뒤를 따르려면'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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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뒤를 따르려면>(마태 16,24-28) -유광수 신부-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라고 새로운 제안을 하신다. 이것은 하나의 제안이지 강요가 아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는 사람에게는" 제안이 아니라 강요이고 반드시 실천해야할 의무이다. "자신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한 필수적인 방법이고 길이다. 즉 "나를 따라야 한다."는 의무이지 "나를 따라도 좋다. 또는 나를 따르면 좋겠다."는 권고가 아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의무요, 따르지 않는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내 욕망을 채우는 삶에서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을 우선적으로 하는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겠다는 사람이다. 이제부터 내 인생에서 예수님을 마치 "낮에는 어김없이 구름기둥으로 앞길을 인도하여 주셨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갈 길을 비추어 주시는 분"(느헤 9, 19)으로 섬기며 살겠다는 사람이다.
이런 의미에서 "내 뒤를 따르는 사람"의 삶이란 새로운 출애급이다. 무슨 출애급인가? "나"에서 "예수님"이라는 낮선 곳으로의 출애급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에집트에서 사용했던 모든 생활 필수품들, 집, 일터를 버리고, 모세라는 새로운 지도자를 따라 하느님이 인도하시는 가나안 땅을 향해 갔듯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모든 신앙인들은 "자신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새로운 모세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출애급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자신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출애급을 성공적으로 하기 위한 조건이요, 예수님을 따르는 방법이다.
그럼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자신의 욕망을 버린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동안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급급했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찾아다녔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다른 이의 것을 앗아왔다. 그래서 다른 이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고, 다른 사람의 희생을 강요했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언제나 어디에서나 자신을 내세워야 했고,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했다. 그렇게 하는 모든 행동들은 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우리 모두는 너 나 할 것 없이 다 자기 욕망의 노예가 되어 있다. 이런 모습은 본래의 나의 모습이 아니다. 지금 나의 모습은 나의 욕망이 만들어낸 거짓 자아의 모습이다. 우리는 그 동안 참 자아로 살지 않고 거짓 자아로 살아왔다. 그래서 점점 더 하느님으로부터 또 참된 자기 모습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이렇게 하느님과 참된 자아로부터 나를 멀어지게 하는 욕망 즉 거짓 자아를 버리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욕망을 따르는 것이요, 거짓 자아를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와서 그것을 버린다는 것은 일종의 죽음이다. 그것도 십자가의 죽음과 같이 고통스러운 일이다. 아무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말은 매순간 자기의 거짓 욕망을 포기하고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라는 것이다.
즉 예수님을 따르는데 방해가 되는 것들은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데 도움이 되는 것들을 취하라는 말이다. 이미 자기 자신이 노예가 되어 있는 거짓 욕망을 버린다는 것 자체는 이미 하나의 커다란 십자가이다. 십자가이지만 그 십자가는 반드시 지고 가야할 십자가이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나의 십자가를 대신 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각자 자기가 지고 가야할 십자가이지만 그 십자가를 자기 혼자 지고 가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에집트를 탈출해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까지 홀로 가야했다면 아마 그들은 거의 대부분 에집트로 돌아갔던지 아니면 광야에서 배고파 죽고 목말라 죽고 외롭고 고통스러워서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야훼 하느님은 그들의 십자가를 그들에게 모두 지우지 않으시고 그들의 인도자 모세를 앞 장 서서 그들을 인도하게 하시고 "낮에는 어김없이 구름기둥으로 앞 길을 인도하여 주셨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갈 길을 비추어 주셨다."(느헤 9,19)
이처럼 야훼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자가를 지게 하셨지만 그 십자가를 그들에게만 지게하지 않으시고 당신께서 동반해주셨고 거들어 주셨다. 이것이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이다. 나의 십자가이지만 나 혼자 그 십자가를 지고 가기에는 나 자신이 너무 약하다는 것을 예수님도 잘 아신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가라."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을 동반해주시고 그들을 인도하셨던 것처럼 내가 나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를 때 주님이 앞장 서 서 나를 인도해주시고 격려해주시고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주시겠다는 것이다.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그것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그것을 얻을 것이다."라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하나밖에 없는 자기의 목숨을 바친다는 것은 완전한 사랑의 행위이다. 그것은 예수님의 삶이요, 영원히 사는 길이다. 예수님의 뒤를 따른다는 것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나의 계명이다."(요한 13, 35. 15, 17)라고 말씀하신 대로 사랑의 삶을 사는 것이다. 사랑의 삶을 사는 이는 이미 영원한 생명의 삶을 사는 것이다.
생명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생명은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다. 따라서 선물을 선물로 남에게 베푸는 사람만이 또한 더 많은 선물을 받게 되고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