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8일 금요일 창세기32장
하느님의 뜻을 인간의 말로 기록해 놓은 것이
성경이기 때문에
하느님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는
읽고, 해석하고, 묵상하고, 관상하여 말씀과 일치하여
말씀 안에 계신 인격적인 하느님을 체험하고 만나는 것이
현재 부활입니다.
성경을 볼 때 문자로 봐도 맞지만,
문자 안에 있는 하느님 뜻을 깨닫는 것이
더 큰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성경은 4차원으로 되어 있는데,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해석과 묵상과 관상이 다르기 때문에
말씀 나눔을 통하여 서로 받은 은혜를 주고 받고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무덤하면 육적으로 볼 때는
공동묘지의 무덤을 의미하지만,
영적으로 볼 때는
인간의 육체가 생명이신 예수님이 안 계시면 무덤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들이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성경말씀을 계시해 주시는데,
비유(파라볼레)나, 은유(알레그레오)등으로
하늘 나라를 설명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4차원으로 되어 있는데
1차원은 구약, 율법, 육안으로 보는 차원이며
2차원은 공관복음, 심안 차원이며
3차원은 영차원, 영안, 요한복음 차원으로 보며
4차원은 묵시록, 계시안으로 보는 차원인데
예를 들며 '하느님 이름이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했을 때
4가지 답이 나올 수 있습니다.
1차원인 구약차원에서는 하느님 이름이 야훼이고
2차원인 공관복음 차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 이름이며
3차원인 요한복음,영차원에서는 말씀이 하느님 이름이신데
묵시록19,13에
'피에 젖은 옷을 입으셨고 이름은 하느님의 말씀이었습니다.'
4차원인 요한묵시록에서는 하느님 이름이 성령입니다.
그래서 성부, 성자, 성령의 속성(성품)은 열매이기 때문에
요한 1서 4,16에는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즉 사랑이 하느님의 이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차원에 따라
하느님 말씀이 해석이 다양하게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인 영차원과 계시차원에서는
설명을 하지 않고, 묵상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강론 말씀을 듣고 차원 높은 강론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문자로만 읽는 사람이 있고,
해석만 하는 사람이 있고,
묵상만 따로 하는 사람이 있는데
차원 높이 묵상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읽고,동시에,해석하고,
동시에 묵상하고,동시에 관상하여
말씀과 일치하여 사랑의 하느님을 만나고, 체험하여
현재 부활에 도달하여
기쁜소식인 복음 말씀이 이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구약 말씀을 읽으실 때도
시공간이 없이, 동시에 읽고, 해석하고, 묵상하고,관상하고,
일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도록 성경을 건성건성 읽지 말고,
한 말씀 한 말씀 묵상하며 읽을 때
큰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야곱이 아버지 이사악을 통하여 하느님의 큰 축복을 받은 후에
하느님이 함께 하는 이사악과 레베카가 있는 곳을 떠나
라반의 집으로 가는 것이
세상에 가서 20년이라는 고난의 생활을 끝마치고
이제 이사악과 레베카를 그리워하고
형 에사우와 화해를 하기 위하여 돌아가는 것이
루카복음 15,11에서
탕자가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같이 묵상해 볼 수 있으며
형 에사우를 만나기 위하여 육적인 준비로
형에게 물질적인 것을 준비하고
영적인 준비로써는 야곱이 하느님과 씨름하는
예화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축복해 주실 때까지
끈질긴 기도를 통하여 축복 받는 과정을 보여 주시는 것은
오늘날 우리들도 육적인 준비를 해야 되지만
영적인 준비로 끈질긴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느님과 일치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묵상해야 하며 이 모든 것이
미사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 이튿날 아침 라반은 일찍 일어나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 맞추고
축복해 주었다.
그런 다음 라반은 길을 떠나 자기 고장으로 돌아갔다.
야곱이 에사우를 만날 준비를 하다
야곱이 형인 에사우를 만나 화해하기 위하여
육적인 준비로써 소, 양, 남종과 여종을 형에게 보내고
야곱 자신을 낮추고 형에게 마치 왕을 모시는 것처럼,
일곱 번이나 절을 하는 모습은
마치 형을 주인으로 모시고
자기 자세를 종으로 낮추는 겸손을 보이는 것이며
우리들도 우리들과 원수가 되는 사람들하고
화해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낮추고 기도하였을 때
하느님께서
용서와 화해를 할 수 있도록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를 했을 때
사람으로써는 체험할 수 없는 인내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사랑과, 기쁨과 평화의 열매를 달라고 기도했지만
맨 먼저 오는 열매는 인내의 열매였다고 고백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박해를 통하여,
인내의 열매를 맺기 때문에 오히려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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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야곱도 길을 떠났다. 그는 도중에 하느님의 천사(하느님 현존)들과 마주쳤다. |
3 |
야곱은 그들을 보고 “이곳은 하느님의 진영이구나.” 하면서, 그곳의 이름을 마하나임(천사 두무리,하느님의 군대)이라 하였다. |
4 |
야곱은 에돔 지방 세이르 땅에 있는 형 에사우에게 자기보다 먼저 심부름꾼들을 보내면서, |
5 |
그들에게 지시하였다. “너희는 나의 주인인 에사우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나리의 종인 야곱이 이렇게 아룁니다. ′저는 라반 곁에서 나그네살이하며 이제까지 그곳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설명:
야곱이 육적으로 보면 이사악과 레베카인 부모님이 그리워서
고향으로 귀가하며
형 에사우와 화해를 하기 위하여 가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영적으로 묵상하면 나그네살이하다
본향인 하느님이 계신 가나안 땅으로 가는 것이며
오늘날 우리들은 세상에서 살다가
하느님이 계신 교회로 복귀하는 것이 '에클레시아'이고 세상에서
천국으로 귀향하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즉 육에서 영으로 가는 것인데,
길이요, 진리이며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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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저는 그동안 소와 나귀, 양과 염소, 남종과 여종들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십사고, 이렇게 사람들을 보내어 주인님께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
7 |
심부름꾼들이 돌아와서 야곱에게 말하였다. “나리의 형님 에사우에게 다녀왔습니다. 그분은 장정 사백 명을 거느리고 나리를 만나러 오십니다.” |
8 |
야곱은 몹시 놀라고 걱정이 되어, 자기 일행과 양과 염소, 소와 낙타들을 두 무리로 나누었다. |
9 |
그는 ‘에사우가 한 무리에게 달려들어 치더라도, 나머지 한 무리는 살아남을 수 있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
10 |
그러고 나서 야곱은 기도하였다. “저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느님, 저의 아버지 이사악의 하느님! ‘너의 고향으로, 너의 친족에게 돌아가거라. 내가 너에게 잘해 주겠다.’ 하고 저에게 약속하신 주님! |
11 |
당신 종에게 베푸신 그 모든 자애와 신의가 저에게는 과분합니다. 사실 저는 지팡이 하나만 짚고 이 요르단 강을 건넜습니다만, 이제 이렇게 두 무리(나눔, 심판)를 이루었습니다. |
12 |
제 형의 손에서, 에사우의 손에서 부디 저를 구해 주십시오. 그가 들이닥쳐서 어미 자식 할 것 없이 저희 모두를 치지나 않을까 저는 두렵습니다. |
13 |
당신께서는 ‘내가 너에게 잘해 주고, 네 후손을 너무 많아 셀 수 없는 바다의 모래처럼 만들어 주겠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
14 |
그날 밤 야곱은 그곳에서 밤을 지냈다. 그런 다음 그는 자기가 가진 것 가운데에서 자기의 형 에사우에게 줄 선물을 골라내었다. |
15 |
암염소 이백 마리와 숫염소 스무 마리, 암양 이백 마리와 숫양 스무 마리, |
16 |
어미 낙타 서른 마리와 거기에 딸린 새끼들, 암소 마흔 마리와 황소 열 마리, 암나귀 스무 마리와 수나귀 열 마리였다. |
17 |
야곱은 이것들을 종들의 손에 한 떼씩 따로 넘기면서 “나보다 앞서 가되, 떼와 떼 사이에 거리를 두어라.” 하고 종들에게 일렀다. |
18 |
그리고 맨 앞에 선 종에게 지시하였다. “나의 형 에사우가 너를 만나, ‘너는 뉘 집 사람이냐? 어디로 가느냐? 네 앞에 있는 이것들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묻거든, |
19 |
이렇게 대답하여라. ‘이것들은 나리의 종 야곱의 것인데, 주인이신 에사우께 보내는 선물입니다. 야곱도 저희 뒤에 오고 있습니다.’” |
20 |
야곱은 둘째와 셋째 종에게도, 그리고 가축 떼를 뒤따라가는 자들에게도 지시하였다. “너희도 에사우를 만나거든 그렇게 말해야 한다. |
21 |
그리고 ‘나리의 종 야곱도 저희 뒤에 오고 있습니다.’ 하고 말해야 한다.” 야곱은 ‘선물을 먼저 보내어 형의 마음을 풀어야지. 그런 다음 그를 보게 되면, 그가 나를 좋게 받아들일지도 모르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
22 |
이렇게 해서 야곱은 선물을 앞서 보내고, 자신은 그날 밤을 야영지에서 지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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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하느님과 씨름하다 (영적 투쟁, 기도 효력)
야곱이 하느님과 씨름하는 것을 통하여
야곱의 끈질긴 기도와 즉 철야기도와 영적투쟁을 보여주시는 것인데
현재 야곱은 에사우를 만날 때
에사우가 죽일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 신비한 씨름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야곱의 환도뼈를 치시는 이유는
사람의 중심을 치시는 것은
야곱의 마음을 치시는 것과 같은 것인데
신약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육이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영으로 부활한다고
바오로 사도가 말씀하시는 것처럼
예전의 야곱은 죽고 새로운 야곱으로 태어나는 과정을 말하는데,
이름도 사기꾼이라는 야곱에서 하느님과
씨름해서 이겼다는 뜻인 이스라엘으로 바꿔주시는 것입니다.
즉 이름이 바뀌는 것은
이사악의 아들에서 하느님의 아들로 바뀌었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들을 낳으면
생부가 반드시 아들의 이름을 지어 주었던 것입니다.
육적으로 볼 때는
야곱이 환도뼈를 다쳐서 절름거리는 모습을
형인 에사우가 보고 동정심을 살 수도 있지만,
하느님께서 에사우 마음을 바꿔 주시고
에사우와 야곱이 화해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용서해 주고 용서 받고 화해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입니다.
우리에게는 용서가 없습니다.
그래서 많이 사랑하면 많이 용서하는 것이며,
사랑과 용서는 하나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6,9~13에
주님의 기도가 나오고 주님의 기도 다음에 용서가 나오는데,
주님의 기도가 이루어진 사람이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이며,
우리가 누구를 용서하면 하느님의 속성이 내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누구를 용서할 때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용서를 해주어야
용서의 능력이 나오는 것입니다.
사랑과 용서는 하느님의 속성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능력에 있는 것입니다.
용서한다면 용서의 능력이 나와야 하고
사랑한다면 사랑의 능력이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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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
바로 그 밤에 야곱은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데리고 야뽁 건널목을 건넜다.
설명:
야뽁이란 뜻은'야바크, 싸우다' 에서
나온 말로써 씨름꾼이라는 히브리말인데 하느님과 싸우다.
하느님과 영적으로 기도해서 이기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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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
야곱은 이렇게 그들을 이끌어 내를 건네 보낸 다음, 자기에게 딸린 모든 것도 건네 보냈다. |
25 |
그러나 야곱은 혼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나타나 동이 틀 때까지 야곱과 씨름을 하였다.(씨름하다, 결투하다 고린 후12,10)
설명:
야곱이 하느님과 씨름하는 예화는 현몽설,환상설,신화설,
영적 투쟁설이 있으며 철야기도를 해서 하느님께 응답을 받는
기도라고 설명하는데,
야곱이 하느님께 끈질기게 씨름을 통하여 응답받을 때까지
기도해서 야곱이 이스라엘로
새로 태어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기도할 때
끈질기게 응답받을 때까지 기도를 계속 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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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
그는 야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야곱의 엉덩이뼈를 쳤다.
(야곱이 죽고 이스라엘로 다시 태어남). 그래서 야곱은 그와 씨름을
하다 엉덩이뼈(빠지다, 속이다, 경배하다)를 다치게 되었다.
설명:
엉덩이뼈 또는 환도뼈는 몸의 중심이며,
마음의 중심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환도뼈를 쳤다는 것은
육이 죽고 영으로 다시 태어남을 말하며
장차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약 교회의 새 백성으로
태어날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12,10에
'내가 약할때 오히려 나는 강하기 때문입니다.'
육적으로 볼 때는 야곱이 다리를 절름거리면서
에사우에게 나타났을때
에사우 마음에 측은지심을 가질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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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
그가 “동이 트려고 하니 나를 놓아 다오.” 하고 말하였지만, 야곱은 “저에게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놓아 드리지 않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
28 |
그가 야곱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묻자, “야곱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
29 |
그러자 그가 말하였다. “네가 하느님과 겨루고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으니, 너의 이름은 이제 더 이상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하느님과
겨루어 이김,하느님은 통치하심, 2250회 나옴)이라 불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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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
야곱이 “당신의 이름을 알려 주십시오.” 하고 여쭈었지만, 그는 “내 이름은 무엇 때문에 물어보느냐?” 하고는, 그곳에서 야곱에게 복을 내려 주었다. |
31 |
야곱은 “내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하느님을 뵈었는데도 내 목숨을 건졌구나.” 하면서, 그곳의 이름을 프니엘이라 하였다. |
32 |
야곱이 프니엘(하느님의 얼굴)을 지날 때 해가 그의 위로 떠올랐다. 그는 엉덩이뼈 때문에 절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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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오늘날까지도 짐승의 엉덩이뼈에 있는 허벅지 힘줄(힘줄,근 육, 욥기 10,11)을 먹지 않는다.
그분께서 야곱의 허벅지 힘줄이 있는 엉덩이뼈를 치셨기 때문이다.
설명:
엉덩이뼈(환도뼈)에 붙어 있는 힘줄을
이스라엘백성들이 먹지 않는 이유는
하느님과 접촉하여 거룩해져 있기 때문에
탈무드는 율법으로 힘줄을 먹지 못하도록 금하고 있으나,
성경에서는 말씀으로 거룩해지기 때문에
'피'나 하느님에 의해서 거룩해진
환도뼈의 힘줄을 먹어도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말씀하고 관계될 때 거룩해지기 때문에
우리가 먹을수 있는 육적인 음식은 다 먹어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말씀을 육적으로 먹지 말고
영적으로 먹을 때 영원한 생명과 사랑이 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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