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님 강론 말씀)
2008.8.8 금요일 성 도미니코 사제(1170-1221) 기념일
나훔2,1.3;3,1-3.6-7 마태16,24-28
"성인(聖人)의 길"
아침성무일도 중 마음에 와 닿은 두 구절입니다.
“당신은 마음의 진실을 반기시니,
가슴 깊이 내게 슬기를 가르치시나이다.”(시편51,8).
진실한 마음에 깃드는 하느님의 지혜입니다.
“주 내 하느님은 나의 힘이시며,
나를 사슴처럼 달리게 하시고 산봉우리로 나를 걷게 하시나이다.”
(하바3,19).
주님 안에 머물 때
주님은 우리를 사슴처럼 기쁨으로 달리게 하시고
고고히 산봉우리로 걷게 하십니다.
어둡고 우울한 십자가의 길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구원의 길이자 성인의 길입니다.
성인의 길은 결코 비범하지 않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성인의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이 말씀대로 살 때 길을 잃지 않습니다.
참 나를 살 수 있는 성인의 길은 이길 하나뿐입니다.
세상에 똑같은 성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 각자 고유의 성인이 되라 불림 받고 있습니다.
주님 때문에 목숨을 잃으므로 목숨을 얻는,
자기 버림의 구원의 길, 성인의 길입니다.
온 세상을 얻은들 제 목숨을 잃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지금 여기가 구원이 자리입니다.
현실을 바꿀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여
깊이 투신하며 살 때 변화하는 현실입니다.
자기를 비운 그 자리에 가득 차는
주님의 선물인 믿음과 사랑, 희망이 우리의 내적 힘의 원천이 됩니다.
하여 이 내적 힘으로 제 십자가를 너끈히 질 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내 고유의 현실이 바로 내 십자가임을 깨닫습니다.
이 현실을 도피할 것이 아니라
이 현실을 받아드리고 투신함으로 현실을 초월함이 진정한 영성입니다.
누가 대신 져줄 수도, 또 내려놓을 수도 없는
내 고유의 현실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우리들입니다.
앞서가시는 십자가의 주님이 우리의 위로와 힘의 원천입니다.
하여 기쁘게, 자발적으로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이 구원의 길, 십자가의 길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길입니다.
깨어있어야 가는 길입니다.
자신을 비운 맑은 눈에 보이는 길입니다.
좌(左)에도 우(右)에도,
성(聖)에도 속(俗)에도
안(內)에도 밖(外)에도 치우치지 않은 중도의 길, 균형의 길입니다.
이 중도의 길,
경계선(境界線)에 사는 경계인(境界人)들이 수도자들이며
참으로 믿는 모든 이들입니다.
기쁘게, 자발적으로
이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있다는 게 우리의 큰 자랑입니다.
분도 규칙에 기쁨이라는 단어가 딱 두 번,
제49장 ‘사순절을 지킴에 대하여’ 라는 데에서 나온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고 반갑습니다.
‘성령의 기쁨을 가지고(cum gaudio Sancti Spiritus)’,
‘영적 갈망의 기쁨을 지니고(cum spiritaris desiderii gaudio)’
사순절을 지내라는 말씀인 데,
일상의 십자가의 길에서는 더 말할 나위 없겠습니다.
오늘 1독서에 희망의 예언자 나훔은
아씨리아 제국의 수도인 니네베의 멸망을 예고하면서
절망 중인 유다에게 희망을 북돋아 줍니다.
십자가의 고난 넘어 부활의 영광을 앞당겨 기쁘게 살아가는 우리들처럼,
절망의 현실 넘어 하느님 승리의 희망을 앞당겨
기쁘게 살아갔던 예언자들이었습니다.
“보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
평화를 알리는 이의 발이 산을 넘어온다.
유다야, 축일을 지내고 서원을 지켜라.”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은 우리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평화를 선사하심으로
기쁨으로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있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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